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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0년 이상 급식실에서 일한 학교급식 조리노동자 3명을 인터뷰해 기자가 재구성한 것입니다. [편집자말]
 2년 전, 한 조리사는 고추가는 기계에 손가락 4개가 절단된 사고를 당했다.
▲ 절단된 손가락 2년 전, 한 조리사는 고추가는 기계에 손가락 4개가 절단된 사고를 당했다.
ⓒ 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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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언주 의원님.

저는 의원님이 말한 '아무 것도 아닌 급식소에서 밥하는 아줌마'입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 아줌마'는 낯선 말이 아닙니다.

"너희들 인건비가 아이들의 급식질을 떨어뜨린다. 너희는 그런 존재다."
"억울하면 정규직으로 출세하던지."

이런 말들을 들으며 중학교 급식실에서 십수 년을 일했으니까요. 의원님은 급식실이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집에서 하던 대로 밥과 국을 해서 퍼주면 된다고 생각하시겠지요. 맞습니다. 밥을 하고 반찬을 삶고 튀기며 구워내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뜨거운 불과 펄펄 끓는 기름, 날카로운 칼이 있습니다.

당연히 사고도 잦습니다. 의원님은 "동네 아줌마들 조금만 교육시키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10년을 넘게 일하며 급식실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 저 역시도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죽음과 가까이 있는 곳이 급식실이니까요.

제 주변엔 설거지를 위해 받아 놓은 뜨거운 물에 빠져 전신화상을 입고 투병하다 화상 합병증으로 죽은 조리사가 있습니다. 식재료를 옮기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뇌출혈로 죽은 조리사도 있습니다. 제 동료들은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자신의 실수로 죽게 된 걸까요?

손가락이 잘리고 갈비뼈에 금이 가고, 화상을 입거나 뇌출혈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과연 이런 사고가 있을까 싶으시겠지만 사실입니다. 

밑반찬과 양념장을 만들다 손가락이 잘리는 일은 다반사입니다. 지난해 한 초등학교에서는 채소절단기에 한 조리사의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2년 전, 한 학교에서는 고추 가는 기계에 손가락 4개가 절단된 조리사도 있습니다. 마늘분쇄기에 손가락이 빨려 들어간 경우도 있습니다. 적게는 2년 많게는 10년 넘게 일한 조리사들이 겪은 일입니다. 조리사들이 부주의했기 때문일까요?

화상 입고 출근했더니 ... "아이들 놀란다, 뒷길로 다녀라"

화상은 조리노동자가 겪는 흔한 사고다. 한 조리사는 장화에 끓는 물이 들어가 화상을 입었다
▲ 화상입은 조리노동자 화상은 조리노동자가 겪는 흔한 사고다. 한 조리사는 장화에 끓는 물이 들어가 화상을 입었다
ⓒ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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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사는 늘 종종거리며 일합니다. 급식실이라는 작은 전쟁터에서 언제든 태세전환을 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야채를 썰다가 튀김을 튀길 준비를 하고 바로 돌아서서는 김치를 무칠 수 있어야 합니다. 형식상으로는 볶음조, 튀김조, 무침조 등으로 나뉘어 있지만 그 일만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지금 일하는 초등학교만 해도 학생이 500여 명이나 있지만 조리사는 단 4명뿐 입니다. 자기가 맡은 일만 하다가는 아이들의 점심시간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오전 7시 30분부터 일을 시작하지만 그렇습니다. 학교 급식실 조리사의 하루는 기본적으로 비슷합니다. 식재료 차량이 도착하면, 재료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검수를 합니다. 채소를 씻고, 고기 등 얼어있는 음식은 해동시킵니다. 동시에 본격적인 조리를 시작합니다. 썰고 볶고 튀깁니다.

