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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마지막 시간에 '특교사로 산다는 것'에 대한 종합토론 장면
▲ <아이꿈터>어린이집에서 '특수교육교사론' 종합토의 강의 마지막 시간에 '특교사로 산다는 것'에 대한 종합토론 장면
ⓒ 김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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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정년 하고 5년이나 지났는데, 경주에 있는 <아이꿈터>어린이집(원장: 신경진)에서 <특수교육교사론> 강의를 해달란다. 처음에는 한두 번 특강이나 해 달라는 걸로 알았는데, 메일로 보내온 강의요청 계획을 보니 일주에 한 번씩 12회에 걸쳐 강의계획을 잡아달라는 거다.

오지게 걸려들었다 싶었다. 게다가 내가 이사로 몸담은 <지식과 세상 사회적 협동조합>과 협약해서 추진하는 것이어서 당연히 감당해야할 나의 책무가 되어버렸다. 어린이집 선생들의 공식일과가 끝나는 수요일 오후 5시 30분부터 2시간씩 하기로 하고 다음처럼 강의계획을 세워 보냈다.

<특수교육교사론> 강의 주제

1강. 교육본질 복원으로서의 특수교사론 정립
2강. 교직의 성격과 특수교사론
3강. 특수교사 양성체제와 과정의 쟁점
4강. 특수교사의 수행능력(competencies)
5강. 특수교사의 수행능력과 메타프락시스(meta-praxis)
6강.『중용』의 특수교사론적 함의(1)
7강.『중용』의 특수교사론적 함의(2)
8강. 『대승기신론』의 특수교사론적 함의(1)
9강. 『대승기신론』의 특수교사론적 함의(2)
10강. '장애학'에서 본 특수교사론 정립
11강. 개벽의 한국특수교육론과 특수교사의 위상
12강. 종합정리와 나눔의 장

4월 중순에 시작한 강의가 7월 12일에 그 막을 내린다. 위의 강의주제에서 보는 것처럼 <특수교육교사론> 정규 강좌에서 볼 수 없는 동양고전의 (특수)교사론적 함의, '장애학'에서 본 특수교사론 정립, 개벽의 한국특수교육론과 특수교사론 등 평소 내가 하고 싶은 걸 모두 쏟아놓을 작정이었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유아교육을 전공했거나 치료사로 일한 경험이 있는 교사들이 주류였고, <특수교육교사론>을 따로 공부해 본 경험이 없는 교사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연유로 내게 강의를 위촉한 게 아닌가 싶다.

'장애' 먼저 보지 말고 '사람 먼저'

사실 나는 현직(대구대 특수교육과) 교수로 있을 때 <특수교육교사론> 강좌를 일찍부터 개설해 운영한 경험이 있었고, 교재도 진적에 개발하였다. 그리고 이 강좌는 교재와 별 관계없이 내가 신명나게 운영한 강의로 기억에 남는다. 특히 계절제 대학원 강의에서 그랬다. 근데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확신이 잘 서질 않는다.

이번에 어린이집 교사들을 위한 강의에서는 그들이 이미 현직 교사로 일하고 있는 터이므로, 교사가 되기도 어렵지만 좋은 교사로 살아가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걸 강조했다. 왜 그런가? 교사가 되고난 후에 그가 가르쳐야 할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해서 그들과 코드를 맞추는 일, 그들에게 교과를 교과답게 가르쳐내는 일, 게다가 그렇게 하기 위해 교사는 자신의 삶을 부단히 반추해 보아야 한다. 즉,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자기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특수교사에게 요구되는 수행능력(competencies)을 지식·기능·태도로 대별해서 체계적으로 습득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지배하는 초실천(meta-praxis)의 기준에 따라 교사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반추해보는 일이다. 왜냐하면 교사는 교육과정 운영에서 학생들에게 일상적으로 교과를 가르치지만, 동시에 학생들은 교사가 가르치는 교과와 더불어 바로 그 교사를 배운다. 그래서 간접전달로서 교사의 열정이나 인품이 학생들에게는 퍽 중요한 게다.

