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주 제2작전사령관과 부인 전아무개씨가 공관병들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리고 협박, 폭언을 한 사실이 불거지면서 여론은 들끓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박찬주 제2작전사령관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이에 앞서 부인 전씨는 7일 출석해 15시간의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사령관과 그의 부인 전아무개씨의 갑질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특히 사실상 장성들의 사병으로 전락한 공관병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여기에 한 가지 관점을 더하고 싶다. 바로 그리스도교 윤리의 붕괴다.
박 사령관 부부의 갑질이 불거지면서 이들의 신앙이력은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갑질이 드러나기 전 박 사령관 부부는 '독실한' 기독교(개신교) 신자로 알려져 있었다. 박 사령관은 교회의 최고 직위인 장로이고, 전씨는 권사다. 박 사령관은 지난 해 6월 대구서부교회에서 열린 '제66주년 6.25상기 민족복음화를 위한 구국기도회'에서자신의 어머니가 새벽마다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고 고백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박 사령관 부부의 갑질이 알려지면서, 이들의 신앙관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박 사령관 부부의 갑질을 처음 세상에 알린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지난 2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교회 가서 장로님이 뭘 배우셨는지 모르겠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노예화를 거부하는 그리스도교 신앙 윤리가톨릭과 개신교를 아우르는 그리스도교 신앙은 단순히 윤리적 측면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나 도덕률은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엄격하다. 세상법의 경우, 여성에게 음욕을 품어도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음욕을 품은 것만으로도 죄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아우르는 그리스도교 신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노예화를 거부한다. 이 같은 사상은 이스라엘 민족의 아픈 역사에서 비롯됐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람세스 2세 치하에서 노예 노동을 강요당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들이 강제로 징용당해 고된 노동을 한 것처럼 말이다. 아비도스 신전, 룩소르 신전, 아부심벨 대신전 등 관광객들로 붐비는 이집트 신전들 대부분이 유대인의 노예노동으로 건설된 건축물들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인도로 노예생활에서 벗어난 이후 지금까지 그 시절의 아픈 역사를 기억한다. 그들의 집단 기억은 단순히 그 시절의 역사를 되새기는데 그치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혹시라도 동족이 누군가에게 예속돼 있으면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한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권력에 예속된 사회적 약자의 권리 증진에 앞장섰다.
이 같은 전통에 따른다면 박 사령관 부부의 갑질행각은 명백히 그리스도교 신앙 윤리를 거스르는 중대 범죄 행위다.
상황이 이런데도 박 사령관 부부는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기색이 역력하다. 박 사령관의 부인 전씨는 7일 군 검찰에 출석하면서 "아들 같다는 마음으로 대했는데 상처를 줘 미안하다"고 해 가뜩이나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이 지점에서 박 사령관 부부에게 묻고 싶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과연 당신들의 삶에 어떤 의미였냐고 말이다.
이번에도 등장한 값싼 용서의 복음 그러나 불행하게도 개신교계 안에서 박 사령관 부부를 감싸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포문은 시온소교회 김성길 원로목사가 열었다. 그는 지난 6일 주일 설교시간에 이렇게 설교했다.
"제가 몇 사람에게 확인했어요. 설문 조사해 봤는데, 장로님들, 남자 집사들, 청년들 (군대에) 다녀왔잖아. 훈련소에서 (훈련)받고 자대 배치 됐는데, 4성 장군 사택, 관저에 배치됐어. 좋아요 나빠요? 다 물어보니 좋다 하더라고. 왜? 각종 훈련은 다 열외야. 훈련 안 받아 절대로. 또 짬밥을 안 먹어요. 개들도 부잣집 개가 나아요."그뿐만 아니다. 아시아연합신학대학교 총장을 지낸 바 있는 근동고고학 박사 1호 고세진 박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육군 대장이 공관병에게 갑질? 국군 대장에게 갑질하지 말라!'는 제하의 글을 올렸다. 고 박사는 이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공관병이 되는 것은 운이 좋거나 빽(배경 - 글쓴이)이 좋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빽 좋은 공관병은 상관도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공관병이 된다면, 사복을 입고 총을 만지지 않아도 되는 날이 태반이라고 봐도 됩니다.짐승과 사람이 다른 것은, 사람은 어떤 상황이 되면 사실을 왜곡시키고 과장시켜서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작전을 벌이는 것입니다. 배신하는 겁니다. 공관병이건 당번병이건 그 자리에 갈 때에는 얼마나 좋아하고 행복했겠습니까? (중략) 공관병들이 자기가 모시는 대장과 그 가족에 대해서 온갖 소리를 다 하고 있고, 신문들은 그것을 연일 대서특필하고 거기에다가 상상력까지 동원을 해서 그림을 크고 크게 그려서 대장을 막장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여러분! 나라를 지키는 군의 기둥인 장군을 이런 식으로 몰아내서 되겠습니까? 그 장군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 따져 보기도 전에 마녀 재판식으로 언론에서 먼저 때려 잡는 이런 행태를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 보아야만 합니까?"김성길 원로목사나 고세진 박사나 이번 사태를 '편하게 군생활 하는 공관병의 반란' 쯤으로 여기나 보다. 공관이 일선 부대 보다 근무여건이 나은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은 군 장성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 군에 입대한 젊은이들을 사병처럼 부렸다는데 있다.
또 앞서 지적했듯 박 사령관 부부가 병사들을 대했던 방식, 그리고 갑질이 불거진 뒤 보인 태도는 명백히 그리스도교 신앙과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개신교계에서 그를 감싸는 목소리가 나왔으니, 그리스도교인으로서 그저 부끄럽기만 하다.
박 사령관, 자리에서 책임지라 한국교회는 자주 중범죄자들에게 값싼 용서의 복음을 설파했다. 1980년 8월 한경직, 김준곤, 정진경 등 개신교 목회자 23인이 전두환씨를 불러놓고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한 기도회'를 연 게 대표적이다. 당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시점이었다. 결국 개신교 목회자들은 전두환씨와 신군부의 손에 가장을, 형제를, 친구를 잃었던 이들의 아픔은 외면한 채 새로 권력자로 부상한 전씨를 축복한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이 임박했던 지난 3월1일 은혜와진리교회 신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태극기를 흔든 것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개신교의 '흑역사'다.
박 사령관 부부에게 바란다. 부디 당신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윤리를 거스렀음을 깨닫고 피해 병사들에게 사과하라. 그리고 한국교회와 사회 앞에 고개 숙여 회개하라. 특히 박 사령관은 책임 질 일이 있으면 자리에서 책임지라. 그게 군 서열 3위의 사성장군으로서 당연히 보여야 할 태도다.
그리고 한국교회에 당부한다. 값싼 용서의 복음은 효용을 다했다. 이미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가 중대한 기로에 놓였을 때, 특히 2016년 1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이어진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적폐세력의 편을 들며 사회의 역행에 일조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성소수자 혐오를 확산시키고 성소수자 인권증진에 앞장섰던 한 목회자를 상대로 마녀사냥을 벌이고 있다. 이 길의 끝이 낭떠러지임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이제 더 이상 값싼 용서를 설파하지도, 적폐세력을 편들지도 말라. 지금의 발걸음을 돌이키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영영 설 자리를 잃어버릴 것이라 확신한다.
끝으로 기자가 한국교회를 대표할 위치에 있지는 않다. 그러나 먼저 군복무를 마친 선배로서,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박 사령관 부부의 갑질에 피해당한 병사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회개한다.
덧붙이는 글 | 미주 한인매체 <미주 뉴스앤조이>에 동시 송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