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열두 번째 지리산 종주출발 2주 전, 지리산 종주를 위한 준비가 시작됐다. 기말고사가 끝난 바로 다음 날이다. 정규수업이 끝난 뒤 모두 반바지 차림으로 갈아입고 운동장 스탠드에 모였다. 올해 지리산 종주에 도전장을 낸 아이는 모두 스무 명이다. 예년에 비해선 신청자 수가 많이 줄었지만, 인솔교사 입장에서는 결코 만만치 않은 숫자다.
지리산 종주는 우리 반의 대표적인 학급 행사다. 2000년 이래 담임을 맡을 때마다 지리산에 올랐는데, 헤아려보니 올해가 아이들과 함께한 열두 번째 지리산 종주다. 5년 전 학생부장 직을 맡았을 때는 학생회 임원 아이들과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그 이후로 첫 담임을 맡은 올해가 5년 만의 재도전인 셈이다.
미리 산행 연습을 하지 않으면 벅찬 코스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주능선 코스에다 오르내리는 거리를 더해보니 37km를 조금 넘는다. 산길로 얼추 백 리 길이다. 완만하고 탁 트인 능선길이라지만, 산행 경험이 별로 없는 아이들에게는 주위 풍광을 만끽하기는커녕 오로지 앞 사람의 발뒤꿈치만 쳐다보며 걷는 극기 훈련이기 십상이다.
게다가 이틀 안에 완주해야 한다. 초행길인 아이들의 체력을 감안하자면 2박 3일이 적당해보이지만, 여름철 대피소 예약이 쉽지 않아 일정을 단축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성수기인 여름철엔 추첨제로 운영되는 탓에 2박은커녕 단 하루짜리 예약도 하늘의 별따기다. 과거 예약이 개시되는 보름 전 오전 10시에 맞춰 컴퓨터 앞에 앉아 일제히 예약 단추를 눌렀던 기억이 새롭다.
기실 대피소 예약은 지리산 종주의 전제 조건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단체로 가는 마당에 당첨되지 않으면 계획이 애초 진행될 수 없다. 참가자가 확정되는 건 그 이후의 일이다. 곧, 당첨자 수로 최종 참가자 수가 결정된다. 참고로, 국립공원관리공단 예약정보시스템에 접속하면 한 사람이 본인을 포함해 네 명의 동반 인원을 한꺼번에 신청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공교롭게도 참가 희망자 수를 들킨 듯 다섯 명의 신청자가 최종 당첨되었다. 출발 예정일이 주말이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터라, 마치 로또라도 당첨된 것처럼 서로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우리가 예약한 곳은 벽소령 대피소다. 약수터가 멀어 다소 불편하지만, 주능선 코스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어 이틀 동안 완주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최적의 숙소다.
2주 전부터 부산을 떨었지만, 산행 준비라 해봐야 특별할 건 없다. 하체의 근력과 지구력을 키우기 위한 계단 오르내리기가 전부다. 다이어트 운동으로 잘 알려진 '하버드 스텝'이다. 굳이 단체로 헬스클럽에 갈 필요 없이, 학교 운동장 스탠드 하나면 충분하다. 스탠드의 위아래 간격이 일반 계단의 두세 배 높이여서 실전 연습을 위해서는 그만이다.
