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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매월 화재대피훈련을 실시한다. 소방대원들이 직접 훈련에 참여해 화재경보설비를 작동시켜 실제상황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한다. 교장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교직원, 그리고 학교를 방문한 학부형들, 심지어는 목발을 짚은 학생까지도 예외 없이 함께 훈련에 참여해야 한다.

 미 공군 오산기지 내 중학교 학생들이 화재대피훈련 중 선생님의 인솔에 따라 줄지어 학교 건물을 빠져나오고 있다.
미 공군 오산기지 내 중학교 학생들이 화재대피훈련 중 선생님의 인솔에 따라 줄지어 학교 건물을 빠져나오고 있다. ⓒ 이건

 운동장으로 대피한 학생들이 교장선생님의 지휘 아래 각 학급별로 인원확인을 하고 있다.
운동장으로 대피한 학생들이 교장선생님의 지휘 아래 각 학급별로 인원확인을 하고 있다. ⓒ 이건

대피훈련을 마치면 소방관이 전반적인 평가를 하고 그 결과지를 학교 측에 전달한다.   

이 보고서는 향후 해당 교육기관이 재인증을 받거나 혹은 보험료 산출에 반영하는 근거자료로도 사용된다. 실제로 텍사스를 포함한 일부 주에서는 화재대피훈련 결과를 화재보험료 산출에 반영하고 있다.

인상적인 부분은 아이들의 방학이 끝나고 새학기가 시작되는 달에는 2회 내지 4회의 대피훈련을 실시한다는 점이다. 방학기간 동안 잊어버린 부분들을 다시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아이들이 안전한 나라'라는 말은 현장에서 철저히 실천되지 않으면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는 단지 의미 없는 수식어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의 안전 그리고 생명과 같이 정말로 소중한 가치들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해 보인다. 그것은 바로 효과적인 제도 마련, 현장에서의 교육과 실천, 그리고 시스템적인 감시와 지원이다.

이를 위해 미국에서는 학교와 소방서, 그리고 담당부처 공무원들 사이의  협업에 큰 무게를 두고 있다.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의 유치원 아이들과 학부모가 화재대피훈련에 참가해 소방대원들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의 유치원 아이들과 학부모가 화재대피훈련에 참가해 소방대원들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 이건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소속의 미군 소방대원들이 지역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소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소속의 미군 소방대원들이 지역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소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 이건

어느 한편에 치우친 듯 보이는 일방적인 시스템과 어설프게 만들어진 졸속행정을 최대한 지양하고, 다소 느린 듯 보이지만 견제와 균형이라는 그들만의 방식에 따라 참가한 기관 간에 최대한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 모두가 납득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불과 3년 전 세월호에 몸을 실었던 우리의 아이들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사랑하는 이들과 뼈에 사무치는 작별을 고하고 말았다.

재난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무늬만 전문가'였던 사람들과 자신만 먼저 살겠다고 도망쳐버린 무책임한 어른들의 달콤한 말을 너무나도 성실히 따랐던 참혹한 결과였다. 

우리나라도 학생들을 위해 화재대피훈련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교육부에서는 '학교현장 재난유형별 교육·훈련 매뉴얼'을 개정해 배포한 바도 있다. 

하지만 일 년에 불과 한 두 차례 실시하는 화재대피훈련으로는 학생들과 교사들의 몸에 익숙해지기에 충분치 않아 보인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매뉴얼이라고 할지라도 결국 매뉴얼은 가이드라인일 뿐 충분히 활용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임은 말할 여지도 없다. 

하지만 훨씬 더 심각한 문제점은 따로 있다.

많은 매뉴얼들이 단지 규정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결과물들로 정작 '매뉴얼 속에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우리의 아이들이 안전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


#이건 소방칼럼니스트#미국 화재대피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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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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