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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엇을 쓸 것인가

우리는 글을 쓰기로 작정한 운명들이다. 그러므로 이제 '무엇을 쓸 것인가'가 큰 문제로 다가온다.

오늘 술 한 잔 하면서 정치 얘기하다 그만 친구와 싸운 이야기를 써볼까, 맛집을 찾아갔다가 1시간이나 줄서서 기다렸다가 결국 못 먹고 돌아섰던 이야기를 그려볼까, 갑자기 입원한 아버님 간병기는 어떨까….

지금 당장 쓰고 싶은 여러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좋다. 뭐든 좋다. 다 글감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막상 이것들을 글로 쓰려고 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 글감에서 언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은 풍부한가,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인가, 하는 내용과 주제를 생각하면 '무엇을 쓸 것인가'의 문제가 결코 쉽지 않음을 실감한다.

글감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쓰고자 하는 글의 종류를 결정해야 한다. 시나 소설같은 허구웅 기반으로 하는 문학, 사실을 바탕으로 쓰는 에세이나 생활글, 기사, 서평이나 독후감, 여행기, 보고서, 블로그 등 그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

일단 쓸 장르가 정해지면 거기에 맞는 글감을 찾으면 되는데, 대부분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가장 먼저 고려하게 된다. 그리고 나와 가족 또는 주변의 일상에서 일어난 일, 사회적 이슈 등 다양한 것에서 찾는다. 찾을 수밖에 없다. 어쨌든 내가 관심을 두고 있거나 나의 삶과 연관 맺어지는 것에서 찾는다.

글로 밥벌이 하는 작가나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소재는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생각해볼 그 무엇(주제)을 담아내는 것이다.   

그렇지만 단지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이라고 해서 다 글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기발한 것인가, 뭔가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 된다.

그렇고 그런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라면 아무리 열심히 쓴다 한들 읽어줄 이 하나도 없다. 감동이든, 반성이든 아무튼 공감을 일으킬 만한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이 얘기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기자들이 수많은 사건들 중 어떤 것을 기사로 쓸 것인가 하는 문제를 설명할 때 으레 등장하는 고전적인 사례이다.

개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무는 것이 기본 습성이다. 그래서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은 새로운 것이 없다. 개니까 사람을 문다. 다만 개에 물린 사람의 부상 정도가 심할 경우엔 글감(기사)이 될 수 있다. 맹견 단속을 해야 한다는 예방적 관점에서다.

반면 사람이 사람이든 개든 문다는 건 일반적인 행태가 아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개가 사람을 문 것보다 사람이 개를 문 것이 매우 이례적인 경우여서 글감(기사)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렇듯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 같은 특이성이 있는 일이라면 일단 글감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이런 경우는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생각보다 많다. 눈 한 번 크게 뜨고 주변을 살펴보길 바란다.

아니면 평소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그 분야에서 글감을 찾는 것도 좋다. 아무래도 관심 있는 분야니까 책이든 뉴스든 관련된 단어만 나오면 눈을 크게 뜨고 반응하기 마련인데, 거기서 사람들에게 얘기해주면 좋을 것 같은 아이템을 고르면 좋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고 나서 서평을 쓴다든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여행기,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운동 이야기가 훌륭한 글감이 되는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고 나서 서평을 쓴다든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여행기,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운동 이야기가 훌륭한 글감이 되는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고 나서 서평을 쓴다든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여행기,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운동 이야기가 훌륭한 글감이 되는 것이다. ⓒ pixabay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송준호 교수는 에세이에서 글감을 찾는 방법으로 4가지를 들었다.

첫째, 나와 가까운 곳에 있는 것들에서 찾으라고 했다. 자신이 겪은 일을 오랫동안 깊이 들여다보고 생각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글을 쓰라고 했다.

두 번째는 그 작고 초라하며 남루한 것들을 글감으로 삼으라고 했다. 아무리 초라하고 남루한 사물이나 사건일지라도 관심을 갖고 애정 어린 마음으로 대하되, 자신이 경험한 일이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그것들에게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얼마나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줄 것인가에 글쓰기의 방향이 정해진다고 했다.

