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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기자말

1575년 조선에는 조정의 요직인 이조전랑을 둘러싸고 분파싸움이 일어났다. 싸움의 당사자인 김효원과 심의겸은 각각 서울 동쪽과 서쪽에 살아 이들의 지지자들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 이 '동서분당'으로부터 조선의 파당정치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내세워 이론적으로 싸우기도 했으나 같은 편끼리 싸고도는 의리를 내세워 정국에 피바람을 몰고왔다. 조선 후기에는 당쟁이 더 심해져 붕당 간 싸움이 치열해지고 정적만이 아니라 그들과 가까운 사람들까지 연루시켜 많은 사람을 죽였다. 결국 혈연·지연·학연에 바탕을 두고 자당의 이익을 지나치게 챙긴 당쟁은 국가와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

일제의 손에 나라가 망하면서 조선 당쟁과 세도정치 유산은 청산되지 않은 채 그대로 전수되었다. 그리고 2016년 현재 한국 정치는 여전히 조선시대의 파당 정치에 가깝다. 정당 정치는 서로 장점을 겨루는 정책 경쟁인 반면, 파당 정치는 연고와 인연 중심의 대결 정치다. 파당 정치에서 정당은 '정책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정치를 펼치고 그것은 '공익'이 아닌 '사익'을 추구하는 사이비 정치로 변질된다. 민주주의에서 꼭 필요한 정당의 책임정치는 실종된 채, 뒷골목에서나 들을 법한 '의리'와 '배신'으로 점철된 파당의 논리로만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정당정치의 현주소다.

 선조 8년(1575년)에 이조전랑직을 둘러싼 심의겸과 김효원의 대립으로부터 동인과 서인의 파당정치가 시작되었다.
선조 8년(1575년)에 이조전랑직을 둘러싼 심의겸과 김효원의 대립으로부터 동인과 서인의 파당정치가 시작되었다. ⓒ 드라마 <징비록> 화면 갈무리

'의리'는 '사람의 관계에서 지켜야 하는 바른 도리'라는 뜻이다. 한자어 또한 의로울 의(義)에 다스릴 이(理)로 쓴다. 의로움으로 상대방을 대한다는 것은 그만큼 정의롭고, 윤리적이며, 선함을 가리킨다. 그러나 한국 파당정치의 의리는 '우리가 남이가'로 대변되는 '부끄러운 의리'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부끄러운 의리'가 강력한 정치적 에너지원이라는 점이다. 나라가 혼란스러운 이 상황에서도 새누리당은 친박과 비박으로 나뉘어 '의리'와 '배신'을 운운하며 서로를 헐뜯고 싸워대고 있지 않은가. 집권당이 이렇게 파당적인 권력 암투의 장으로 변질되는 것은 정상적 민주주의나 우리 국민들에게 큰 불행이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은 이런 사자후를 토해낸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의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과 권력, 돈을 좇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다. 이 나라의 국민들은 국가를 지켜내기 위해 추운 겨울 촛불을 들고 길거리로 나와 서로를 향한 성숙한 의리를 보여줬다. 하지만 오직 자신의 명리만을 추구하는 이 나라의 정치인들은 여전히 성숙한 국민 뒤꽁무늬 따르기에 바쁘다. 이익을 향해 떼를 지어 다니는 정치 불나방들이 부끄러운 의리에 얽매이지 않고 이념과 정책으로 싸우는 성숙한 정치를 보여주는 일은 불가능할까? 지금 대한민국에 절실한 것은 300명의 패거리가 아니라 오직 국민을 향한 의리에 목매는 한명 한명의 일꾼이다.


#징비록#파당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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