<중용>에서는 "오직 천하의 지극한 성(誠)이라야 자기의 타고난 성(性)을 온전히 발현할 수 있고, 자기의 타고난 성을 온전히 발현할 수 있게(즉, 盡己性) 되어야, 다른 사람의 성을 온전히 발현케 할 수 있다(즉, 盡人性)"고 했다. 이 말은 교사론의 백미다. '성'(誠)의 철학으로 일컬어지는 <중용>에서는 '지성능화'(至誠能化)라 해서 지극한 정성이라야 다른 사람을 감화시킬 수 있고, 그런 '지성'(至誠)을 체화한 사람은 신과 같은 사람(즉, 至誠如神)이랬다. 하여 지성은 쉼이 없다(至誠無息)는 게다. 말년에 공자는 제자들이 좀 쉴 것을 권하자 "하늘이 쉬더냐?"고 되물었단다. 

<대승기신론>에서도 교사는 참으로 그러한 '진여'(眞如)의 화신일 것을 일러준다. 이홍우 교수는 <대승기신론통석>(2006)에서 "학생에게 교사는 거의 중생에게 여래(如來; 진여의 세계에서 온 자)가 나타내는 것에 해당하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존재로 비친다. 이것을 사실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교사는 교사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리하여 교사는 '중생을 자신과 동일한 존재로 생각하면서도 그 자신이 중생과 동일한 존재로 되지 않는' 바로 그 여래의 모습을 띤다"고 했다.

장애아동을 지도하는 특수교사는 장애아동과 동류(同類)일 뿐만 아니라, 교육과정 운영에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와 자료를 가지고 그들과 같은 일에 임하는(同事) 교사이어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교과를 공부하지만, 교사는 학생들보다 언제나 충실히 교과를 체현(體現)하고 있어야 한다.

'장애학'(disability studies)에서는 장애아동이 지닌 '장애'만 보지 말고, 먼저 그들도 사람이라는 '사람 먼저'(people first)를 내세운다. 장애는 개인의 병리적 문제라기보다 근원적으로 사회적 병리문제라는 게 장애학의 기본입장이다. 하여 장애학에서 본 특수교육은 장애를 보상하는 치료지원이라기보다 장애아동 자신이 권리의 주체로 우뚝 서는 지엄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장애학에서는 장애아동의 학습가능성에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모든 나무는 타는 성질이 있지만 거기에 누군가 불을 댕겨주어야 한다. 특수교사는 가물가물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내는 불소시게이다. 그래서 특수교사는 희망의 교육을 실천하는 마중물이다.

누가 장애아동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를 '천사 같은' 사람이라고 좋게 말하는 꼬드김에 쉽게 넘어가지 말자. 왜냐하면 '천사'(天使)는 하늘이 내린 사명을 이 땅에 전달(실천)하는 지엄한 사명을 띤 존재다. 특수교사 스스로 그 사명을 기꺼이 자신의 사명으로 체화할 수 있을 때, 그는 비로소 '천사와 같은' 반열의 존재에 들 수 있다. 그래서 특수교사가 하는 일은 지난하다. 이것이 특수교사의 운명이다. 이 운명을 거역할 교사는 아무도 없다.

이 강좌의 말미에서 필자는 '개벽'(開闢)의 한국특수교육 담론을 제기하면서 그에 따른 특수교사론 정립을 말했다. '개벽'은 우리나라에서 근대를 여는 주체적 철학담론이자 한국사상이다. 동학은 다시 세상을 여는 개벽을 제기하면서 '사람이 곧 하늘'이랬다. 이어 원불교를 창도한 소태산 박중빈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했다. 물질개벽은 개벽의 용(用)이고, 정신개벽은 그 체(體)다. 사람마다의 개인개벽이 그 체(體)가 되어 사회개벽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장애아동 한 사람마다의 개벽을 구심으로 삼아 사회개벽이 원심적으로 뻗어나게 해야 한다. 그래서 개벽의 한국특수교육론이다. 이로써 한국특수교육론의 특수성이 세계특수교육의 보편성에 보탬이 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 속의 한국특수교육 정체성이 드러난다.

"장애아이들 편에 서서 부끄럽지 않게 사는 사람이 진짜 특수교사"

<아이꿈터> 어린이집에서 종강 기념사진
▲ '특수교육교사론' 종강기념 <아이꿈터> 어린이집에서 종강 기념사진
ⓒ 김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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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나는 그동안 <아이꿈터> 어린이집에서 교사들에게 '특수교육교사론' 강의만 했지, 실제로 이들 교사가 장애영유아 혹은 장애아동들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직접 관찰할 기회는 별로 갖지 못했다. 그래서 강의 마지막 시간에는 종합 토의 겸 어린이집에서 특수교사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직접 교사들로부터 듣고 싶었다. 미리 '특수교사로서 산다는 것은?'이라는 주제로 간단히 자신들의 소회를 적거나 말하게 했다.

