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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솔담 김상복 도예가를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지난 1일 솔담 김상복 도예가를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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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탈이 나서 주말 내내 고생을 했다는 기자의 말에 주인장은 "배탈에는 뜨거운 차가 좋다"며 작설차 한잔을 내어 준다. 꽃잎에서 우러나오는 맛과 향이 주인장만큼이나 진하다. 솔담 김상복(55) 도예가의 이야기이다.

지난 1일, 충남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에 있는 작업실에서 '솔담' 김상복 도예가를 만났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경기도 광주에서 자란 솔담은 결혼 후에는 대구에서 20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도예가로 살았다. 그러다 '흙' 하나를 보고 지난 2013년 무렵부터 정착해 산 곳이 충남 당진이다. 

이와 관련해 솔담은 "공장형 도자기를 만들어 돈도 많이 벌어보고, 사기를 당해서 망해 보기도 했다"며 "당진으로 오면서 모든 프로필을 내려놓았다. 초심으로 돌아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사람 혹은 사람됨을 빼면 '도공'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더란다. 

그가 당진에 정착한 이유는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에서 나오는 백토로 조선백자를 재연해 보고 싶다는 꿈이 있어서다. 하지만 원형 그대로의 조선백자를 재연하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일까. 지난 2월부터는 내포문화숲길 당진센터장으로도 일하고 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잠시 '외도' 중이다. 흙을 만지던 손으로 낫과 톱을 들고 숲길을 가꾸는 일이 그에게는 아직은 낯설기만 하다. 실제로 솔담은 지역 언론에 '귀촌 도예가'로 많이 소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 도예가인데 내포문화숲길 당진센터장까지 맡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도자기가 인연이 되었다. 산에서 도자기가 나오는 지형의 맥을 살피다 보면 내포문화숲길의 이정표가 계속 보였다. 내포문화숲길이 도대체 뭐하는 곳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그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팔 수 있는 도자기를 만들지 않는다. 생계를 위해 아미산입구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도예카페를 만들었다. 파전에 막걸리와 국수도 팔았다. 그때부터 내포문화숲길의 숲 해설가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지훈(내포문화숲길 당진지부)지부장을 만나게 되었다. 이지훈 지부장의 권유로 센터장직을 맡게 됐다."

백자에 좋은 사기소리 흙, 농사에는?

- 사기소리의 백자를 복원하기 위해서 당진에 온 것으로 알고 있다.
"30~40년 전만 해도 사기소리 일대는 객토를 하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비가 오면 땅이 질고 미끄럽다. 하지만 비가 오지 않으면 땅이 곡괭이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해 진다. 그것이 바로 도자기를 만드는 흙의 특징이다.

농사를 짓기는 어려운 땅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문헌에서도 면천에서 사기소리가 가장 가난한 지역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농사에 부적합한 그 백토가 도자기를 만드는 데는 가장 좋은 흙이다. 그 흙으로 조선백자를 재연하고 싶었다."

- 당진 사기소리의 흙이 도자기를 만드는 데 좋다고 하던데, 바로 그 흙(백토) 때문인가.
"그렇다. 사기소리의 백토는 도자기 용어로 말하면 카오링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카오링은 고온에서 오래 견딜 수 있는 성분이다. 카오링은 도자기를 가마에서 구울 때 도자기가 찌그러지느냐, 그대로 서 있느냐를 결정하는 물질이다. 카오링 성분이 부족하거나 질이 좋지 않을 경우 도자기가 처지거나 깨져 버릴 수 있다. 

또 사기소리 지역의 흙 속에는 잔석과 규석 성분이 많다. 이 성분은 흙에도 들어가지만 유약에도 들어간다. 사기소리 운산, 대치리 등의 흙맥에서는 좋은 질의 백토가 많이 나오고 있다. 도자기로 만들면 광채가 날 정도로 백색이 아주 우수한 토양이다."

솔담의 작업실 한켠에는 그의 작품들이 단정한 모습으로 전시가 되어 있다.
 솔담의 작업실 한켠에는 그의 작품들이 단정한 모습으로 전시가 되어 있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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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진 사기소리에서 나온 도자기는 조선 왕실에서도 쓰였다고 들었다.
"왕실 도자기를 관요라고 한다. 각 고을에서 도자기를 만들어 왕실로 올려 보냈다. 하지만 사기소리에서 올린 도자기의 빛깔이 가장 뛰어났던 것으로 알고 있다.

경기도 광주에는 금사리와 분원리란 곳이 있다. 특히 금사리 일대의 사금파리(사기그릇 조각)와 당진 사기소리에서 발견 되는 사금파리는 색깔과 만든 기법이 일치가 된다. 때문에 이 두 지역의 자기는 원료(흙)가 같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왕실 도자기를 만든 흙도 결국 당진 사기소리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

"예술가 이전에 사람이 되어야"

- 도예가로서 갖추어야 할 특별한 자세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마음과 흙과 불이 일치가 되어야 한다. 물론 가장 기본은 '인간'(좋은 인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제자 둘을 양성 중이다. 제자들에게도 인간이 되어야 예술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도예는 조각과 그림을 모두 할 줄 알아야 하는 종합예술이다. 바른 마음과 자세에서 좋은 작품이 나온다."

- 다시 숲길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숲길지킴이와 도예가는 전혀 어울리는 조합 같아 보이지 않는다. 도예가와 숲길지킴이의 궁합은 어떤가.
"사실 둘을 억지로 끼워 맞추기 위해 노력 중이다. 처음에는 센터장직을 그만 둘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작품 생활에 지장이 없을 것 같아 시작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성격상 일을 대충하지 못한다. 사람 하나를 만나도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내포문화 숲길 당진 센터가 제대로 자리 잡을 때까지는 일을 도울 생각이다."

- 그래도 숲길지킴이로서의 보람도 있을 것 같다.
"설레임 같은 것이 있다. 계절별로 숲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설레임이 생긴다. 전에는 꽃이 지면 '꽃이 지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물론 감수성이 낮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음 달에 이 노선(술길의 노선)을 다시 찾으면 또 어떤 꽃이 피어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기다려지기도 한다. 바로 그런 설레임이다."

"조선 백자 재연하고 싶다"

- 지금까지 달항아리와 같은 특이한 백자도 만들어 왔는데, 달항아리의 매력이 무엇인가.
"달을 닮았다고 해서 달항아리이다. 달항아리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각도에서는 동그랗게 보이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달항아리는 참 매력적이다."  

가운데 하얀 백자가 바로 솔담이 빚은 달항아리이다.
 가운데 하얀 백자가 바로 솔담이 빚은 달항아리이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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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인 궁금하다.
"조선 백자를 살리고 싶다. 조선백자의 맥을 잇고 있는 분들이 몇 분 있다. 하지만 당진의 백토를 이용해 옛날 방식 그대로 떡메로 치고 체로 거르면서 백자를 만들어 보고 싶다. 백자의 재현 과정도 공개해 누구나 한 번쯤 구경 와 보고 싶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

- 두 명의 제자가 있다고 했는데, 후학을 더 양성해 볼 생각은 없으신가.
"당분간은 지금 가르치고 있는 두 명의 제자에게 집중할 생각이다. 사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힘들고 벅찬 일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신세계를 일치시킨다는 것 자체도 어렵다. 물론 단순히 기능을 가르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마음 자세와 태도를 가르치려면 그만큼 힘이 든다."


태그:#솔담 , #김상복 , #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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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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