지난 9일 경부고속도로에서 7중 추돌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50대 부부가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사고 원인은 졸음운전이었다. 운전기사 김아무개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틀 연속 일한 터라 몸이 뻐근하고 피곤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나 보니 이미 버스 앞바퀴 아래 앞서가던 승용차(K5)가 깔려 있었다. 깜빡 졸았던 것 같다."운전기사 김씨의 업무일지는 그가 얼마나 고된 노동에 시달렸는지를 생생히 드러낸다. 김씨는 사고 발생 나흘 전인 5일에는 15시간 30분, 6일에는 18시간 15분을 근무한 뒤 7일 하루 쉬었다. 그리고 사고 발생 하루 전인 8일 18시간 9분을 근무했다. 사고 당일에는 오전 7시에 출근했고, 3번째 운전 중에 사고를 냈다.
사고 버스 운전자만이 이렇게 고되게 일하는 게 아니다. 광역버스 운전기사들은 하루 16시간 넘게 일한다.
피로가 누적돼 졸음운전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JTBC 뉴스룸>은 지난 11일 독자가 직접 찍어 제보한 졸음운전의 순간을 보도했다. 결국 졸음운전 사고는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모든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다 그래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지하철·버스 등 공공 교통수단의 운전자는 항상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 육체 피로에 따른 사고가 운전자 한 사람에게 그치지 않고 공중의 안전까지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웃 나라 일본은 물론 유럽 각국은 버스 운전기사의 노동시간을 하루 최대 9시간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않다. 운수업 종사자들은 근로기준법 제59조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업종'에 속한다. 이에 따라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한 때에는 1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하게 하거나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하는 특례업종 특례업종의 지정 취지는 연장근로 상한을 엄격히 적용하거나 휴게시간을 고정할 경우 공중의 불편이 초래될 수 있고, 업무 특성상 연장근로의 제한과 휴게시간 고정이 어려운 경우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이 같은 제도가 장시간 근로의 '법적'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마침 졸음운전 사고가 발생하기 하루 전인 8일 SBS TV 시사고발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는 특례업종 관련 규정의 허점을 지적했다. 정병욱 변호사는 이 방송에 출연해 "이 직종(특례업종)에 일하시는 분들에 대해서는 아예 근로시간을 안 지켜도 된다. 24시간 365일 일 시켜도 상관없다"고 설명했다.
특례업종 적용대상을 줄여야 한다는 논의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난 2012년 2월 특례업종을 현행 26개에서 10개로 축소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불발됐다. 이때도 버스·택시 등 육상운송업은 근로시간 특례가 그대로 유지됐다.
이번 경부고속도로 7중 추돌사고를 계기로 졸음운전을 예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특단의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6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전방 추돌 경고장치를 2018년과 2019년에 장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기술적인 대책은 물론 환영할 만 하다. 그러나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수백, 수천억의 예산을 들여 차량에 첨단장치를 달아도 대형사고 위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운전자들이 피로한 상태에서 운전석에 앉지 않도록 특례업종 적용대상을 재검토하고, 일본·유럽의 기준을 참고해 운수업 종사자들의 노동시간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이번 불행한 사고가 제도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기를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기독교신문 <베리타스>에 동시 송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