처음 며칠 동안은 300회, 이후 500회, 700회로 점차 횟수를 늘려나갔다. 출발 나흘 전엔 1000회를 찍었다. 연일 계속된 폭염을 피해 오후 6시를 넘겨 연습을 했는데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무척 힘들어했다. 도중에 요령을 피우거나 갖은 핑계를 대며 불참하는 아이도 하나둘 생겨났고, 몇몇은 연습한 다음날 허벅지와 종아리 통증을 호소하며 조퇴를 신청하기도 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어도 훈련을 멈추진 않았다. 오후 6시면 어김없이 모두 등교해 운동장에 모였고, 계단을 연신 오르내리며 땀을 비 오듯 쏟아냈다. 2주 동안 지속된 훈련으로 아이들의 체력도 그만큼 좋아졌을 테지만, 무엇보다도 지리산 종주가 결코 쉽지 않은 도전임을 깨닫고 적절한 긴장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그들에게 지리산은 더 이상 그렇고 그런 산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지리산 종주 구간을 완주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부러 지어낸 이야기지만, 아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요량으로 연습을 하는 내내 되뇌도록 했다. 산이라곤 백두산과 제주도 한라산밖에 몰랐던 아이들에게 지리산은 가장 익숙한 이름이 되어갔다. 지리산을 소재로 한 시 등 관련 자료를 아이들 수만큼 복사해 배낭에 담아간 것도, 지리산 종주의 기억이 지리산이 품은 우리의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대피소에 도착해 취사를 마치자마자 다들 쓰러져 잠들어버린 통에 준비해 간 학습 자료를 읽기는커녕 배낭에서 꺼내보지도 못했다. 괜히 배낭의 무게만 늘렸을 뿐, 애당초 대피소에서의 공부란 지나친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마음을 엿본 아이들 몇몇은 '사서 고생한' 담임이 가여웠는지, 반쯤 감긴 눈으로 언제 공부할 건지 물어오기도 했다.
이번 산행에는 중3 아들 녀석과 졸업생 제자, 동료교사, 그리고 학부모 한 분이 동행했다. 사실 지리산이 처음인 스무 명의 아이들을 담임교사 한 사람이 인솔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해마다 장담하고 계획하는 건 그때마다 졸업한 제자들이 함께해주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갓 졸업한 대학생도 있고, 결혼한 직장인도 있다.
당시에는 하나같이 "지리산에 다시오면 성을 간다"며 씩씩거리던 아이들이었는데, 지금은 부러 휴가를 맞출 정도로 지리산 종주의 열성팬으로 거듭났다. 그들은 산행 중 후배들에게 진학 상담을 해주기도 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짐을 대신 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드물지만 탈진 등으로 도중에 산행을 멈춰야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후배의 하산에 기꺼이 동반하기도 한다. 지금껏 12번의 종주가 가능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다.
이따금 등산에 익숙한 동료교사가 동행하는 경우는 있어도, 학부모가 함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는 당신의 자녀와 함께 지리산 종주를 하는 것이 인생의 첫 번째 버킷리스트였다며, 맨 먼저 참가신청을 했다. 비록 유경험자는 아닐지라도 친구의 아버지가 동행한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큰 심리적 위안이 될 수 있다.
드디어 당일(7월 29일) 아침이 밝았다. 아침 6시 30분에 학교에서 출발하기로 돼 있었다. 보통 등교 시간이 8시 30분이니, 아이들에게는 일어나기조차 힘든 이른 시간이다. 하지만 숙소인 벽소령 대피소까지 17km 남짓을 걷자면 노고단 입구인 성삼재 휴게소에 늦어도 8시 30분 이전엔 도착해야했다. 아이들의 더딘 걸음으로 시간당 2km를 갈 수 있다 치면, 꼬박 9시간 가까이 걸어야하는 만만치 않은 거리다.
아침 6시도 안 됐는데, 학교에 도착했다는 카톡이 연이어 울렸다. 아침도 챙겨 먹고 점심 도시락까지 준비하자면 무척 바빴을 텐데도 지각한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평상시 지각을 밥 먹듯 하던 한 아이는 버스보다 먼저 와 있었노라고 으스대기도 했다. 전날 허리를 다쳐 갑작스럽게 불참하게 된 한 아이를 제외하고, 인솔자들을 포함해 모두 24명이 대장정에 올랐다.
