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최저임금위원회가 2018년 최저임금을 7530원으로 결정했습니다. 올해 대비 16.4% 인상한 금액입니다. '최저임금 1만 원'이라는 노동계의 목표에는 못미치지만, 11년 만에 두 자릿수 인상률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터지는 축포 속에서 마냥 웃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저임금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일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
나는 막내작가가 아니다. 물론 서브작가도 메인작가도 아니다. 가끔 전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나를 소개하기가 애매하다. 그럴 때면 사람 좋게 웃으며 "백수예요. 월세는 내야하니 알바도 하고있고요. 가끔 이상한 글도 씁니다. 전에는 방송일 했었어요"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아, 작가님이시군요"라며 28살 카페 알바생을 그럴싸한 사람으로 생각해준다.
'작가님' 참 듣기 좋은 말이었다. 2017년의 최저임금은 6470원이다. 내가 일하는 카페의 시급은 7000원이다. 나는 주당 35시간을 일한다. 지난달은 개인 사정으로 며칠 쉬기도 했다. 그런데도 들어온 월급은 막내작가 2년 차 때 들어왔던 월급(세전 120)과 비슷하다. 일은 막내작가 때보다 훨씬 적게, 편하게 하는데도 말이다.
물론 카페 파트타이머로 평생 경력을 쌓으며 먹고 살 수는 없겠지만, 이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나는 내 일을 하고, 하고 싶던 말을 하려 한다. 그동안 막내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와 비슷하게 이 사회를 살아가는 막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살아남고 있는지, 내 이름으로 글을 쓰기로 한 것이다.
얼마 전 알고 지내던 막내작가 A를 오랜만에 만났다. 최근 일을 그만두었다며 하소연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몇 가지를 묻다 하나의 질문에서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평균 노동시간은 어느 정도예요?""노동시간이요? 노동시간...""그럼 다시 물어볼게요. 평균 수면시간이 얼마나 돼요?""보통 네 시간 정도 잤고, 한두 시간 자는 날도 많았어요. 많이 자야 여섯 시간 정도? 당연히 주말에도 편히 쉴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온종일 아이템을 찾아야 했거든요." A는 일을 그만두기 몇 주 전 주말엔 하루종일 울면서 일했다고 했다. 주중에 보지 못했던 엄마 얼굴을 주말 아침이 돼서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눈물이 쏟아졌단다. 이렇게까지 일해야 하나. 이렇게까지 해서 내가 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A의 하소연을 말없이 고개 끄덕이며 들었다. 출근은 있지만(보통 오전 9시에서 10시) 퇴근이 없다는 건 방송계에서 흔한 말이다. 내가 막내작가로 일했을 때를 떠올려 봐도 해가 떠 있을 때 집에 들어가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늘 늦은 시간까지 아이템 서치, 자료조사, 아니면 프리뷰를 했다. 낮에는 주로 섭외 전화를 돌려야 했으니까. 늦은 시간에 전화를 받는 건 누구나 반기지 않는 일이다(단, 방송하는 사람들은 낮도 밤도, 평일도 주말도 없다. 본인이 필요할 때 그냥 연락한다).
그렇게 일하고 이 작가가 받은 돈은 주당 세전 35만 원. 이건 본사라서 많은 편이다. 많은 외주제작사의 막내들은 100만 원, 혹은 많아 봐야 130만 원을 받아가며 밤낮없이, 평일도 주말도 없이 일한다.
