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슬픔도 인화되면 보석처럼 영롱하다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이 마을에 대대로 살아온 김해 김씨, 함안 조씨 가문에 전해오는 자료에 따르면 신라 신문왕 당시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마을 연원은 장구하다. 마을 이름은 원래 간천(間川)이라 불렸는데, 조선 중엽에 가천(加川)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마을 이름에 내 '川'이 있다. 마을 앞은 밭 갈던 소도 한 눈 팔면 절벽으로 떨어진다는 말이 있을 만큼 해안 절벽이다. 그럼에도 물이 흘러 신라시대부터 대대로 이곳을 터로 하여 삶을 이어올 수 있었다.
가천 다랭이마을이 해안마을이지만 배 한 척이 없다는 것도 아이러니칼하다. 마을 앞이 가파른 절벽이니 선착장 하나 만들 수가 없다. 해안마을이지만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오로지 절벽을 깎고 개간해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바다로 나가려고 하지만 절벽이 가로 막고 있으니 계단식 논을 만드는 지혜를 발휘하여 다랭이논을 탄생시킨 것이다. 다랭이논은 적게는 3평에서 큰 것이라곤 30평 정도가 절벽을 가로지르며 100여 계단을 이루고 있으니 장관이다.
다랭이논과 산과 바다의 아름다운 조화다랭이마을 배후에는 높은 산이 있고 앞에는 아름다운 바다가 조화를 이루면서 이곳을 명소로 거듭나게 했다. 다랭이마을은 2012년 CNN 선정 대한민국 관광명소 3위에 랭크되었을 만큼 최고의 관광명소다.
내년도 '농촌테마공원조성사업' 신규사업에 전국 유일하게 '남해 다랭이 농촌테마공원'이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고도 한다. '남해 다랭이 농촌테마공원'은 남해의 수려한 바다와 금산의 절경이 어우러지는 천혜의 자연 환경과 함께 다랭이논을 테마로 각종 농촌체험과 휴식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된다.
신라시대부터 조상대대로 지켜온 다랭이마을이 오늘에 와서야 보석 같은 최고의 명소로 자리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지난 일요일 오후 가천 다랭이마을을 둘러보았다. 남해 궁벽한 가천마을 다랭이논이 상징하는 수많은 스토리텔링을 읽으려 찾은 관광객들의 차가 즐비했다. 다랭이마을에는 유자잎 막걸리, 가오리회 등 먹거리도 풍성하다. 마을주민들은 이전처럼 다랭이논에서 벼 수확만 바라보고 지내지 않고 식당, 민박집 등을 경영하며 풍요롭게 살아간다.
가천다랭이마을도 역경의 은총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해 3월 1일부터 중국 정주에 거주하며 디카시로 중국 대륙의 풍물들을 포착하고, 그 느낌을 사진 이미지와 함께 산문으로 풀어낸다.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감흥)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공감을 나누는 것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