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알고 계십니까? 격주마다 금요일에 의사 한 분이랑 부인 분이 아웃리칭(소외된 계층을 직접 방문해 도움을 주는 활동) 나오십니다.""아 그래요? 어떤 것을 하시죠?""다양하게 하세요. 정신과 상담도 간략히 하시고. 노숙인에게 필요한건 뭐든 하십니다.""아. 성함이 어떻게 되죠?""최충언 선생님이라고 계십니다."1달 전, 의사 한 분이 희망등대 사회복지사와 함께 격주로 야간 아웃리칭을 나간다고 들었다(관련 기사 :
잠 못 이루는 밤, '노숙자 찾으러' 길을 나섰다). 현장의 빠른 흐름을 따라 가는 것도 어려운데, 진료와 상담을 하신다니. 게다가 같은 학교 출신의 선배였다.
수소문 끝에 지난 7일 선생님을 만났다.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걸 직감하셨을까. 담배 한 개비를 물며 세월을 피워내시다가 깊은 숨을 토해내셨다.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현재 송도 요양병원에서 외과 전문의로 근무 중인 최충언이라고 합니다."
-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아…. 너무 이야기할 게 많네요. 학창시절 이야기를 잠깐 해도 될까요? 미 문화원 방화사건을 아실지 모르겠네요. 제가 예과 때였을 거예요. 한창 광주항쟁으로 전국이 들끓을 때, 대학생들과 함께 미 문화원에 불을 지른 적이 있어요. 그 후로, 감옥에서 콩밥을 2년 동안 먹고 나왔죠. 하하하.
출소 후에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 10년은 고생했어요. 그리고는 영도 해동병원에서 외과 전문의를 마치고 여러 가지 것들을 많이 한 거 같아요. 대표적으로 대청동 가톨릭 센터에서 도로시의 집을 함께 세운 것이 기억납니다. 가톨릭 신자이자 사회운동가인 '도로시 데이'가 만든 '환대의 집'(어느 누구든 들어와서 밥을 먹거나, 잘 수 있는 곳. 이후 반전평화운동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 기자 주)을 모티프로 했죠. 다문화 가정의 열악한 의료 현실을 개선하고자 무료 진료소를 설립하고,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최해 이들을 돌보았습니다.
이후에는 '사랑그루터기'라는 곳과 부산진구 쪽방 상담소에 근무하고 계시는 분들과 친해지면서, 일도 도와드리고 그랬습니다. 개인적으로 쪽방에 있는 장기침상환자들의 기관지 튜브 교체와 건강 체크도 자발적으로 했고요. 현재는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면서 격주마다 아웃리칭을 나가고 있습니다."
- 평소에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다양한 활동에 전념하신 건가요?"가톨릭의 목표 중에는 'preferential option for the poor'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이라고도 하는데요. 저는 항상 가난한 자의 편을 들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살아보니, 이게 대부분은 맞는 것 같아요."
- 현재는 노숙인 관련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듯한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그런 게 어디 있겠습니까. 하하하.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항상 가난한 자의 편이다 보니, 자연스레 이렇게 오게 된 거죠.
사실, 졸업하고 나서 빈민촌에서 쭉 의료지원 활동을 진행해왔습니다. 책 두 권도 그 와중에 쓴 것 같아요.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 와 <단팥빵> 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나중에 한번 읽어봐주시면 좋겠어요.
노숙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건 10년 전이었을 거예요. 중국인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다가 길거리에서 얼어 죽은 사건을 뉴스로 접했을 때 가슴이 아팠어요. 원래 친하던 쪽방 상담소 관계자들에게 제안을 받아 '희망등대'와 함께 그 이후부터 아웃리칭을 진행하고 있죠.
저는 가톨릭 신자인지라, 노숙인은 하느님의 '대사(大使)'라고 생각해요. 그분이 바로 예수인 거죠. 예수님이랑 밥이라도, 물이라도 함께 먹고 싶고 옷을 입혀드리고 싶잖아요. 그래서 저는 아웃리칭때 현장 그 자리에서의 내 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그 자체를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 아웃리칭을 하시면서 인상적이었거나 고민하셨던 부분이 있나요?"음… 사실 정기적으로 하기 전에 제가 직접 먹을 거를 사들고 이례적으로 한두 번씩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런 방식은 본질적인 해결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하면서 노숙인들을 관찰해왔죠.
이들은 알콜중독, 조현병 등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치료도 해보려고 노력하고 도움도 많이 주었죠. 하지만 더 중요한건 바로 '주거' 문제였어요. 자신만의 안정된 공간이 없이는 해결이 힘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일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사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는 사람들을 예로 들면, 방세를 다 내고 나면 한달에 남는 돈은 고작 15만 원 안팎입니다. 이걸 가지고 한달을 버텨야 하는데,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심하죠. 인간의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래서 '주거'와 '의식주'는 최소한으로 보장되는 사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몇 명이나 된다고…."
- 의대생들이 노숙인들을 위한 작은 프로젝트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조언이나 바라시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지금의 의대생들은 과거 세대와는 많이 다를 겁니다. 그때는 학생운동도 활발했던 시절이었고, 적이 뚜렷해서 결집도 잘 됐던 것 같네요. 지금은 많이 다르죠. 공부하느라 다른 것들을 신경 쓸 정신이 없을 겁니다.
뭔가 하고 싶으신 것들은 많지만, 하기 힘든 것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날기 위해 웅크려있다고 생각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젠가 본인이 우연적으로, 또는 필연적으로 하게 될 일들이 있다면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을 세우고 가셨으면 합니다. 살다보면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데, 기준이 없으면 좀 그렇잖아요. 그리고 노숙인 관련 활동 이외에도, 일어서서 고개를 돌려보면 사회의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궁금하다면 현장으로 가보세요. 모든 문제의 시작과 끝은 현장에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선생님이 알려주신 인생철학 중 하나인 '가난한 사람을 편드는 인생의 대원칙'을 곱씹으며 물끄러미 내 두 손을 바라보았다.
'2년 뒤에 이 손은 누구의 편을 들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 부산의 의대생들이 함께 '노숙인의 잠못 이루는 밤'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합니다. 노숙인 실태, 쪽방 상황, 그리고 그들의 의료실태를 함께 알아보고 일상에서 또는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