[첫째 날] 성삼재 휴게소에서 벽소령 대피소까지
휴가철 주말인데다 날씨마저 선선했는데, 성삼재 휴게소는 의외로 한산했다. 예전엔 주차장이 만원이라 입구에서 아예 버스의 진입을 막는 경우도 흔했다. 산에 오르기에 조금 늦은 시간인 탓일까. 산책 삼아 노고단을 다녀오려는 가벼운 옷차림의 가족 단위 등산객들만 간간이 보일 뿐, 지리산 종주를 목표로 한 우리 같은 단체 등산객들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헛갈리지만, 성삼재 휴게소가 문을 연 뒤 성산 노고단은 '뒷동산'이 되었다. 샌들 차림의 어린 아이와 손잡고 산책 삼아 다녀올 수 있을 만큼 쉽고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느긋한 걸음으로 왕복 두세 시간이면 충분하다. 도로가 지리산을 관통하기 전까지만 해도 노고단은 화엄사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꼬박 네다섯 시간 발품을 팔아야 가닿을 수 있는 신성한 곳이었다.
노고단에 오르는 길, 아이들의 입에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노고단 대피소에 이르는 넓은 도로를 보고는 "괜히 쫄았다"면서 배낭을 메고 달리는 시늉을 해보이기도 했다. 그것이 섣부른 객기였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계단길이 나타날 때마다 아이들은 헉헉대기 시작했고, 노고단 대피소에 채 닿기도 전에 온몸은 땀에 절어버렸다.
주능선 코스가 시작되는 노고단 고갯길에 오르자 짙은 구름이 산을 휘감기 시작했다. 지리산의 기상예보는 전혀 믿을 게 못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리산의 날씨는 변덕스럽기로 유명하다. 당장 호우라도 내릴라치면 주능선 코스로의 진입조차 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구름은 산행에 있어 더없이 고마운 존재다. 여름철 땡볕을 가려주기 때문이다.
서둘러 단체사진을 한 장 찍은 후, 고갯마루를 넘어 교행이 어려울 정도로 좁은 길에 들어섰다. 진짜 지리산 종주는 이곳에서부터다. 임걸령과 삼도봉을 거쳐 뱀사골과 피아골 계곡이 만나는 화개재에 이르는 6km 남짓의 산행 길은 주능선 코스 중 가장 평이한 구간이다. 초보자도 세 시간 남짓이면 족하다. 나중 아이들은 이 구간을 지리산을 종주하려는 등산객들에게 건네는 지리산의 '반가운 환영 인사'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쉬웠다는 뜻이다.
두꺼운 구름은 햇볕만 가로막는 건 아니다. 능선에서 내려다보이는 경관도 차단했다. 숲의 터널을 통과해 이따금 사방이 탁 트인 곳이 나와도 그때마다 짙은 구름은 자신의 모습 외에는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어디가 하늘이고 산인지조차도. 아이들은 지금 걷고 있는 곳이 구름 속이라는 것 외에 여기가 지리산임을 알려주는 건 아무 것도 없다며 투덜거리곤 했다.
"하나를 얻었으면 기꺼이 다른 하나를 포기할 줄 알아야 해. 두 가지를 모두 바랄 순 없어."몇 시간 째 지리산의 풍경은커녕 구름 때문에 배낭과 옷만 눅눅해졌다는 친구들 앞에서 한 아이가 어른스럽게 꺼낸 말이다. 자신은 걷는 게 너무 힘들어서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햇볕보다는 차라리 구름이 낫다고 말했다. 날씨를 차치하고라도 거의 백리 길을 이틀 안에 완주해야하는 빠듯한 상황에서 풍경 운운하는 게 사치라는 걸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점심을 먹은 뒤 오후가 되자 아이들의 체력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리산의 '환영 인사'가 끝나는 화개재부터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이어지는 구간에서다. 더욱이 세 시간 거리인 연하천 대피소까지는 변변한 약수터조차 없다. 이즈음 아이들은 물을 마시기 전에 반신반의하며 소금을 찾았고, 이내 소금의 가공할 '위력'에 놀라기 시작했다.
