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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는 가끔 큰 물난리를 내서 피해를 안겨주지만, 장마통에 작물들은 무럭무럭 자랍니다.

요즈음 우리 텃밭작물들도 생기가 돕니다. 고구마줄기가 제일 신이 났습니다. 장마가 지기 전에는 가뭄을 좀 타더니만 몇 차례 비를 맞고선 밭고랑을 안전히 뒤덮었습니다. 서리태, 팥, 녹두도 키가 훌쩍 자랐습니다. 들깨잎도 이파리가 널찍널찍합니다.

씹히는 맛이 있는 풋고추의 맛

 고추밭입니다. 장마통에 병이 들고 벌레가 많이 달라듭니다. 장마를 잘 넘겼으면 좋겠습니다.
고추밭입니다. 장마통에 병이 들고 벌레가 많이 달라듭니다. 장마를 잘 넘겼으면 좋겠습니다. ⓒ 전갑남

 고추가 붉어지기 시작합니다. 장마가 끝나면 첫물 수확이 기대됩니다.
고추가 붉어지기 시작합니다. 장마가 끝나면 첫물 수확이 기대됩니다. ⓒ 전갑남

우리 관심 작물인 고추밭에도 고추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고춧대 아래에는 빨간 고추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아내가 창 너머로 내게 부탁합니다.

"여보, 풋고추 몇 개 따오지?"
"어떤 걸로?"
"그냥 된장 찍어먹게요!"
"그럼 아삭이고추로 딸게!"

나는 고추밭으로 향합니다. 고추밭에는 여러 종류의 고추가 심어졌습니다. 300여 주의 고추는 고춧가루 낼 작정입니다. 매운맛의 청양고추, 밑반찬용 꽈리고추, 그리고 아삭이고추까지 몇 종류가 됩니다.

 아삭이고추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오이만큼 급니다.
아삭이고추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오이만큼 급니다. ⓒ 전갑남

아삭이고추는 다섯 주를 심었는데, 다른 고추에 비해 숱하게 달렸습니다. 우리 식구가 먹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나는 아삭이고추 한 주먹을 땄습니다. 아삭이고추는 다른 고추에 비해 더 길쭉하고 굵직굵직합니다. 

아내는 내가 따온 고추를 보더니만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아니, 이게 고추야 오이야! 세상에나!"
"그래서 오이고추라고도 하잖아."

오통통한 고추가 무척이나 크게 자랐습니다. 아삭이고추는 오이만큼 크다고 해서 오이고추라 부르기도 합니다. 고추에 파프리카나 피망 등과 교배하여 개량한 품종이라 합니다.

 우리가 따 온 아삭이풋고추.
우리가 따 온 아삭이풋고추. ⓒ 전갑남

아내가 풋고추를 찍어먹을 쌈장을 만듭니다. 집된장에 고추장, 고춧가루, 마늘을 적당량 넣어 비빕니다. 고소한 맛을 내려고 구운 땅콩을 잘게 으깨어 넣습니다. 참기름을 떨어뜨리고, 참깨를 술술 뿌리니 쌈장이 완성됩니다.

아삭이고추를 분질러 쌈장에 얹어 한입 베어 먹어봅니다. 아삭아삭한 맛에다 단맛이 납니다. 고추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매운맛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씹히는 맛이 참 좋습니다. 

 아내가 만든 쌈장. 참 맛나게 만들었습니다.
아내가 만든 쌈장. 참 맛나게 만들었습니다. ⓒ 전갑남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이 풋고추 몇 개를 쌈장에 찍어먹으니 밥 한 그릇이 뚝딱 비어집니다.

찬물에 밥 말아 된장 찍어먹었던 추억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먹고 보니 문득 예전 생각이 납니다.

내가 클 땐 찬물에 보리밥을 말아 된장과 풋고추 몇 개로 여름철 반찬을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풋고추는 일손 바쁜 때 쉽게 먹는 찬거리이었습니다.

