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삼성이 정유라씨에게 10억 원대 말을 지원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후, 삼성이 이 같은 지원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말 이름을 바꾸거나 기존 말을 다른 말과 교환하는 이른바 '말 세탁'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는데요. 이에 대해 삼성 측은 말 교환은 최순실씨가 독단적으로 진행한 일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삼성이 범죄수익 은닉을 시도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지난 12일 정유라씨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삼성 측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언을 했습니다. 정씨는 "말 교환이 삼성 모르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나?"라는 특검 관계자의 질문에, '말을 바꾸기 전날 엄마와 삼성전자 박상진 전 사장, 황성수 전무가 만났고, 이들과 승마 코치인 크리스티안 캄플라테가 대화를 나눈 음성 녹음 파일까지 있다' '독일 승마 코치가 삼성이 줘야 할 돈이 안 들어온다고 짜증을 낸 적이 있다' '어머니로부터 말을 네 것처럼 타면 된다고 들었다'는 등의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삼성이 '말 세탁' 사실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사실상 이를 주도했음을 강조하는 발언들이었습니다.
정유라 발언에 주목한 보도가 대부분 13일 6개 일간지는 일제히 관련 보도를 지면에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제대로 된' 보도를 내놓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날 <동아일보>를 제외한 5개 매체는 모두 정유라씨의 '증언'에 주목했습니다. 우선 <경향신문>과 <한겨레>, <한국일보>는 정씨의 "삼성이 말 세탁 몰랐을 리 없다"는 발언을 제목에 담았으며, <중앙일보>도 정씨의 "말세탁 전날 엄마와 삼성 측 만났다"는 발언을 제목에 담았습니다.
<조선일보>의 <돌연 재판 나온 정유라, 엄마 말까지 뒤집었다>는 정씨의 구체적 발언이나 '삼성'의 존재를 제목에 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엄마 말까지 뒤집었다>라는 제목의 문구는 기본적으로 정유라씨의 발언 파장을 부각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혼자 '관심법'에 관심 많아 반면 <동아일보>는 <안나오겠다던 정유라, 돌연 마음 바꿔 법정에>(7/13 권오혁 기자
https://goo.gl/t7Xm6n)에서 오로지 '대체 왜 정유라씨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로 마음먹었을까'에 집중했습니다. 이 보도는 소제목도 <이재용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 <변호인도 몰라… "특검이 부당압력"> <특검 "정씨, 새벽에 출석의사 밝혀… 본인의 자의적 판단으로 나온것">으로, 정씨의 증언보다는 출석 자체와 그 배경에만 관심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기사 본문은 달랐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첫 문장부터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1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경위를 두고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정씨 측 변호인이 법정 밖에서 날선 장외 공방을 벌였다"로, 아예 '정씨의 재판 출석 경위'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총 970자 정도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이 중 정씨의 증언을 전달한 부분은 "정씨는 이날 법정에서 독일 승마 훈련 과정에서 삼성 측의 지원을 받은 일과 관련해 어머니 최씨에게서 들은 이야기 등을 증언했다"는 72자가 전부입니다. 기사 끝에서 두 번째 문단에 등장하는 이 문장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구절은 정씨의 '깜짝 출석'이 특검의 압박 때문이 아니냐는 정씨 측 변호인의 의혹제기 내용과, 이에 대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반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유라씨는 성인입니다. 성인인 증인이 "그래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온 것"이라며 재판 출석이 자신의 판단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런데 왜 <동아일보>는 이날 정씨가 내놓은 수많은 증언을 모두 무시한 채 왜 '재판 출석 문제'만을 부각했을까요? 대부분 추측과 '카더라'로 그칠 수밖에 없는 이런 내용 말고 발언내용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제대로 된 재판 보도 아닐까요? 안 하느니만 못한 보도가 바로 이번 <동아일보> 보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7년 7월 13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신문 지면에 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