밤낮없이 일했는데, 주머니는 늘 가벼웠다
내가 100만 원을 받던 시절(물론 세금은 떼고 들어온다) 월세며 관리비 등 한 달에 40만 원을 내면 대충 50만 원이 남았다. 지방에서 올라온 나는 그래도 보증금 1000만 원을 올리고 월세를 7만 원 깎았다. 내가 돈을 많이 못 번다는 것을 부모님이 뻔히 아시기 때문에 보증금을 보태주셨다.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였지만 월세를 아끼기 위해 경기권에서 편도 2시간 이상 출퇴근하는 막내 작가, 룸메이트와 사는 막내 작가(지금은 내가 그렇게 되었다), 비좁은 고시원에서 나와 비슷한 돈을 내고 잠만 자고 나오는 막내 작가도 있었다. 집에서 회사까지의 교통비를 약 10만 원이라고 한다면 이제 남은 돈은 40만 원이다. 서울에서 살 수 있는 최소 생활비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고작 남은 게 이거다.
사실 밥값 걱정은 하지 않았다. 내가 다녔던 회사들은 기본으로(인간적으로) 밥은 줬기 때문이다. 점심, 저녁 밥값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야근까지 하기 때문에 저녁밥도 먹는다)
하지만 사람마다 삶에서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다. 가령 누군가는 담배를 끊을 수 없는 것처럼 나는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면서 출근했는데 그 비용이 10만 원 정도 들었다.
막내에게는 엄청난 사치이지만 매일 아침 커피가 아니면 잠을 깰 수가 없었다.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출근하는 막내는 나밖에 없었다. 사실 '매일 커피 들고 출근하는 막내는 네가 처음'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옷을 사거나 화장품을 사면서 스트레스를 풀 때도 있었다. 요즘말로 하면 '시발비용'이다. 탕진할 만큼 많이 쓴 것도 아닌데, 이러고 나면 남는 돈이 없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까지 모아놓은 돈이 거의 없다. 이렇게 살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어쩌다 큰돈이 생기면 잘 아껴뒀다가 좋은 계절이 되면 여행을 떠났다. 여기서 큰돈이란, 회식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받은 보험금 같은 것들이다. 2년 넘게 일했지만 결혼 자금이니 뭐니, 목돈을 모으는 것은 나에게는 멀기만 한 얘기이다.
누군가는 남아있는 그 몇십만 원을 열심히 저축했을 수도 있다. 사실 일 하느라 돈 쓸 시간이 없기도 하다. 또 누군가는 그 돈으로 학자금 대출을 갚았을 수도 있다. 각자 그 남아있는 몇십만 원으로 자신만의 한 달을 꾸려나갔을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덧대며 일했다. 아이템 서치부터 자료조사, 인물과 장소섭외, 촬영스케줄 조정, 보도자료 작성까지. 사람들이 보는 몇십 분, 혹은 한 시간짜리 방송의 밑바탕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막내작가가 있다. 이들이 받는 월급은 아직도 100만 원~130만 원 정도다.(외주제작사 기준/KBS구성작가협의회 홈페이지 구인글 참고. 급여가 적혀있지 않은 편이 더 많다) 최저임금을 따져보기조차 힘들다. 본인이 하루에 몇 시간이나 일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작사는 제작비가 오르지 않아 힘들다고 말한다. 다양한 콘텐츠가 흘러넘치는 시대,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점점 많아지고, 보는 눈도 까다로워지니 완성된 방송의 질은 좋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 제작사의 입장을 아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제작비를 결정하는 본사는, 제작사의 사정도 들어주지 않는 본사는 어떨까. 2018년 최저임금으로 결정된 금액을, 과연 신경이나 쓸까?
막내 작가들은 최저임금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없다
카페 알바생이 된 나는 최저임금 인상이 기쁘다. 하지만 과거의 나인 막내작가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최저임금이 어떻게 되든, 그건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도 없을 것이다. 여전히, 아직도, 지금 이 시간에도 일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막내작가들이 원하는 것은 내가 일한 만큼의 급여를 받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삶이다. 그리고 작가로 사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달에 한번은 좋은 영화나 공연을 보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작가(作家)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되기 위해 작가이기를 포기했다.
덧붙이는 글 | 김서란 (blume7574@gmail.com) 힘든 막내생활을 하고계시거나 그만두신 분들, 하소연하고싶은 분들은 연락주세요. 많이)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