해가 늬엿늬엿 질 때까지 일하신 어머니는 마당에 건 가마솥에다 불을 지펴 부리나케 밥을 지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힘드신 어머니를 생각하여 말하였습니다.

"뭐 차릴 것 있어? 물에 밥 말아 풋고추 된장 찍어먹으면 돼! 시원한 막걸리나 한 잔 주구려!"

어머니는 텃밭에서 따온 호박잎과 가지를 밥 뜸 들일 때 쪘습니다. 가지나물을 후딱 무치고, 쪄낸 호박잎과 풋고추 여남은 개, 된장, 그리고 그늘 진 곳에 보관한 물 항아리 속 열무김치를 꺼내 상을 차렸습니다.

찬물에 보리밥을 말은 아버지는 풋고추 몇 개를 된장에 찍어 드시면서 어머니의 손맛 담긴 음식으로 고봉밥을 비우셨습니다. 

마당 한 쪽엔 마른 풀 모아 지핀 모깃불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멍석 위에 모인 식구들은 맛나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잊혀 지지 않는 그리운 날입니다.   

 풋고추를 쌈장에 찍어 막걸리를 마시면 다른 안주가 필요 없습니다.
풋고추를 쌈장에 찍어 막걸리를 마시면 다른 안주가 필요 없습니다. ⓒ 전갑남

또 풋고추반찬은 막걸리 안주로 그만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풋고추로 된장을 찍어 막걸리를 드셨습니다. 일하다 먹는 막걸리는 요기도 되고, 갈증을 풀어주는 데 그만이었습니다.

그때 먹었던 풋고추는 혀가 얼얼할 정도로 어찌나 매웠던지요? 어른들은 매워야 고추 맛이라며 매운 고추를 잘도 드셨습니다. 지금의 아삭이고추는 '이게 무슨 맛이냐'고 하실 것 같습니다.

풋고추, 비타민의 보고로 영양 만점

'풋'자가 들어간 것들은 아직 덜 익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풋고추는 덜 익은 상태에서도 고추가 지닌 맛과 영양을 그대로 가집니다. 

풋고추에는 철분과 칼륨 같은 미네랄도 풍부하지만, 비타민의 보고라고 알려졌습니다. 특히, 고추 속의 비타민A는 면역력을 높여주어 감기예방에 좋다고 합니다. 또, 비타민C가 많이 들어있는 풋고추 2개만 먹어도 하루 권장량을 섭취한다고 합니다. 

고추에 매운 맛의 정체인 캅사이신은 식욕을 돋우는데 좋습니다. 너무 매운 것을 많이 먹으면 위산과다나 궤양 같은 질환을 유발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저녁 때가 되어 아내가 냉장고에서 풋고추 몇 개를 꺼냅니다. 

"당신, 풋고추 된장 찍어먹는 거 번거롭죠? 이걸로 요리 하나 할게요!"

'뭘 하려고 할까? 그냥 풋고추 된장 찍어먹어도 맛나기만 한 걸!'

아내가 풋고추를 대여섯 개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송송 썹니다. 아침에 만들어놓은 쌈장에 매실청을 떨어뜨리고 쓱싹쓱싹 버무립니다. 깨소금을 뿌리는 것으로 끝을 냅니다. 그야말로 몇 분 만에 만든 음식입니다.

아내가 음식이름을 갖다 댑니다.

"아삭이고추된장무침! 어때요? 이걸로 막걸리 한 잔 하지 않을래요?"

 후딱 만들어먹는 풋고추된장무침. 색다른 맛이 났습니다.
후딱 만들어먹는 풋고추된장무침. 색다른 맛이 났습니다. ⓒ 전갑남

아주 간단하게 만들었지만, 색다른 맛입니다. 막걸리 한 잔이 술술 넘어갑니다. 신선한 풋고추로 비타민을 충분히 섭취한 기분이 듭니다.


#풋고추#아삭이고추#풋고추된장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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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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