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들은 일반인들이 평생 한 번 접하기 힘든 끔찍한 상황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다. 이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겪으며 고통받는 소방관들이 적지 않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심각한 외상을 보거나 혹은 직접 겪은 후 나타나는 불안장애를 말한다. 소방관이 아무리 강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무장되었다고 해도 그 역시 사람인 이상 분명히 한계는 존재하는 법이다.
문제는 이 증상이 지속되면 일상생활에서 집중력 저하와 수면장애 같은 불편함을 겪기도 하고, 간혹 공황 발작과 같은 불안을 느끼거나 또는 환각을 경험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심할 경우에는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외상을 경험한 환자를 충분히 지지해 주고 격려해서 환자가 외상에 대해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 초기 치료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준 뒤 상담을 통해 대처방법에 대해서도 교육해 주고, 사안에 따라서는 전문가에게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병행해서 받는 것이 좋다.
미국소방, '동료지원팀' 등으로 소방관 정신건강 챙긴다미국소방은 이미 1970년대부터 '직장인 지원 프로그램(Employee Assistance Program)'을 개발해 소방대원의 정신건강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쳐 계속 그 영역을 확장해 오다가 2001년 911 테러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고를 겪으면서 특히 '동료상담(Peer Support)' 부분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소방에서 가장 활발하게 동료상담 활동을 선도하고 있는 단체가 있다. 바로 '일리노이 소방관 동료지원팀(Illinois Fire Fighter Peer Support Team)'이다.
2013년 결성된 이 팀은 "소방관은 서로 돕는다(Fire Fighters Helping Each Other)"라는 구호를 내 걸고 어려움에 처해있는 소방대원들을 찾아 나선다. 이 팀의 구성원들은 소정의 교육을 마치고 상담훈련까지 마친 소방관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2014년 한 비영리조직이 만든 '로즈크랜즈 플로리언 프로그램(Rosecrance Florian Program)'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 프로그램에는 경찰, 소방, 군 관계자, 목회자, 상담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정기적으로 동료상담 교육과 심포지엄도 개최한다.
이들의 경험과 노하우는 이미 보스턴, 로즈 아일랜드, 뉴욕소방서 등으로 전파됐다.
이외에도 시카고 소방서는 45명의 소방관 동료상담사들로 구성된 '게이트키퍼스 프로그램(Gatekeepers Program)'을 운영하고 있으며, 뉴욕소방서는 동료상담을 위해 100명이 넘는 직원과 동료상담사들을 충원해 운영하고 있다.
미국소방대원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Fire Fighters) 역시 미국의 모든 소방서에서 동료지원 프로그램이 정착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교육하고 지원할 방침이라고 한다.
소방대원의 건강한 신체와 정신까지 챙기는 미국의 다음 여정은 현직 소방관과 그 가족을 넘어 퇴직한 소방관까지 동료상담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라고 하니 같은 소방관 입장에서도 부럽기만 하다.
우리나라에도 소방관을 살리는 동료상담사들이 있다. 최근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팀이 바로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에 설치된 '소담팀(소방공무원 동료상담팀)'이다.
소담팀의 역할 역시 각종 현장에서 받은 상처와 트라우마로 고통 받고 있는 동료들을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올바른 해결방안을 제공하는 것이다.
소방관은 더 이상 영화 속 영웅도 슈퍼맨도 아니다.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지닌 사람이다. 다만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을 해결해 주기 위해, 그리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 시대의 용감한 시민일 뿐이다.
이젠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에도 조금은 귀기울여줘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