출발 전 개인적으로 반드시 챙겨야 할 준비물 목록에 소금이 있다는 걸 아이들은 의아하게 여겼다. 한 아이는 소금은 챙기면서 왜 고춧가루나 조미료 등은 왜 뺐느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소금을 단지 취사용으로 생각한 것이다. 수업시간에 배웠을 텐데도, 아이들은 땀이 많이 날 때는 물 대신 소금이 효과적이라는 것과, 물을 충분히 마시되 한꺼번에 많이 들이켜서는 안 된다는 '상식'을 이번 산행을 통해 얻게 된 최고의 수확이라고 말했다.
출발 전 아이들의 배낭 속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전날 각자 준비할 목록을 인쇄해 나눠주고 일일이 종이에 적어보게 하는 등 입이 닳도록 강조했건만, 막상 배낭엔 그것들이 아예 없거나 턱없이 부족했다. '충분히', '넉넉히'라는 말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이들마다 달랐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산행이 난생처음인 아이들을 탓할 수 없는, 내 불찰이었다.
이동 중에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도록 초코바나 견과류, 육포 등을 충분히 챙기라고 했더니 고작 두세 개 담아온 아이가 태반이었다. 또, 아침과 저녁 추위를 막을 수 있도록 바람막이 점퍼나 긴팔 옷을 준비하라고 신신당부했건만, 설마 한여름에 추울 줄 몰랐다며 그제야 후회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내 배낭 속 초코바와 점퍼는 그런 아이들을 위한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연하천 대피소에 이르자 아이들은 가을철 낙엽 마냥 바닥에 널브러지기 시작했다. "여기가 숙소였으면 좋겠다"는 하소연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족히 두 시간은 더 걸어야 벽소령 대피소에 닿을 수 있다는 말에 모두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을 위로해준 건 단 하나, 연하천의 샘물이었다. 아이들은 '물이 꿀처럼 달다'며, 이런 느낌은 여태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연하천에서 벽소령에 이르는 3.6km는 실제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가 훨씬 먼 구간이다. 2박3일의 여유로운 일정이었다면, 대개 연하천 대피소를 첫날 숙소로 예약했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그다지 험하거나 길지 않은 이 구간이 이틀 간의 산행 중 가장 힘들었다고 손꼽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산중의 해는 빠르게 저물었고, 그렇잖아도 지친 아이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후 6시를 넘겨서야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했다. 짙은 구름 사이로 어슴푸레 달무리가 보였고, 이내 주위가 어두워졌다. 아이들은 서둘러 찾아든 어둠에 낯설어했다. 구름에 긁힌 달은 끝내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듣자니까, '벽소명월(碧霄明月)'이라 하여, 이곳에서 바라본 푸른 달빛이 지리산 8경 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하는데, 내심 아쉬움이 컸다.
대피소의 침상에 몸을 누이자마자 아이들은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세수나 양치질은커녕 양말조차 그대로 신은 채 잠든 아이도 보였다. 부러 깨워 준비해 온 물티슈로 몸을 간단히 닦게 한 후 억지로 옷을 갈아입게 했다. 발 냄새, 땀 냄새 가득한 침상 위에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잠든 모습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수학여행 때라면 밤새 수다 떨며 놀았을 아이들이다.
출발 전 아이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씻는 문제였다. 산 위에서 하루 묵는다는 걸 설레어하던 한 아이는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는지를 물었고, 비누나 샴푸를 못 쓰게 하면 얼굴에 바른 선크림은 어떻게 지우냐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평상시 샤워를 못하면 잠을 잘 수 없다는 이유로 참가를 포기한 아이가 있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씻는 건 먹는 것 못지않게 절박한 문제였다.
