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내 나이 스물, 나의 인생을 망칠 뻔한 자의 얼굴을 공표한다. 그의 이름은 헬로키티.
갓 대학에 입학했던 그때, 무언가 꿈을 품긴 했으되 당장 뭘 해야할지 몰라 하릴없이 캠퍼스를 배회하고 있던 그때, 나와 내 친구의 손을 잡아 끄는 사람이 있었다. 손에는 헬로 키티 인형을 들고.
"신용카드 하나 만들고 인형 가져가요. 카드 수령하고 나면 버려도 돼. 그냥 종이 한 장 쓰고 인형 받아 가라니깐." 영업사원에겐 '운수 좋은 날'이었을까. 함께 있던 친구는 핑크색과 '헬로키티'의 열혈팬이었다. 그녀는 두 종류의 헬로키티 중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며 간절함을 담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고, 카드 영업사원은 단지 글자 몇 개만 쓰면 되는 거니 아무것도 복잡할 것이 없다며 나를 설득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나는 생애 첫 신용카드를 발급받게 됐다. 정작 난 관심도 없는 그 헬로키티 때문에.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학생의 신분이었지만, 카드 발급에 어려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퍽 친절했던 영업사원은, 심사 전화가 오면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말하라고도 알려줬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내겐 형식적인 심사전화 한 통 없이 신용카드가 발급되었다.
카드가 생긴다고 쓸 생각은 없었건만, 정말 그럴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건만, 어느 순간 나는 카드를 긁고 있었다. 스무살의 우리는 마치 요술지팡이라도 생긴 마냥, 이곳 저곳에서 손쉽게 카드를 썼다. 친구는 부모님께 일일이 품목을 밝히고 용돈을 타낼 필요가 없어졌다며 좋아했고,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충당해야 했던 나는, 다음 급여를 받기도 전에 돈을 쓸 수가 있어 행복했다.
'더치페이'가 웬 말이냐, 어찌나 우정이 차고 넘치던지, 우리는 서로 계산하겠다고 싸워가며, 가뜩이나 빈곤한 경제의식을 불살라 없애버렸다. 당연히 올 것이 왔다. 카드 명세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다 쓴 것이라고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았다(등록금도 내 손을 거치지 않았으니).
내 평생 만져보지도 못한 금액을 내가 썼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꼼꼼하게 모든 항목을 보고 또 보고, 계산기를 꺼내 하나씩 더해봤지만, 모두 맞았다. 이 모든 것은 다 내가 쓴 거였다. 그것도 오직 먹고, 노는 데만. 티끌모아 태산에, 카드는 빚이고,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그 간단한 진리를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싶지만, 그랬다. 나는 정말 어리석었고, 많이 무지했다.
집안 형편상, 사용처도 당당하지 못한 카드빚을 부모님께 요구하는 건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 자초한 고학생이 되어 낮에는 학교에 가고, 공강 시간엔 틈틈이 과외를 하고, 밤에는 동대문 도소매 의류시장을 전전하며 카드빚을 갚았다. 고3 수험생 시절보다도 잠이 부족했던 그때, 월급을 받아봐야 내 삶이 나아지기는커녕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일까 자문하며, 인생의 허망함까지 맛봐야 했다면 과장처럼 들리려나.
그로부터 몇 해 지나지 않아, 신용카드 대란이 터졌다. 모든 매스컴에서는 국가정책의 실패로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이 이뤄졌고, 이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대거 양산되었다는 뉴스가 다뤄졌다. 신용불량자라는 말을 온 국민이 알게 된 것도 그때가 아닐까.
쓴 웃음이 났다. 나는 다행히 얼마 안 가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때의 고생을 생각하면 여전히 아찔하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나는 꼭 그렇진 않다는 데 한 표를 걸겠다. 대학 새내기의 시간을 버린 기회비용은 결코 작지 않았다.
빚만 없었다면, 열심히 공부하는 것으로 수업을 양질로 만들 수도 있었고, 아직 찾지 못한 나를 찾는데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도 있었다(뜬 구름 잡는 소리 같지만 진심이다). 백번 양보해 밤을 새워 일을 한다 해도, 그것은 경제적 독립이나 내 힘으로 등록금 마련 같은, 희망적인 결과물로 이어졌어야 했다. 나는 먹고 놀고 마시느라 진 빚을 갚기 위해 소중한 한 학기를 날렸다. 돌아온 것은 낮은 학점과 여전히 낯선 대학 캠퍼스뿐.
물론 똑똑히 알고 있다. 카드 발급부터, 무분별한 사용, 낯부끄러워 지면에는 생략한 몇 번의 카드 돌려막기까지, 모두 나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나를 유혹했던 카드 영업사원이나 친구를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속절없이 앙증맞은 헬로키티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다. 모든 일은 다 나의 완벽한 무지 때문이었다. 빈곤한 경제 의식.