그러다 사고가 발생하는 겁니다. 위험할 게 뻔한 상황도 피하지 못합니다. 얼마 전의 일입니다. 멸치 볶음이 밑반찬으로 나가는 날이었는데, 관리자가 기름에 올리고당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펄펄 끓는 기름에 올리고당을 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기름이 튀고 화상의 위험이 있겠죠. 하지만 관리자는 계속해서 지시했고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전 당연히 기름이 튀어 얼굴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119는 무슨, 알아서 병원 다녀오세요."

119를 불러달라는 동료의 말에 관리자가 답하더군요. 개인 병원 두 군데를 들렀다 큰 병원으로 갔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냐는 말에 눈물을 왈칵 쏟았습니다. 의사는 입원을 권유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점심 배식이 끝나면 급식실 청소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빠지면 3명이 그날 청소를 해야하는데, 시간이 배가 걸릴 게 뻔한 상황에서 동료를 모른 척 할 수가 없었습니다. 미라처럼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아이들이 무서워해요. 뒷길로 돌아가세요."

청소하러 돌아온 제게 관리자가 말했습니다.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아이들이 놀랄까 살금살금 돌아와 오후 청소를 마쳤습니다. 500여 개의 식판을 손으로 닦는 애벌세척을 하고 세척기에 넣고, 바닥과 조리기구, 하수구 청소를 합니다. 조리실에선 기름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약품을 이용해 급식실 후드를 청소하기도 합니다. 후드는 천장에 달려있으니 솥 두 개를 쌓아놓고 올라야만 합니다. 바닥 청소하느라 물이 뭍은 장화를 신고 올라 후드를 닦습니다.

장갑을 끼지만 팔을 올려 청소를 하다 보니 약품이 몸에 닿기도 합니다. 독한 약품인지라 팔과 얼굴에 묻으면 화상을 입습니다. 며칠 전에는 약품이 눈에 떨어져 병원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눈 흰자에 약품이 떨어진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습니다.

의원님, 조리사는 이렇게 일하며 기본급으로 127만 원을 받습니다. 2년 전 위험수당이라며 5만 원이 추가되긴 했습니다. 목숨을 담보로 매달 5만 원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일을 시작한 건 아이들 때문이었습니다. 9살, 5살 아이를 키우며 일할 곳을 찾다보니 학교가 떠올랐습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했습니다. 초등학생인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퇴근할 수 있는 직장이었으니까요. 점심시간을 기다렸다 뛰어와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급식소로 들어오는 아이들이 모두 내 아이 같았습니다. 내 새끼에게 먹인다 생각하며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없어 15분 내로 음식을 마시면서도, 잘 먹는 아이들을 보면 뿌듯했습니다. 아, 참고로 조리사들은 음식을 먹는다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빠른 시간에 먹어야 하니 '마신다'고 말합니다.

의원님, 하루만 급식실에서 일해보세요

후두 청소를 하기 위해서 젖은 장화를 신고 솥을 쌓아놓고 올라가야 한다.
▲ 후두청소 후두 청소를 하기 위해서 젖은 장화를 신고 솥을 쌓아놓고 올라가야 한다.
ⓒ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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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실의 솥을 청소하고 있는 조리 노동자
▲ 솥 청소 급식실의 솥을 청소하고 있는 조리 노동자
ⓒ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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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제게 돌아온 건 결국, '아무것도 아닌 아줌마'였습니다. 누구든 대체할 수 있는 사람, 필요할 때 부리고 쓸모가 다 하면 버려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겠지요. 학교 교장 선생님도 "너 말고도 일할 사람은 많다"고 했었지요. 이 사회가 우리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일 겁니다.

의원님은 지난 11일 "부적절한 표현은 정말 죄송하다"라며 고개를 숙이시더군요. 국회에서 본 당신은 입을 앙다물었습니다. 얼굴이 조금 벌게졌다고도 느꼈습니다. 부끄러워서였을까요,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아줌마들이 따져서 당황했던 걸까요.

단 하루만이라도 급식실에서 일해보기를 바랍니다. 대체할 수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그 일을, 꼭 당신이 경험해보기를 바랍니다.


태그:#급식실, #조리사, #이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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