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될 줄 알고 떠난 길이..."
딸이라는 이유로 온전한 대접받지 못한 그 시절, 입 하나 줄이자고 떠난 길이 평생의 상처로 남은 할머니가 있다. 그들은 간호사가 될 수 있게 해 준다고 데려갔지만 그녀는 몸과 마음에 상처만을 입고 고향땅 당진으로 돌아왔다. 당진의 이기정 할머니의 이야기다.
나라 잃은 백성이 겪은 고초가 그녀뿐일까. 하지만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살아 돌아온 그녀가 고향땅에서조차 숨죽이며 산 고통의 긴 세월을 그 누가 당신만의 고통이 아니었으니 그만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는 일본군의 만행을 진심어린 사과와 법적인 피해 보상도 없이 소위 '불가역적' 합의를 하고 만다. 꽃다운 소녀들을 지켜주지 못한 나라는 백발이 된 그녀들을 다시 한 번 외면한 격이다. 지금도 일부 단체와 인사들은 '그만 하라', '이제는 용서할 때'라는 말로 그녀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당진의 청소년들이 이런 망언에 "진정한 사죄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그리고 당진의 어린 소년 소녀들은 위안부 문제 해결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앞둔 12일 당진의 청소년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과 지역 위안부 등록 할머니 중 유일한 생존자이신 이기정 할머니를 알리기 위해 '당진청소년 평화나비 Festa'를 열었다. 이번 행사는 '평화나비 페스타' 중 전국 최초로 청소년들이 직접 기획한 행사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단체는 '당진평화나비'와 '당진시 학생회장단 협의회'(D.S.P)다. 또한 청소년들의 행사 진행을 위해 당진시어울림여성회와 당진시 등이 후원했다.
본 행사는 축하영상으로 시작했다. 이기정 할머니(93세)는 불편하신 몸 때문에 직접 나오시지 못하는 대신 영상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또한 축하영상에는 김홍장 당진시장과 행사 후원자들이 당진의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감사함과 청소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담겼다.
공연의 본격적인 시작은 당진예술소년소녀 합창단이 맡았다. 초등학생으로 구성된 합창단은 '꽃같은 소녀를 어쩌나'와 '우리는 알아요'라는 곡을 불렀다. 이 곡들은 지난 2014년 일본군 위안부 평화나눔 공모전에서 수상한 곡들이다.
이후 당진의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노래와 춤 등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사회를 맡은 학생들은 공연 사이마다 공연을 펼친 학생들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생각들을 들어보고, 관람학생들에게는 위안부 관련 퀴즈 경품 추첨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이 직접 디자인 한 마리몬드 제품들을 제공했다. 마리몬드의 브랜드명은 '당신은 존귀하다'라는 뜻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기 위한 만든 사회적 기업이다.
합덕여고, 신평고, 서야고, 청소년 문화의 집 댄스 팀 등이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며 청소년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공연은 당진 평화나비 소속 학생들이 윤도현의 '나는 나비'라는 곡에 맞춰 관객들과 함께 호흡한 플래시몹으로 절정에 다다랐다.
마무리 공연을 맡은 고등랩퍼 출연자 조원우 군은 "당진에 위안부 할머니가 계시는 줄은 몰랐다. 일본이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난다. 위안부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전시물로 위안부 문제 알려
이 날 행사는 공연만 준비된 것은 아니다. 행사장인 당진문예의 전당은 본 행사가 시작되는 2시 이전부터 학생들이 다양한 부스를 열고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찾은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당진 평화나비 페스타를 준비하고 홍보하는 과정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접한 학생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고민을 전시부스에 담아냈다. 평화나비 학생들은 '아베를 이겨라'라는 팔씨름 부스를 열고 시민들과 함께 했고 한켠에서는 이기정 할머니의 지문을 이용해 만든 핀버튼 등을 판매하기도 했다. 원당중의 평화나비 소속 학생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모금을 위한 음료 부스를 열었다.
당진고등학교 학생들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전시물과 함께 붙임판을 마련해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청소년들과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냈다. 당진고의 김지연 학생은 "예전부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이번 페스타를 준비하면서 더 많이 공부했다. 알면 알수록 일본의 태도에 화가 났다. 이번 기회로 당진의 청소년이나 시민들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데 뜻을 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송악고등학교 학생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뿐만이 아니라 베트남 양민학살 사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담은 부스를 운영했다. 오주희(송악고 2학년) 학생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우리가 피해자이지만 베트남에게는 우리가 가해자이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우리가 본 피해를 기억하고 한편으로는 우리가 베트남에서 저지른 가해의 역사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당진 평화나비 페스타'의 총공연 기획자 김다영(송산중 3학년) 학생은 "공연을 기획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페스타를 준비하고 홍보하는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당진의 이기정 할머니 존재를 알게 되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당진 평화나비 회장인 강예원(원당중 3학년) 학생은 "평화나비 학생들은 자주 이기정 할머니를 찾아뵙고 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이기정 할머니에 대해 더 많이 알린 것 같다. 이기정 할머니뿐만이 아니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진실을 위해 일본과 맞서시는 모습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다. 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과 군국주의자들의 만행을 공개 증언한 날을 기억하기 위해 2012년 대만에서 열린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제정한 날이다. 당진에는 다섯 분의 위안부 할머니가 등록되어 있었으나 네 분이 돌아가시고 이기정 할머니 한 분만 생존해 계신다.
덧붙이는 글 | 당진신문에도 송고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