서두가 길었다. 과거의 실수들을 구구절절 떠올린 건 <선대인의 대한민국 경제학>을 읽어서다. 시중에 나온 경제/경영책은 대개가 투자라는 이름의 투기를 가르치고, 허황된 꿈을 심어준다는 나의 편견을 잠재워 주는 책이었다. 선량한 책의 저자분들에겐 미안하지만, 내가 가진 그 편견이 아주 근거없는 망상만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확률상.
바로 지금, 인터넷 서점을 열고 경제/경영란을 들어가봤다. 책 제목들을 그대로 옮길 순 없지만, 내 말을 따르기만 하면 부자가 되고 말 것이라는 색깔마저 자극적인 책들이 화면을 도배한다. 마치, 어리숙하게 가만히 있는 자들은 늙고 병들어도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갈 것이라고 위협하는 듯 느껴지기까지 한다면, 나의 착각일까.
기획자 서문은 당돌하게 시작한다.
"우리 더 이상 경제 호구로 살지 맙시다!" 나에게 하는 말임이 분명하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경제를 제대로 알지 못해 어려움을 호소한다. 더군다나 12년이 넘는 의무 교육은 도리어 우리를 경제 호구로 만들어버렸다. 경제를 그저 수험과목 중 하나, 혹은 암기해야 하는 학문으로 받아들이게 하여 대다수의 청년세대들조차 경제 호구가 된 채 사회에 내던져지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는 낯부끄러운 위안과 함께 은근한 동지애가 솟는다. 자, 모든 경제 호구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총 11강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리, 환율, 주식, 부동산을 비롯하여, 인구, 기술과 일자리 등등 실로 방대한 분야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모든 항목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실상, 경제란 원래가 그런 것일테니.
광범위하지만, 각 항목을 다룸에 있어서도 결코 소홀하지 않다. 가령, 주식은 기본적 분석과 기술적 분석으로 나뉘며, 기본적 분석을 소홀히 한 투자는 요행을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 투자를 할 때는 세계적 트렌드를 읽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을 보고 신중하게 투자해야 함을 당부한다.
주식을 공부하기 위해서 참고할 만한 양서들을 추천하고, 소위 '올인'보다는 서로 상관도가 낮은 5-7개의 종목을 골라 분산투자할 것을 권하기도 한다.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한 독자를 위해서, 저자는 1인 가구가 많아지는 인구구조의 특성상 백화점과 대형마트보다는 편의점 업체들의 장기적인 주가 상승이 예상된다는 조언도 놓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내게 필요한 조언도 있었다. 주식을 하려거든 자신의 투자 성향을 제일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 '안정형'의 경우, "은행에 예금만 맡겨야 하는 사람인데 이런 분들이 주식에 투자하면 손실이 날까 봐 밤에 잠도 잘 자지 못"한다고.
나는 이것을 진작 알았어야 했다. 십여년 전, 은행 직원이 권하는 적립식 펀드에 별 생각없이 가입했다가 손실을 보고 말았다. 소액이었음에도 여태 그것을 기억하며 곱씹는 건 바로 내 성향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보면, 경제 호구가 된 일이 한두 번은 아니다.
경제에 관련된 복잡한 용어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서도, 납득이 갈 만한 자료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한국 경제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각 장(chapter)마다 실제 매체에 보도된 기사들을 수록하고 분석하여, 독자 스스로 수많은 정보들을 비판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역량을 기르도록 돕고 있다.
경제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한창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인공지능과 로봇까지 이어진다. 필연적인 일자리 구조의 변화와 직업의 미래에 대한 담론은 물론이거니와, 나아가 교육 시스템의 바람직한 방향과 저자가 생각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올바른 교육철학 또한 제시하고 있다.
내 삶의 경제를 다잡는데도 도움이 되지만, 한국사회의 이면을 제대로 들여다보는데도 책은 한몫을 하고 있다. 한국 가계자산 중 75%가 부동산이고, 한국 국부의 80%가 부동산자산으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과거 정부는 세 부담 형평성이라는 이름 하에 근로소득세의 부담만 가중시켰다. 이는 결국 부자 증세가 아닌 보편적 증세임이 증명되었다. 또한, 4대강 사업에 투입된 22조 원은 결국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지속적으로 묻고, 따져봐야 할 사항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저자와 다른 의견을 가져 이 책이 불편한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시하는 구체적 자료들을 보며 자신의 의견을 재검토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결국 저자의 의견에 모두 반대하게 될지라도, 같은 자료로 다른 의견을 도출하는 것 역시 흥미로운 과정일 듯하다.
유럽 어느 국가에서는 십대 때부터 이미 경제와 금융을 큰 비중을 두고 가르친다니 부러울 따름이다. 한국도 머지않아 그리 되길 바라지만, 일단은 나의 무지를 탓하며 스스로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만이 최선이겠다.
이 책을,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 한다며 나를 다그치던 엄마께 꼭 권하고 싶다. 그러나 엄마가 읽으실리는 만무하니, 경제 호구이거나 경제 호구가 될 위기를 가까스로 피하며 살아가는, 가끔은 스스로의 선택이 옳은지 자문하며 머리 아파하는 나의 동지(!)들께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