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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의 뜨거운 감자, 사드. 특히 국방부가 '보안'을 이유로 대통령 보고에 사드 추가 반입에 대한 내용을 의도적으로 누락하면서 사드는 이제 국방 개혁 문제와도 연결되고 있다. 이렇게 연일 화제가 되고 있지만, 이 군수용품이 한반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칠 실질적인 영향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나오지 않았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국방과 안보의 관점에서만 다루고, 정치인들은 색깔론을 덧씌운 무의미한 논쟁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사드는 가상의 공간에 설치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물리적인 공간을 점하고, 그 공간을 생활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해친다. 지난 1년 간, 경북 성주에서는 그렇게 삶을 위협당한 사람들이 국가를 대상으로 지난한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지금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파란나비효과>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았던 사드

날 때부터 살아온 고향이라서, 가족이 함께 살고 싶어서, 아이들 키우기 좋은 동네여서, 혹은 조용한 곳에서 노년을 편안하게 보내고 싶어서. 성주에 모여 사는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이유가 있고, 그 이유란 다른 지역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평생 1번만 찍으면서' 나라에 대한 별다른 불만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1번'이 성주 군민을 배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배반의 드라마는 단순히 사드 설치 부지를 아무 설명도 협의도 없이 기습적으로 선정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사드 반대 투쟁이 지속되면서 '1번의 정치인'들은 성주 군민을 '빨갱이'나 '미친년' 취급하면서 배제하고 무시했다. 성주 군민들의 말처럼 "술 팔고 커피 팔아 세금 낼 때에는 국민이고, 사드 반대하니 미친년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가 담론 정치를 통해 '복종하는 국민'을 만들어 내는 방법일 터다. 결국 오래된 1번 지지자들은 이제 현수막을 통해 말한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제는 새누리당도 싫어요." 그리고 덧붙인다. 광주민중항쟁이나 세월호참사에 무관심했던 나의 무지를 반성한다고.

사드 반대 투쟁은 사드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아이들과 농사에 미칠 영향에 대한 염려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운동은 점차 평화운동으로 그 성격이 전환된다. 기실 '북핵 억지력'이란 사드 배치를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 사드는 핵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라 핵미사일이 발포되었을 때 그것에 대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드 버튼이 눌렸다면, 그건 이미 전면전일 터다. 그런 의미에서 북핵을 방어하는 것은 어떤 무기 체계를 갖출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오히려 전쟁을 예방하는 것, 즉 평화를 구축하는 것이다. "사드 대신 외교, 사드 대신 평화." 성주 군민들이 외쳤던 구호는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성주 여성들이 청와대 앞에서 영부인 김정숙 여사에게 사드 배치 반대 편지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성주 여성들이 청와대 앞에서 영부인 김정숙 여사에게 사드 배치 반대 편지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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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얼굴, 평화의 얼굴 

물론 국가와 싸우는 것은 녹록지 않다. 국가는 제 3부지를 말하면서 성주 군민 사이를 이간질하고, 공권력과 자본을 동원해 시위를 방해한다. 그리고 투쟁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에너지 역시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은 그 중심에 있는 여성들의 힘으로 더 단단해져간다. <파란나비효과>는 사드 투쟁의 중심에 있었던 여성들의 얼굴, 무엇보다 '어머니의 얼굴'을 담아낸다.

하지만 다큐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포착하는 것이 또 다시 여성에게 모성을 덧씌우고 가족 중심주의로 돌아가자는 의도가 아님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오히려 지금 국가가 어떻게 (록히드 마틴과 같은) 글로벌 자본과 결탁하여 사회적 안전망을 무너뜨리고 일상의 공간을 망가뜨리면서 우리의 삶을 해치는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생활을 유지하는 물리적이고 감정적인 노동의 주체인 여성들이 '어머니'의 이름으로 떨치고 일어나는 것은 그저 '본능적인 모성'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주어진 삶의 조건으로부터 비롯된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어머니의 자리에 있는 여성들은 사회가 부여한 역할과 위치 안에서 약한 자들을 배려하며 운동을 단단하게 만드는 마음을 체득한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아이를 건드린다고?!'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운동은 그 자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용산에서, 밀양에서, 그리고 세월호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고통에서 운동을 시작하여 그 마음을 계속 확장시켰다. '어머니' 정체성으로부터 강한 힘을 얻되, 그 정체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은 성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큐의 정점에 등장하는 '인간 띠잇기' 행사는 그래서 상징적이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마음을 느끼는 운동. 그렇게 투쟁은 점차로 다른 소수자와 국가 폭력의 희생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더욱 강해진다." 다큐멘터리가 전하는 '파란나비효과'는 바로 여기에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파란나비효과>를 보고 이 효과에 물들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손희정님은 문화평론가입니다. <여/성이론>, <문화/과학> 편집위원. 땡땡책협동조합 조합원이고,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이 글이 실린 <참여사회> 7~8월 합본호는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태그:#사드, #파란나비, #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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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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