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노릇하기 어렵다지만 4월 하늘만 하랴/누에는 따뜻하기를 바라는데 보리는 춥기를 바라네/나그네는 맑기를 바라는데 농부는 비 오기를 바라며/뽕잎 따는 아낙네는 흐린 하늘을 바라네."문무일 신임 검찰총장이 25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읊은 한시다. 문 총장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서 "예전 선배가 가르쳐준 시인데 이번 청문회 준비하면서 생각이 났다"라며 이 시를 인용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총장의 임명 소감을 대신한 이 한시는 대만의 저명 학자 난화이진이 중국 농민들 사이에 불리던 옛 농요를 가다듬어 자신의 저작 <논어별재(論語別裁)>에 실은 시다. 이 시는 지난 2014년 3월 김진태 전 검찰총장이 대검찰청 간부회의에서 읊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김 전 총장은 당시 이 시를 읊은 후 "나그네는 맑기를 바라지만 농사에는 비가 와야 하고 게다가 뽕잎 따는 아가씨는 구름이 껴야 얼굴이 타지 않는다"며 "하나의 하늘을 두고 이렇듯 요구하는 것이 다른 것처럼 각자 자기 입장에 따라 바라는 것과 생각하는 게 다 다르다. 그게 사람이고 인생이지 않겠느냐"라고 설명했다.
문 총장이 청문회를 거치면서 이 시가 떠올랐다고 한 이유도 김 전 총장의 의도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검찰개혁을 놓고 여당과 야당뿐 아니라 국민과 검찰 당사자들의 요구와 입장이 각각 다름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검찰개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문 대통령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에둘러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생각하는 검찰개혁의 방향을 강조하는 것으로 문 총장이 읊은 시조에 답을 했다. 문 총장이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검찰개혁 의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문 총장에게 재확인 시킨 것이다.
문 대통령은 "검찰 스스로 정치적 중립성을 확실히 확보해야 한다"라며 "정치적 줄대기를 통해 혜택을 누려온 일부 검찰 모습을 통렬히 반성하고 확실한 책임을 물어야 묵묵히 업무에 임해온 검사도 사명감과 자긍심을 가질 것이다. 이것이 총장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로서의 답변을 보았는데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라며 "조정 자체는 필요하다는 인식을 함께 가지고 제3의 논의기구 조성 등 지혜를 모아달라"고 주문했다.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와 관련해서도 "이것이 검찰 자체만 견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포함한 권력을 가진 고위공직자가 대상이고 그중에 검찰도 포함이 되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문 총장은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수사권 조정 문제에는 "경찰 수사가 미흡하거나 잘못됐다면 검찰에서 보완하거나 새로운 것을 찾아서 바로잡아야 한다"라며 검찰의 수사권 유지 필요성을 강조했고, 공수처 신설에는 "더 효율적인 제도를 찾아야 한다"라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