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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라고 발언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되었던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31일 열린 첫 공판에서 '문 대통령은 공산주의자가 맞기 때문에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고 이사장은 "문 대통령은 과거 국가보안법 폐지나 연방제 통일을 주장해왔고 주한미군 철수를 유도하는 활동도 해왔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근거인 '진보적 민주주의'도 지향한다, 사드 배치를 불허하고 한일 군사정보교류 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등 북한에 유리한 발언을 해왔다"는 이유를 들어, 위와 같은 태도는 "공산주의자가 보이는 공통된 특징들을 갖고 있다"면서 문 대통령이 공산주의자가 맞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문 대통령이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검사장이던 나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 것도 사실"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이사장은 2013. 1. 4. 한 보수단체 행사에서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칭하는 등 허위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기소되었다.

국감받는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지난해 10월 10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감받는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지난해 10월 10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고 이사장이 재판과정에서도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명예훼손죄의 특성을 명확히 파악해 법률가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명예훼손조의 구조를 간단히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명예훼손은 공연히 사실 또는 허위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에 성립된다(형법 제307조).

공연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 있어야 하며 단지 몇 사람만 있는 곳에서 개인적으로 말하는 것은 명예훼손이 아니다. 다만 이러한 경우에도 전파성이 있는 경우에는 공연성을 인정한다. 또한 사실의 적시이므로 사람이 감지할 수 있는 것으로 현실적으로 발생하고 증명할 수 있는 과거 또는 현재의 구체적인 사실을 대상으로 한다.

사실 적시 아니라 평가이니 명예훼손 아니다?

사실이 아니라 판단이나 평가(비평), 주관적 의견에 관한 사항은 명예훼손의 대상이 아니다. 허위가 아닌 경우에도 명예훼손죄에 해당하지만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것에 비하여 처벌의 정도가 약하다. 사실의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에는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형법 제310조).

그러므로 고 이사장의 재판전략은 이렇다. 문 대통령은 공적인물이기 때문에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만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고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는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고 이사장은 자신이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 단순히 평가에 대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명예훼손죄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공산주의자로 평가하는 몇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물론 다른 평가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그러한 부분은 주관적으로 서로 다르기 때문에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산주의자라는 말이 사실의 적시일까, 아니면 단순한 주관적인 평가에 불과할까? 그 결과에 따라서 고 이사장의 유·무죄판결 여부도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공산주의는 사유재산제도의 부정과 공유재산제도의 실현으로 빈부의 차를 없애려는 사상을 말한다. 현대의 공산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고 이사장이 공산주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고 이사장이 생각하는 공산주의가 일반국민들이 생각하는 공산주의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는지도 검토되어야 한다.

먼저 고 이사장이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보고 있는 몇 가지의 근거가 공산주의자의 일반적인 특징에 해당하는지를 살펴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근거가 상당수의 국민들에게도 받아들여지는 경우에는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 단순한 평가에 해당할 수 있다. 다만 상당수의 국민들이 정파적인 판단에 따라서 공산주의자로 생각할 것이라는 점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대법원은 사실의 적시와 주관적 평가를 판단 기준으로 '명예훼손죄에서의 사실의 적시란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표현에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시간과 공간적으로 구체적인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 내지 진술을 의미하며, 그 표현내용이 증거에 의한 입증이 가능한 것을 말하고, 판단할 진술이 사실인가 또는 의견인가를 구별할 때에는 언어의 통상적 의미와 용법, 입증가능성, 문제된 말이 사용된 문맥, 그 표현이 행하여진 사회적 상황 등 전체적 정황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1998. 3. 24. 선고 97도2956 판결, 대법원 2017. 5. 11. 선고 2016도19255 판결 등)'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결국 고영주 이사장이 제시한 몇 가지 근거가 공산주의자의 본질적인 특징에 해당하는지, 일반 국민들의 건전한 상식에 비춰보더라도 그 정도의 발언이나 행동이라면 공산주의자로 지칭하는 것이 타당한지가 객관적인 판단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실질적으로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한 다음 주관적 평가라는 명목으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명예훼손죄 존재의 이유

우리 대법원도 민사사건에서 '타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사실을 적시하는 방법으로 행해질 수도 있고, 의견을 표명하는 방법으로 행해질 수도 있는 바, 어떤 의견의 표현이 그 전제로서 사실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경우는 물론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에 의하더라도 그 표현의 전 취지에 비추어 어떤 사실의 존재를 암시하고 또 이로써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으면 명예훼손으로 되는 것이다(대법원 2002. 1. 22. 선고 2000다37524 판결)'라고 보는 이유다.

고 이사장은 자신의 평가가 단순히 개인적이거나 주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상당수의 국민이 자신의 평가에 동조한다는 논리를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의 한  축인 보수 세력들 또한 자신이 제시한 근거라면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로 판단 할 것이므로 자신의 발언은 허위의 사실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파적으로 일부의 사람들이 고 이사장과 같은 생각을 한다고 해서 그의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종북세력이나 공산주의자라는 발언은 반대진영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더욱이 남북이 대치한 상황에서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힐 경우에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공포스런 단어로 사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몇 가지 발언이나 행동만으로 쉽게 공산주의자라고 단정 짓는 것은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더욱이 민주주의는 합리적인 토론과 건전한 비판을 통하여 의사를 결정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소수가 다수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하며, 건전한 토론의 장을 통해서 사회갈등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게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공산주의자나 종북세력이라는 굴레를 덧씌워 더 이상의 토론을 못하게 막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객관적인 근거 없이 우리나라에서 금기시되는 공산주의자라는 말로 상대방을 위축시켜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야 말로 사람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보호하려는 명예훼손죄의 존재이유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법무법인 민우 변호사이자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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