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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94년 마광수 교수가 연세대에서 강의하는 모습.
지난 1994년 마광수 교수가 연세대에서 강의하는 모습. ⓒ 연합뉴스

소설가이자 연세대 교수를 지냈던 마광수씨가 지난 5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고를 듣고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내가 대학 시절을 보냈던 1990년대 그의 작품은 내내 논란을 몰고 다녔고, 그 후폭풍은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원 재학 중이던 1999년 드디어 그의 강연을 들을 기회를 잡았다. 학과 강의에서 그를 특별 강사로 초청한 것이다. 그가 학교에 온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학생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당일 강연장은 수강생은 물론 청강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도 오래전 일이라 강연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거침없는 언변으로 좌중을 휘어잡은 일만큼은 또렷이 떠오른다. 또 중간중간 검사에게 조사받았던 일을 말해줬는데, 그 대목에서는 깊은 회한을 털어놓기도 했었다.

돌이켜보면, 그의 강연을 그저 노트에 받아 적을 수밖에 없었던 게 참 아쉽다. 지금처럼 노트북과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이 한마디 만큼은 여전히 귓가를 맴돈다. 다소 거친 표현들이 뒤섞여 있지만 그대로 옮긴다. 마 교수는 강의 중에 속어나 욕설을 사용하는데 거침이 없었고, 그래서 그 분위기를 그대로 옮기고자 해서다.

"머리 노랗게 염색하고 자유를 외치던 놈도 자기 와이프는 곧 죽어도 처녀여야 한다 하더라."

'처녀'란 낱말이 어떤 의미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난 아무래도 이 한 마디에 마 교수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마 교수는 올해 1월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견해를 드러낸 적이 있었다.

"남들은 시대를 앞서갔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그런 거대한 소명의식은 없었다. 다만 나는 한국 사회의 이중성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사람이다. 겉으론 근엄한 척하면서 뒤로는 호박씨를 까는 우리 사회의 행태에 한 번 시비를 걸어 본 것이다. 성에 대한 알레르기 현상을 깨부수고 싶었다."

작가의 작품활동에 국가형벌권 행사가 당연한가?

굳이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들먹이지 않아도 문학을 아우르는 예술이 외설 논쟁을 불러일으킨 경우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국가 권력이 개입해 형벌권을 행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동성의 연인과 '불장난'을 벌였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야 했다. 그를 심문하던 검사는 오스카 와일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청년들을 미친 듯이 사모했습니까?"

오스카 와일드는 이에 맞서 예술가로서 '순수한' '정신적인' 사랑을 나눴다고 자신을 변호했다. 이 같은 자기 변론에도 공권력은 그를 기소했고 결국 2년 동안 옥고를 치러야 했다. 2년간의 옥살이는 재기발랄한 작가를 파멸시키고야 말았다.

마 교수 역시 비슷한 수난을 당했다. 마 교수를 구속한 검사의 주장을 들어보자.

"인간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수의 신분에 그것도 유명 대학의 교수가 공동체 존립을 저해하고 성적 쾌락이라는 개인적 욕망만을 추구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무책임한 소행이다."

얼핏 그럴듯하다. 그러나 교수를 비롯해 소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일탈을 우리는 숱하게 봐왔다. 정의의 사도 인양 착각하는 검찰은 잊을만하면 불거지는 스폰서 의혹으로 여론의 화를 돋워왔다. 한편 성적 일탈의 으뜸은 성직자다. 강단에서 근엄하게 하느님 말씀을 설파하던 유명 목회자가 수년에 걸쳐 다수의 여성을 성추행한 건 이젠 전혀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 됐다. 이런 와중이니 국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아랫도리(?)를 자극하는 소설을 썼다 한들 이게 검찰이 나서서 기소권을 행사할 일일까?

시대를 한 걸음 앞서간 마광수

 지난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 연합뉴스

아무래도 마 교수는 시대를 한 걸음 앞서간 것 같다. 그에 대한 기억을 복기하다 보니 마 교수가 한 말 하나가 더 떠오른다. 그 말은 이랬다.

"난 새로 여자를 만나면 속궁합부터 맞춰보고 싶다."

아마 그 시절엔 '속궁합'이니 하는 말을 공개석상에 올리면 요새 유행하는 말로 '가루가 되도록' 까일(?)게 분명하다. 그러나 요사이 남녀를 불문하고 새로 이성 친구를 사귀면 이런 말부터 하지 않던가?

세상사에서 만약이라는 질문은 공허하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가정을 해보자. 아마 지금 마 교수의 소설이 나왔다면 그가 이토록 수난을 당했을까?

비록 한 번의 강의였지만 그는 내게 오래도록 잊지 못할 강렬한 기억을 선물해줬다. 당시 내가 질문을 던지긴 했는데 어떤 질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 질문을 받더니 '아, 아주 좋은 질문이에요'라고 칭찬해준 일만 기억에 남는다.

그런 마 교수가 떠났다. 그가 하늘나라에서는 '원하는 속궁합 실컷 맞추며' 지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진심이다.

덧붙이는 글 | 기독교 인터넷 신문 <베리타스>에 동시 송고했습니다.



#마광수교수#오스카와일드#채털리부인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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