그토록 고민하던 몸 씻기와 양치질조차 귀찮고 번거로운 일로 여길 만큼 피곤한 하루였던 거다. 불과 버스 두세 정거장 거리도 차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17km는 여태껏 단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거리일 게다. 그것도 험한 산길이었으니, 발이 퉁퉁 붓고 곳곳에 물집이 잡힌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들이 분신처럼 여기는 스마트폰도 이곳에선 애물단지가 되어 발아래 나뒹굴었다.
[둘째 날] 벽소령 대피소에서 지리산 정상 천왕봉까지
동트기도 전인 새벽 5시, 동시에 기상 알람이 울렸다. 가급적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해 해지기 전에 서둘러 대피소에 도착하거나 하산하는 것이 산행의 ABC다. 몇몇 아이들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깨어 멍 때리듯 침상에 앉아있었다. 지난 밤 채 9시가 되기 전에 모두 잠들었으니, 평상시 같으면 충분히 잔 셈이지만 피곤이 풀리지 않은 듯 하나같이 부스스한 얼굴이다.
아이들은 어른들과는 달리 하룻밤 자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체력이 회복된다고들 하지만, 이번만은 아닌 듯했다. 침상을 기듯 찾아와 종아리와 발바닥을 만지며 아침부터 파스를 찾는 아이가 있었다. 서둘러 모포를 정리하고 취사 준비를 하자고 다그쳐도 돌부처라도 된 듯 꿈쩍이지 않았다. 여전히 잠에서 깨지 않은 아이, 만사가 귀찮다는 듯 나 몰라라 하며 다시 드러눕는 아이까지, 아이들의 옅은 신음소리와 함께 둘째 날 산행이 시작되었다.
명색이 인솔자인데 그런 그들 앞에서 힘든 내색을 할 순 없었다. 되레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짐을 대신 들어줄 각오와 체력이 필요했다. 둘째 날은 20km, 곧 오십 리 산행 길이다. 다행히 정상인 천왕봉에서 버스가 기다리는 중산리 주차장까지 7.3km 구간이 전부 내리막길이어서 그나마 위안 삼을 만한 코스다. 무릎과 발목이 시큰거리는 가파른 내리막이지만, 그래도 오르막보다야 나을 테니 말이다.
아침을 먹고 출발한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급기야 사달이 났다. 한 아이가 땅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다리에 경련이 일어난 것이다. 고통스러웠던지 허공에다 대고 온갖 욕설을 쏟아냈다. 급히 경련이 난 종아리에 사혈 침을 꽂고, 그의 배낭에 든 짐은 서로 나눠 짊어졌다. 어떻든 다음 대피소까지는 가야 했기 때문이다. 세석 대피소까지는 아직 4km 가까이나 남았다.
친구들은 돌아가며 기꺼이 그의 짐을 건사했다. 그의 느려진 보폭에 맞추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저 또 다른 아이가 이어서 쓰러지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세석 대피소에 닿은 건 오전 10시 반, 예정보다 한 시간 가까이 늦었다. 두 발을 질질 끌 듯 걸어온 그는 더 이상 못 가겠다는 듯 나무 벤치에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사실 그는 약한 체력보다 산행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먹을 것만 바리바리 챙겨왔을 뿐,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등산화와 모자, 스틱, 장갑 등 어느 것 하나 준비되지 않았다. 얇디얇은 발목 양말에 패션 운동화를 신고 길을 따라 나선 것이다. 더욱이 운동화의 끈도 유행인 듯 느슨하게 매어져 있어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기 힘든 차림이었다.
30분쯤 지났을까. 조심스럽게 하산을 권했더니 괜찮아졌다며 일정을 계속하겠노라고 대답했다. 한 친구는 여벌의 두꺼운 양말을 빌려주었고, 다른 등산객들은 힘내라며 그에게 간식을 건네기도 했다. 또, 무릎을 꿇은 채 부러 그의 신발 끈을 풀어 다시 바짝 조여 묶어주는 등, 쓰러지기 전까지 '패션'을 고집하던 그를 하나같이 욕하기보다 격려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충분한 휴식 뒤 세석 대피소를 나섰는데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거나 숨이 차서 더 이상 못 걷겠다는 아이들이 속출했다. 당장 나눠 짊어진 짐 때문이다. 등산을 하다가 일행 중 한 사람이 지쳐 쓰러지면 연쇄적으로 낙오자가 발생하기 십상이라 그다지 당황하진 않았다. 휴식 시간은 하염없이 늘어났고, 그만큼 선두와 후미의 간격은 점점 더 벌어졌다.