세 번째는 나만의 눈으로 관찰한 것들이 좋다고 했다. 독창적인 눈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네 번째는 나를 외롭고 쓸쓸하게 만드는 것들이라고 했다. 인간 존재의 본질인 외로움 그 아픈 삶의 무게와 나를 외롭게 만드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그것을 쓰라고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내 삶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고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쉽게 얻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글감을 고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이 글감의 충분조건을 만족시키는 필요조건이 요구된다. 이미 여러분이 글감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그 질문에 모두 '예'라고 답할 수 있으면 최고다. 이 중 최소한 하나라도 '예'가 있어야 그나마 글감으로서 생명력을 얻는다.

'쓰고 싶은 주제인가'가 첫째이고, 둘째, '쓸 수 있는가', 셋째, '쓸 필요가 있는가'가 그것이다. 자, 보자. 글감이 떠오르면 여러분은 우선 '쓰고 싶은 주제인가'고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어차피 내가 선택한 글감이라면 마음에 내키지 않는 글감을 선택할 확률이 낮겠지만 그래도 이 질문은 가장 먼저 던져야 한다. 요즘 화제라는 인상 때문에 덥석 글감으로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라 하더라도 내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그 글감은 나와는 인연이 없는 것이다. 내키지 않은 글감을 놓고 끙끙거리는 것처럼 의미 없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결과물 역시 기대 이하일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이런 글감은 과감하게 버려라. 여러분 말고도 쓸 사람이 많다.

두 번째는 '쓸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쓸 수 없는 글감을 고르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가끔 세상 사람들에게 정말 폭발적인 관심이 있는 글감이라면 한 번 써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덥석 시작하지만 과욕이었다는 것을 느끼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럴 경우, 대부분이 글을 시작만 하고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끙끙대다 중도에 포기하기 일쑤이다. 이는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 결과이다. 따라서 평소 자신의 독서력이나 취향, 관심도 등에 대한 전반적인 지적 역량을 점검해놓아야 한다.

세 번째는 '쓸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아무리 쓰고 싶은 글감이라 하더라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하더라도, 쓸 필요성이 없는 글감은 죽은 글감이다.

글을 쓴다는 건 나 혼자 읽기 위해서인 경우도 있겠지만-이럴 경우엔 이 질문은 의미 없다-대부분이 누군가에게 읽힐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정작 읽을 사람들에게 의미 없는 글을 쓴다는 것은 헛수고나 다름없다. 

따라서 내가 쓰고자 하는 글감이 지금 이 시점에서, 지금 이 상황에서, 지금 이곳에서 사람들의 입에 많이 회자될 수 있는가에 대해 따져보는 것은 당연하다.

누군가의 요구를 받고 억지로 쓰는 글이라도 일단 이 세 가지 질문은 유효하다. 직업적인 글을 쓰는 경우에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글을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신문사 논설위원의 경우, 사설을 쓸 때 자신의 입장과 다르더라도 신문사 입장(논설위원들의 회의를 통해 논조가 결정된다)에서 논의한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사설을 집필한다. 

어쨌든 어떤 경우라도 글을 써야 한다면 내키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글을 자신 있게 쓴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글쓰기 상황이 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숙제로 쓰는 글이 이런 필요충분조건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질문을 해봐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가능하면 글쓰기 행위를 나의 자발적인 행위로 전환해야 결과물이 좋기 때문이다.

나는 가능하면 이 세 가지 질문에서 모두 '예'라는 긍정적인 답을 얻은 경우를 글감으로 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만이 자신이 가장 원하는 최고의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늘 세 가지 모두 만족시키는 글감을 찾기란 쉽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단 하나라도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있다면 무작정 쓰는 것보다 결과물이 좋아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결론적으로,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너무도 자명하다. '모든 것'이 누구에게는 아주 훌륭한 글감이 될 수 있다. 다만 그 원석을 어떻게 깎느냐에 따라 다이아몬드가 되느냐, 이산화탄소 덩어리가 되느냐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조성일의 글쓰기 충전소'에도 포스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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