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려~ 돈 되는 것은 다 팔러 다니는 장돌뱅이 구서방이다!"탈춤극의 한 대목이다. 예부터 우리 탈춤은 커다란 탈을 쓰고 춤을 추며 이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신명 나는 연주 소리에 맞춰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시대 상황을 반영해 탈을 쓰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탐관오리나 양반들을 꾸짖기도 한다. 탈을 쓰면 무서울 것이 없다.
연일 최고기록을 경신할 정도로 무더운 여름, 탈을 쓰고 사람들 속에서 해학과 재미로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산에서 활동하는 놀이패 '뻘바람'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서산 갯벌의 '뻘'과 서산지역문화운동의 바람을 일으키자는 '바람'이 합쳐져 '뻘 바람'이 탄생한 것이다. 뻘바람은 서산지역의 전통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마당극과 풍물 등을 전승하고 시연하는 놀이패로, 특히 지역 무형 문화재인 박첨지 놀이를 전수받는 등 지역 문화 선도에 앞장서고 있다.
22일 오후, 찌는 듯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놀이패 '뻘바람'은 해미읍성에서 탈춤 공연을 열었다. 이번 공연은 '장돌뱅이 구 서방'이라는 제목의 시대극이다.
장돌뱅이는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보부상이다. 마당극의 중심인 '장돌뱅이 구 서방'은 본래 서산에서 혼인했으나, 집을 나와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서산에 정착한다는 내용이다. 장돌뱅이 구 서방이 전국을 돌면서 경험한 권력자들의 욕심과 지난해 온 국민을 분노케 했던 비선실세와 국정농단, 학사부정 등을 시대 상황에 맞게 버무려 '청문감사'라는 비리 관리를 통해 해학적으로 풍자한 창작 탈놀이다.
충청도식의 해학과 풍자가 묻어난 이번 탈놀이는 각자 역할에 맞는 탈과 복장 자체만으로도 우스웠다. 다만 이렇게 더운 날 탈을 쓰고 있으면 얼마나 더울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혹여 저러다 탈진해서 쓰러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됐지만, 이들은 90분 동안 쉼 없이 관객들과 함께 웃고 울며 더위를 날려 버렸고, 공연은 해미읍성을 가득 메운 시민들로부터 큰 반응을 이끌어 냈다.
본 공연을 마친 구자은 단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터뷰를 요청하기 미안할 정도로 땀으로 범벅된 모습이었다. 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구 단장은 "처음 생각한 탈놀이가 있었지만 사정이 생겨 공연 내용을 변경해야 했다"라며 "모든 소품과 배역을 다시 만드느라 긴 가뭄과 장마를 놀이패 식구들과 함께 뻘뻘 땀 흘리며 보냈다"라고 전했다.
그는 "공연 날이 하필 제일 덥다는 중복이지만, 탈속에 범벅된 머리털과 땀방울이 오히려 더 시원하다. 공연을 끝내고 탈을 벗어젖힐 때의 시원함도 있다"라며 "덥지만 탈이 좋은 건 내가 감추고 싶은 표정을 숨겨주기 때문이고, 탈이 싫은 건 내 보여주고픈 표정을 숨기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놀이패 '뻘바람'은 지난해 10월 말부터 서산 지역 촛불집회 때마다 광장을 지키며 사회참여에도 적극 참여해왔다. 이들은 서산 박첨지 놀이를 마당극으로 공연하는가 하면,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외면 받은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풍자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