오후 1시 반. 천신만고 끝에 정상 길목 장터목 대피소에 닿았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점심을 해결하고 천왕봉을 향해 길을 나섰을 시간이다. 이러다간 해가 진 뒤 하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렇잖아도 지친 아이들에게 시간이 촉박하다며 라면으로 대충 점심을 때우도록 채근했다. 그들은 식도락의 즐거움 따위는 잊은 지 오래라는 듯 순순히 따라주었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는 불과 한 시간 남짓 거리다. 그런데, 산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끝낸 아이들이 풀어헤친 배낭을 정리하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대피소에서 막 벗어나 천왕봉에 오르는 곧추 선 돌계단 길을 보며 긴장이 풀어져버린 것이다. 패션 운동화 차림의 그를 비롯해 서너 명의 아이들이 정상 등정과 하산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의사를 타진해가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운동 부족 외에 그들에겐 한두 가지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우선, 정상 등정이나 완주에 대한 열망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다른 친구들에게 견줘 동기부여가 잘 안 되어 있다 보니, 당장의 고통을 견뎌내려는 의지가 발휘되기 어렵다. 걷는 동안 내내 그들은 내가 반 아이들과 함께 열두 차례나 지리산 종주를 해오고 있다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무엇보다도 출발 전 담임이 지시하고 당부한 사항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리산 종주처럼 장거리 산행을 하는 데 있어서는 샌들이나 운동화는 말할 것도 없지만 새로 구입한 등산화도 금물이다. 십중팔구 물집이 잡혀 내내 고통을 겪게 된다. 스틱도 다리에 쏠리는 하중을 분산시키는 유용한 도구지만, 올바른 사용법을 모르면 번거로운 짐이 될 뿐이다.
이번 산행을 대비해 등산화와 배낭을 새로 구입한 아이들이 많았다. 심지어 양말, 모자, 버너, 코펠에서 스틱에 이르기까지 등산용품을 '풀 세트'로 장만한 경우도 있었다. 모르긴 해도, 자녀가 지리산 종주에 나선다고 하니, 대견해 한 그들의 부모가 큰 맘 먹고 사준 것일 테지만, 그것이 외려 화를 자초한 꼴이 됐다. 어렵고 힘든 산행일수록 편하고 익숙한 제 옷과 등산화가 좋은 법이다.
등정과 하산 사이에 고민하던 몇몇 아이들이 등산로 안내판 앞에 모여 거리를 헤아려보고 있었다. "네가 하산한다면 나도 따라 가겠다"면서 서로 속마음을 떠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친구들은 정상을 코앞에 두고 지금까지 걸어온 게 아깝지 않느냐며 조금만 참고 함께 가자며 부추겼다. 결국 둘 사이의 거리 차이가 2km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모두 완주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제 더 이상 낙오는 없다. 천왕봉에 오르면 내려가는 길만 남았으니, 119를 불러 긴급 후송해야 하는 경우만 아니라면 도중에 하산할 수는 없다. 지난 이틀 동안 산행에 최적의 날씨를 선물했던 지리산이 시샘을 부렸다. 제석봉을 지나가는 사이 갑자기 굵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단박에 땀을 씻어주는 비가 반가웠던지 다들 배낭 덮개만 씌우고 우의는 입지 않았다. 갑작스레 내린 요란한 비는 지리산 종주의 종착점 천왕봉이 우리에게 건넨 '환영 인사'다.
