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프랑스라는 나라에 가 보지 못했기에 프랑스가 어떤 곳인지 잘 모릅니다. 다만 오늘날에는 인터넷이나 책으로도 이웃나라 살림을 살짝 엿볼 수 있어요. 유튜브에는 온누리 여러 나라 사람들이 저마다 제 나라 살림을 손수 찍어서 올리기도 합니다. 다른 나라 방송이나 책도 퍽 쉽게 만날 수 있고요.
프랑스에서 살면서 프랑스 살림살이 이야기를 한국 살림살이하고 맞대면서 곧잘 이야기를 풀어내는 목수정 님이 있습니다. 저는 프랑스도 목수정도 잘 몰랐습니다만, 제가 사는 전남 고흥에는 '목씨 집안'이 독립운동가 집안으로 이름이 높아요. 어린이노래를 지은 목일신이라는 분도 고흥 분이고요. 이런 여러 실타래를 헤아리면서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생각정원 펴냄)을 읽습니다.
프랑스사회가 한국사회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뼛속까지 새겨진 시간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프랑스 사람들은 지각해도 뛰지 않는다. (30쪽)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것은 사람이고, 그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그 사람의 몸에 밴, 어릴 때부터 사회와 학교와 부모가 주입한 행동양식일 테니. 1등이 아니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주입받고 자란 사람들이 안전 대신 속도를 선택하는 건 너무 당연한 결과다. (34쪽)<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첫머리에서 목수정 님은 '학교나 일터에 늦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학교나 일터에 늦는다고 하더라도 서두르지 않는다고 해요.
참말로 한 사람조차 안 서두르는지는 모를 노릇이지만 사회 흐름으로 보건대 굳이 서두르지 않는 기운이 흐른다는 대목을 생각하면서 놀랍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한국에서는 학교에 1분만 늦어도, 아니 1초만 늦어도 문을 쾅 닫아걸기 일쑤예요. 요즘에는 달라졌을까 모르겠는데, 지난날에는 초시계로 재서 그야말로 1초만 늦어도 모두 '지각'으로 묶어서 운동장을 오리걸음으로 걷게 한다거나 몽둥이로 엉덩이찜질을 시킨다거나 운동장 가장자리 풀을 뽑게 시키곤 했어요. 게다가 성적표에 '지각' 횟수를 또렷이 새겨서 더욱 괴롭혔고요.
지각을 두 차례 하면 결석을 한 차례 한 것과 같다고 윽박지르니, 집하고 학교 사이가 먼 동무는 새벽같이 집을 나서서 학교에 오기 마련입니다. 그야말로 끙끙 앓고 눈치를 보면서 학교를 다닙니다. 이는 학교를 떠나 회사나 공장이라는 일터를 갈 적에도 똑같고요.
아이들의 요구 중에서 담임 선생님을 학교에 남게 해 달라는 요구는 관철되었다. 담임은 되지 않았으나 아이들은 선생님을 자주 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크게 기뻐했다. 음악 선생님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지난해보다 한결 부드러워졌다. (59쪽)
(아이) 칼리는 담배꽁초를 구해 주고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무생물인 줄 알지만, 저 담배꽁초가 정말 불쌍해 보였어. 아, 이제 좀 편하겠다." 세상의 미물들이 겪는 고통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를 가진다는 것, 소중한 능력이다. 문득 이 아이가 나보다 커 보였다. (64쪽)조금 늦는다고 윽박지르면서 괴롭히는 학교·사회 얼거리는 언제나 '빨리빨리'로 잇닿습니다. 조금만 누가 앞에 끼어들어도 불같이 성을 냅니다. 이러면서 우리 스스로 남 앞에 재빨리 끼어들어 더 빨리 가려고 불꽃을 튀기지요. 고속도로에서뿐 아니라 여느 길에서도 사람들은 그저 빨리빨리 달리기만 해요. 좁은 골목으로 자동차를 이끄는 이들은 아이들이 놀건 말건, 할머니 할아버지가 천천히 걷건 말건 얼른 비키라고 빵빵 울려대요.
빨리빨리 외치는 마음은 집이나 다리를 지을 적에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무엇이든 더 빠르고 더 크고 더 많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성적을 내야 하고 점수를 얻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이러는 동안 '삶이라는 기쁨이나 즐거움' 하고는 멀어져요. 숫자에 얽매이면서 이웃을 볼 틈이 없을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차분하게 되새길 겨를마저 없어요.
선진국이란, 법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투명한 사회를 일컬으며, 이를 위한 전제조건은 법 위에 군림하는 인간들이 없어지는 것이다. (127∼128쪽)
가부장제가 부여한 과도한 남성 권력이 가족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데도 스스로 궤도 수정을 할 줄 모르는 이 땅에서, 불굴의 의지로 잔혹한 현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 마침내 승리하는 여성들을 보노라면 환희와 절망이 교차한다. (166쪽)<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은 대단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어렵거나 남다른 이야기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이른바 상식이라고 할 만한 곳을 살짝 짚습니다. 사람들이 기쁜 삶을 헤아리지 않고 숫자에 매여 빨리빨리 내달려야 하는 곳에는 평등도 평화도 민주도 자유도 깃들기 어렵다고 하는 쉬운 이야기를 밝혀요. 사람들 누구나 즐거운 삶을 생각할 적에 비로소 평등이나 평화나 민주나 자유를 스스로 가꾸고 아끼면서 어깨동무를 할 수 있다는 쉬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 때 인간의 삶은 빛나기 시작한다. 뜨겁게 사랑하는 인간의 심장보다 더 강력한 모터는 없다. (275쪽)
(프랑스에서) 60∼70대들은 20∼30대에 68혁명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투쟁 결과를 청장년 시절 누려 왔고, 노년이 된 지금, 그들이 건설한 프랑스가 파괴되어 가자, 어느 세대보다 많이 거리에 나와 프랑스의 가치를 복원하고자 애쓴다. 프랑스 쪽이 더 튼튼한 건 노인들의 관절이 아니라 사회안전망이었던 것. (285쪽)2016년 끝자락을 지나서 2017년대 첫머리를 지나는 사회를 바라본 이 나라 사람들은 촛불물결을 몸소 마주했습니다. 어린이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골골샅샅 어디에서나 촛불물결을 스스로 일으켰습니다.
아직 한국 사회는 그리 평화롭거나 평등하거나 자유스럽거나 민주답다고 하기 어려울는지라도, 이제부터 시나브로 하나하나 달라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손으로 작은 힘을 모아서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는 줄 느낀 분들은 이제는 낡은 길로는 다시 접어들지 않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아름다이 꿈꿀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좋겠어요. 즐겁게 삶을 짓는 마을이 되기를 바라요. 기쁘게 하루를 노래하는 아이랑 어른이 손을 맞잡는 보금자리가 되도록 서로 마음을 기울이리라 믿습니다.
덧붙이는 글 | <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목수정 글 / 생각정원 펴냄 / 2016.10.10. / 1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