마침내 종강 하루 전에 <아이꿈터> 어린이집 교사들이 보내온 생생한 체험담과 느낌을 적은 글들을 메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체험담이다. 이제 장애아동을 지도하는 어린이집 교사들이 '특수교사로 산다는 것'이 뭔지 직접 들어보자. 이들이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기까지의 배경이나 경력은 퍽 다양하다. B교사는 특수교사로서 산다는 것의 함의를 조목별로 또박 또박 다음처럼 적고 있다.

"경력이 늘어나도 해가 바뀔 때마다 전혀 다른 아이들을 만나는 새로움에 대비해야 한다. 어제와 오늘 또 내일이 고만고만해도 아이들이 조금씩 성장하리라는 기대감으로 그 느림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특수교사다.

아이 한 명 마다 건강, 생명, 특수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특수교사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우리 아이들의 별난 매력을 찾아 그것에 빠져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사람이 특수교사다.

언제나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특수교사다. 상처 안에서 살아가는 학부모님마저도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이 특수교사다. 위생상태가 불량해도 내 자식처럼 씻기고 닦아 윤이 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특수교사다.

화려한 테크닉보다 아동의 내면세계를 이해하고 더디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하는 사람이 특수교사다. 그리고 특수교사는 우리 아이들을 내 삶 안으로 기꺼이 맞아들일 수 있는 걸 더 없는 행복으로 아는 사람이다."

특수교사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눈에 선하게 드러나게 하는 살아 있는 언어다. <아이꿈터>에서 10년 경력을 쌓은 K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만난 아이들 중에서 벌써 하늘이 허락한 생명을 다하고 짧은 생을 마감하고 하늘나라로 간 친구도 있고, 중환자실에서 아기 새처럼 누워있던 친구, 어제까지만 해도 옆에서 웃던 친구가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났을 때는 참으로 가슴이 먹먹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자매를 차례로 담임으로 맡아 신변자립이 조금씩 이루어 질 때, 아무것도 먹지 않던 아이가 음식을 먹고 말을 하고 마음이 열리는 걸 보았을 때는 말할 수 없는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부모님이 보내주신 감사의 편지는 그 어떤 선물보다도 나를 기쁘게 해주는 특수교사의 행복이었다."

견디기 어려운 특수교사의 슬픔과 비할 수 없는 특수교사의 행복이 교차하는 삶이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그는 '교사 중의 교사'인, 특수교사가 된 자신이 참 좋단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좋아 그런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교직에 몸을 담았지만, 특수교사로 살아간다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부끄러운 일들이 늘어가는 것 같다는 다른 K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교사 자신에게는 부끄러운 일을 줄이고 아이에게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게 하는 게 특수교사의 역할입니다. 특수교사는 아이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고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고 오래 보아야 예쁘다는 시 구절이 우리 아이를 바라보는 교사의 눈길이어야 합니다. 장애아이의 입장에서 그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볼 줄 아는 게 특수교사입니다. (중략) 우리 아이들이 아주 짧게 우리 곁을 지나가더라도 함께한 그 순간들이 이 다음에 미안하거나 부끄럽지 않게 살아내는 사람이 진짜 특수교사입니다."

장애아이들 편에 서서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사는 사람이 진짜 특수교사란다. 그래서 교직은 지난하다. 또 다른 K 교사는 말하길 "특수교사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아이들마다 다른 맞춤식 수업을 설계하고 수행하는 사람"이어야 한단다. J교사는 처음 장애아동을 만났을 때 자신이 부끄럽고 작게만 느껴졌는데, 10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장애아동 앞에서 여전히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한단다.

다른 J교사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신에게 수 없이 질문을 던졌단다. "저렇게 아픈데, 저렇게 힘든데 왜 이 아이들을 이 땅에 보내셨어요?"라고. "근데 몹시 힘든 날 아침 교실 문을 여는 데, 우리 아이가 '아〜' 소리를 내면서 넘어질 듯 넘어질 듯 뛰어와서 날 안고 두드려 준다. 눈물이 주륵 흘렀다. 내가 신에게 물었던 걸 네가 대답해주는구나."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이런 교사들이 있기에 우리사회가 그나마 버티어갈 게다. 우리에게 쉬이 알려지지 않는 숨은 교사들을 예찬한다.


태그:#특수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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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로 태어나 지금은 명예교수로 그냥 읽고 쓰기와 산책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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