오후 3시 40분. 드디어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해발 1915m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바로 전 장터목 대피소에서 하산을 고민했던 아이들이 맨 먼저 정상 표지석을 얼싸안은 채 인증 샷을 찍었다. 표지석에 새겨진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는 글귀를 읽고는 다들 뭉클해하는 표정이었다. 비를 뿌리던 하늘도 옅은 구름만 남긴 채 개어 장쾌한 풍광을 허락해주었다.
[후기]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지리산에 다시오면 성을 간다."아이들이 소감을 말하기 전 수식어처럼 덧붙인 말이다. 물론, 나 역시 깎아지른 듯 가파른 중산리 길을 내려오며 속으론 열 번도 더 되뇌었던 말이다. 지난 열두 해 동안 매번 들어온 터라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이틀 동안 지켜보건대 예전의 선배들에 비해 훨씬 더 힘에 부쳐하는 것 같다. 섣부르지만, 해가 갈수록 아이들의 덩치에 비해 체력이 약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이들끼리 갈등도 겪고, 챙겨온 구급약이 동이 날 만큼 힘든 산행이었지만, 19명의 아이들 중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서로 격려하고 의지하며 완주해냈다. 스마트폰을 가장 오랫동안 멀리한 경험이었다는 아이, 엄마가 해준 밥이 너무 먹고 싶다는 아이, 입안이 찝찝해 지금 양치질을 한다면 10분 넘게도 하겠다는 아이, 더운 물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찬물로 샤워 한 번 하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아이까지, 그들의 완주 소감은 대체로 소박했다.
그런가 하면, 뭐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지리산 종주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겠노라는 아이도 있었다. 자신의 체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자괴감이 들었다는 한 아이는 앞으로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의 기회였단다. 또, 자신의 진로에 대해 숙고해볼 요량으로 참가했다는 한 아이는 그 바람 자체가 망상이었다면서, 종일 걷다 보니 머리가 아닌 오로지 다리에만 생각이 집중되더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사실 지리산에서의 이틀 동안 만난 다른 등산객들로부터 숱하게 들었던, 언뜻 찬사 같은 충고가 있다. 나더러 대단한 용기를 지닌 교사라는 것. 요즘 같은 세상에 반 아이들 데리고 사서 고생을 하는 교사가 어디 있겠냐고 반문했다.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나면, 담임교사로서 책임져야 할 일이 한둘 아닐 텐데 무슨 배짱으로 이런 일을 벌이냐는 것이다. 열이면 열,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대피소 직원 역시, 일부 대안학교에서 특별 프로그램으로 종주를 하는 건 봤어도 우리처럼 학급 단위로 오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하긴 이틀 동안 같은 조끼를 갖춰 입은 산악회와 가족, 친구 단위의 등산객은 여럿 만났어도 우리처럼 학생들이 단체로 온 경우는 없었다. 그래도 예전엔, 비록 흔하진 않았지만, 학생들을 이끌고 온 교사들이 있어 오며가며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곤 했다.
학교에서 동료교사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교사들끼리라면 몰라도, 산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이들을 데리고, 그것도 이틀 동안 지리산을 종주한다는 건 무모한 시도라는 거다. 복잡한 행정 절차와 힘든 건 둘째치고 사고의 위험과 책임 소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다들 마음은 있어도 못 한다고 했다. 교사들의 순수한 열정을 보호할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고서는 지리산 종주와 같은 교육활동은 '용기'가 아니라 '객기'라는 지적이다.
아이들과 함께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힘들었던 기억일수록 오래 남는 법, 어떻든 입시 공부에 찌든 아이들의 학창시절 소중한 추억 하나를 선물한 기분이 들어 담임교사로서 뿌듯하다. 이번에 완주한 아이들 중 또 몇몇은,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나중에 후배들의 지리산 종주에 함께할 것이다. 체력이 허락하는 한, 내년에도 아이들과 함께 지리산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