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정부 형태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고 한다. 예상한 대로 대통령중임제와 내각제의 다툼이었다. 여당은 전자를 지지하고, 야당 자유한국당은 후자인 의원내각제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 때인 6월 개헌국민투표를 하자는 것은 대통령과 정치권의 암묵적 합의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헌법을 개정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너무 촉박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지만 국회개헌특위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견제라는 대전제가 합의된 사항이고, 그 기저에 권력을 대통령에게서 국회로 옮기겠다는 국회의원이라면 누구라도 싫지 않은 방향성도 정해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세균 국회의장마저 지난 17일 제헌절을 맞아 "연말까지 헌법 개정안을 도출"하라는 압력을 가할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내년 3월 발의, 5월 국회의결, 6월 국민투표로 개헌을 완성한다는 로드맵은 완성됐다. 마치 87년의 개헌을 보는 것처럼 정치권만의 개헌 로드맵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제기된다. 촛불시민이 만든 개헌 분위기에 정작 시민은 소외된 것이다.
이를 의식한 개헌특위는 공론조사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여당간사이자 개헌특위 제2소위원장인 이인영 민주당 의원은 지난 1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김성덕입니다'를 통해 "개헌 절차는 국회가 최종적으로 밟지만 다양한 국민 참여 방법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국민토론회 전후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등 여론의 변화 추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정부형태에 대한 의견 절충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의견을 심도 있게 청취하는 여유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 시점에서 과연 내년 6월 국민투표를 시행하는 것이 물러설 수 없는 일정인지에 대한 국민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런 면에서 개헌절 경축사를 통해 밝힌 정세균 국회의장의 3원칙에 무게가 실린다. 정 의장은 "국민에 의한 개헌, 미래를 향한 개헌, 열린 개헌"을 강조했다.
이번 개헌에는 단지 정부형태만이 문제는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견제를 위해 권력을 국회로 옮기는 것이 아닌 지방분권화로의 요구도 충분히 수렴되어야 한다. 또한 정부형태의 변화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선거법 개혁이다. 선거법의 대혁신 없이는 거의 개헌의 의미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문제의식이 없지 않은 국회도 6월 15일 더불어민주당 우원식·자유한국당 정우택·국민의당 김동철·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 등이 모여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설치까지는 합의를 한 상태이다. 선거구제 개혁의 핵심은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수용 여부일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서 국민의당, 정의당은 이에 찬성하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예전 새누리당 시절 이에 반대하면서 오히려 비례대표 축소를 주장한 바 있어 합의는 됐다고 하지만 정작 선거법 개정까지 순탄할 지는 의문이다.
워낙 현안이 많은 새정부 초기라 앞으로의 수십 년을 좌우하게 될 헌법개정이 제대로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고, 언론도 능동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의원내각제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개헌특위 분위기라면 심상치 않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방조한 정당이 이제 와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탓하며 제왕적 내각제를 의도한다는 지적은 진작 있어왔다. 여당인 민주당도 권력이 국회로 이동하는 것에 완강히 반대할 것이라는 장담은 없다.
헌법은 다시 말하지만 모든 국가권력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것을 항상 일깨워준다. 헌법을 개정하고자 하는 것은 그 확인이며, 강조라 할 것이다. 이번 헌법 개정이 기득권을 나눠가진 세력들의 이해에 따라 왜곡되는 개악을 막기 위해서 국민은 최후의 통과의식이 아니라 개정의 주체로 존중되어야 한다. 국회개헌특위가 은밀하지 않도록, 위태하지도 않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