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2012년 국정원 댓글부대 대선개입사건 관련자들의 국정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유죄를 선고한 서울고등법원은 국정원의 행위로 시민들의 정치활동의 자유가 침해됐음을 분명히 하면서 원 전 원장에 대해선 "국민과 역사 앞에서 어떻게 평가될지 객관적으로 진지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며 이를 양형에도 반영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김대웅)는 30일 원 전 원장 등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4년으로 양형한 사유 설명하면서 국정원의 대선개입 행위가 미친 정치적·사회적 영향을 되짚었다. 재판부는 공무원의 신분보장과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헌법 7조를 언급하면서 "특히 국정원은 막대한 예산과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진 기관으로서 조직적 행위로 나아갈 경우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치적 중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공무원의 선거 중립을 규정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9조를 거론하면서 "피고인들은 공직선거법을 정면으로 위반해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반대하는 정치관여 행위를 했고 나아가 선거와 관련해 특정 후보자를 당선·낙선시키기 위한 운동에까지 나아갔다"고 평가했다. 이어 "70여명에 이르는 사이버팀 직원들을 동원해 조직적·계획적으로 실행했고 재직 기간 내 일상업무로 반복해왔다"며 "전례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정원 사이버팀) 직원들이 신분을 숨기고 일반인을 가장해 게시판이나 SNS 공간에서 게시글을 작성·전파하는 방식으로 전했는데 이 역시 여론 왜곡 가능성을 높일 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 정당하지 못한 처사"라고 판단했다.
'북한의 대남선전에 대응해 국가안전보장의 필요에 따라 사이버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원 전 원장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우리 안보에 대한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사이버 공간에 대한 활동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 활동은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반대하는 것으로 헌법이 명백히 금지하는 행위이고 정치활동의 자유와 기본권이 침해되는 결과가 발생해 허용될 수 없음이 명백하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 등의 행위가 댓글활동을 벌인 사이버팀 직원들의 기본권을 침해했고 국정원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크게 훼손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직원들의 양심에 반해 (사이버 공간에)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길 요구함으로서 양심의 자유, 정치활동 자유를 침해했다"며 "이 같은 범행이 드러남으로써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상당부분 훼손됐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원 전 원장이 한 번도 책임을 인정한 적이 없다는 점도 양형에 고려됐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1심에서 항소심, 당심에 이르는 공판 전 과정에 걸쳐 자신이 한 행위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강조하였을 뿐 국민과 역사 앞에서 어떻게 평가될지 객관적으로 진지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한번도 보이지 않았다"며 "직원들의 이탈행위로 치부하면서 개인 잘못으로 돌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