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자녀의 출생신고 시 한자와 한글이 혼용된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대법원이 지난 6월 29일 이름에 한자·한글 혼용이 가능하도록 가족관계등록예규 개정 규칙을 공표하고 즉시 시행토록 했기 때문입니다.
기존에는 가족관계등록예규 제109호 5항이 '이름에 한글과 한자를 혼합해 사용한 출생신고 등은 수리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어 출생신고 시 자녀의 이름은 전부 한글 또는 한자로만 지어야 했습니다.
전 이 조항 때문에 2016년 4월 태어난 딸에게 '빛나는 별'이라는 뜻을 담아 제 성씨인 '羅(나)'와 한자인 贇(빛날 윤, 예쁠 윤) 그리고 우리말 '별'을 합쳐 '나윤별(羅贇별)'이라고 이름 지어주었지만 출생신고를 거부당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조항이 부당하다는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한편, 가정법원에도 개명소송을 낸 끝에 17년 3월 제 딸에게 원하는 이름을 선물해줄 수 있었죠(관련기사:
'윤(贇)별이 법'의 주인공 윤별이 아빠입니다).
불필요한 소송 끝에 딸의 이름은 출생신고 시 이름으로 바꿀 수 있었지만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경제적·심적 고통이 컸기에 제게는 이번 규칙 개정 소식이 더 없이 반갑기만 합니다.
새로 개정된 가족관계등록예규 제509호 '이름의 기재문자와 관련된 가족관계등록사무' 5항에 따르면 출생신고를 할 때도 성명란의 한자란에 한글과 한자(인명용 한자의 제한 범위내의 것)를 혼합하여 표기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함께 개정된 가족관계등록예규 제510호 '가족관계등록부에 성명을 기록하는 방법' 3항은 예를 들어 김철수(金哲秀), 김하늘(金하늘), 스미스철수(스미스哲秀), 김철수(金哲수), 김철수(金철秀)와 같은 식으로 이름을 기재할 수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단, 출생신고 이후 이름의 일부를 한글 또는 한자로 변경하고자 할 경우에는 법원의 개명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규칙 개정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던 입장에서 개정된 규칙이 국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대한민국 공용어로서 한국어인 '국어'의 사용을 촉진하고, 국어를 발전시키자는 취지로 마련된 법이 국어기본법인데요. 한자·한글 혼용이 가능하게 됨에 따라 국어기본법의 취지가 살아나고, 한글의 뜻을 살린 좋은 이름이 많이 등장할 거라 생각합니다. 제 딸 '윤별(贇별)'이의 경우처럼 순우리말과 한자를 조합하면 보다 더 좋은 이름을 많이 지을 수 있으니까요.
또한 부모가 원했던 자녀의 이름을 그대로 가족관계등록부나 주민등록등본, 주민등록증에 기재할 수 있어 부모의 작명권과 행복추구권도 함께 지켜질 수 있게 됐습니다. 저처럼 자녀의 이름 때문에 불필요한 소송으로 매번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법정을 드나드는 국민들도 없어질 거라 기대합니다.
참고로, 작년 제 딸의 출생신고 거부 소식이 알려지자 부모의 작명권을 지키기 위한 취지의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이 발의된 적이 있었습니다. 16년 8월 국민의당 정인화 의원(전남 광양·곡성·구례)이 가족관계등록법 44조 3항에 '한글과 한자를 혼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한 이른바 '윤별이법'을 대표 발의했는데요. 현재는 안타깝게도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대법원에서 개정한 이번 예규는 엄밀히 말하면, 단지 행정기관의 '사무처리 지침'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가능하다면 '법적'으로도 한자·한글을 혼용하여 자녀의 이름을 지을 수 있도록 한 윤별이법이 국회에서도 하루 빨리 통과되었으면 합니다. 법이 통과되면 국민의 삶과 행정 사이의 불합리한 간극을 좁히고, 사회의 제도 또한 정교하게 다듬어지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규칙 개정을 위해 함께 애써왔던 정인화 의원실의 주인공 비서관은 "예규 개정으로 인해 부모의 작명권과 행복추구권이 함께 보호받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며, "하지만 행정기관의 편의주의로 인해 윤별양의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국회에 계류 중인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의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윤별이법이 통과되면 또다시 기사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가족관계등록예규 제509호 ‘이름의 기재문자와 관련된 가족관계등록사무’와 제510호 ‘가족관계등록부에 성명을 기록하는 방법’의 개정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PDF 문서를 첨부합니다. 또한 개정된 예규의 전문은 아래 대한민국 법원 종합법률정보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함을 알립니다.
가족관계등록예규 제509호: https://goo.gl/2RSsM6
가족관계등록예규 제510호: https://goo.gl/F7NQz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