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훈련법 앞서 세 번에 걸쳐 '문장론'에 대해 살펴봤다. 글의 가장 기본 요소인 단어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문장은 본격 글쓰기의 첫 출발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 구사력이 글쓰기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해서 오늘은 내가 개인적으로 큰 효과를 보았던 문장공부법인 '필사'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글을 써서 밥 먹고 살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학창 시절 교과서 이외의 책은 거의 읽지 못했다. 집에 옛날 전적들은 많이 있었지만 '신식' 책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일반 책이 서너 권 정도는 있었던 것 같은데, 날고기는 글쟁이들이 갖고 있는 활자중독증 같은 것이 없었던 탓에 나는 그 책들에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래서 교과서 말고 읽었던 책을 굳이 꼽으라면 할아버지에게서 한문을 배우며 읽었던 <천자문>과 <소학> 말고는 없는 것 같다.
또한 나는 글쟁이들의 학창 시절 독서이력에 반드시 등장하는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문학전집>은 물론이거니와, 어린이나 청소년 잡지의 존재조차 몰랐다. 그냥 존재감 없이 학교만 열심히 다니는 샌님이었기에 나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줄도, 학교와 교과서 밖으로 눈을 돌릴 줄도 모르는 융통성 없는 학생이었다. 그러니 문학 따윈 애당초 나의 관심 밖 세계였다.
그런 내가 글과 친해지기 시작한 것은 대학 3학년 때였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면서 진로를 결정해야 했는데, 그때 글과 가까이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정 형편 상 어렵다는 생각에서 일치감치 그 꿈을 접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원에 일단 진학했으면 어떻게든 꾸려 나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긴 하다. 대신 내가 세웠던 목표는 신문이나 방송사의 기자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입사시험을 치르던 시절, 언론사 입사시험 과목은 국어, 영어, 상식, 그리고 작문이었다. 여느 과목들은 늘 해오던 방식으로 공부하면 되는데, 문제는 작문이었다.
글을 써본 적도 없거니와, 글을 써보려고 맘먹기조차 해보지 않았던 터여서 나에겐 글쓰기는 난공불락의 성처럼 높아보였다.
그런데 그 무렵 언론사 입사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에 신문의 사설이나 칼럼을 베껴 쓰는, 요즘말로 필사(筆寫)하면 글쓰기 공부에 효과적이라는 입소문이 돌았는데, 정보에 무척 둔감한 나에게도 그 비법이 다행히 전달되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사설 한 꼭지씩 필사하는 걸로 작문 시험 준비를 하기로 했다. 매일 쓸 만한 사설 한 편을 골라 정성스럽게 원고지(그때 나는 글은 반드시 원고지에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에 필사했다. 하지만 한 달이 되도록 공부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글 실력이 향상되기는커녕 괜한 시간만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그래도 나는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쉬지 않고 이 방법을 고수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몸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눌 때 나도 모르게 사설이나 칼럼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단어들이 불려나왔고, 어떤 주장을 하기 위해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읽거나 듣다보면 다음 문장이 연상되곤 하였는데, 신기하게도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문장의 패턴이 눈에 들어오고, 글의 구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필사를 시작한 초반에는 필사했던 사설의 내용을 억지로 기억하려고 해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내용을 의식했다기보다 단순히 필사하는 데만 집중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다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내용도 제대로 인식해야겠다는 생각에 소리 내어 읽으며 필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소리 내어 읽을 수는 없어서 입술로만이라도 낭송하듯 하면서 필사했다. 결과는 만족이었다. 필사하고 나면 필사한 사설의 내용을 거의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필사에 지루함을 느낄 즈음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면서 필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매일 학교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서 아침 신문을 펼쳐놓고 설레는 마음으로 필사할 사설을 고르곤 했었다.
그러다 나는 이 필사 방법에 어느 정도 만족하기는 했지만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해보고 싶었다. 필사를 끝낸 다음 머릿속의 기억에만 의존하여 필사한 사설을 복기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아무리 많이 기억한다 해도 그대로 복기해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복기의 연습이 거듭되면 될수록 비슷하게 복기해내는 양이 늘더니만 어느 순간엔 거의 70% 정도까지 복기가 가능해졌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토씨까지 정확하게 일치하는 글을 복원해내지는 못했지만 분량을 비슷하게 하려다보니 중간 중간 내 생각이 곁들여져 있었다. 복기한 사설을 다시 읽는 것은 곧 내가 쓴 새로운 사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사설 말고 다른 글을 필사해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사설에서 만나는 단어나 내용이 너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주장을 담은 강건체 일색이었기 때문에 뭔가 변화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도한 방법이 문화적인 내용을 담은 칼럼을 필사하는 것이었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것과는 또 따른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론 문청(문학청년)이라면 으레 해야 하는 문학작품 필사를 시도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 이청준의 「잔인한 도시」를 필사했던 것 같다(나는 그때 필사했던 원고를 지금도 가문의 보물로 갖고 있다).
사설이나 칼럼과 달리 문학 작품 필사는 하루에 한 꼭지씩 끝나는 것이 아니었지만 인과관계를 만들어가며 글을 전개하는 것에 푹 빠져 신문 연재소설을 접하는 것 같았다. 하루 30분씩 시간을 정해놓고 필사하다보니 내일 필사할 내용이 궁금해 필사 시간이 기다려지곤 했던 것이었다.
그 덕택인지 작문시험 준비 막바지엔 시사 이슈를 주제로 실제 내 글을 써보기 시작했는데, 제법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필사의 덕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이후 글쓰기 공부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필사를 비밀병기처럼 권유한다.
한편, 앞서 나는 글쓰기에 처음 입문한 사람에게 무조건 쓰라고 권유했었다. 문법 같은 것은 아예 따지지 말고 쓰고 싶은 대로 써보라고 했다. 이건 글쓰기가 별 거 아니라는 자신감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제안하는 1단계 전략이다.
사실 글쓰기 자체가 그렇다. 글을 쓰면서 문법을 분석적으로 고민하지는 않는다. 거의가 무의식적으로 맞춰서 쓴다.
그런 점에서 문장연습을 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좋은 문장이나 기억할 만한 문장을 필사하면서 좋은 문장의 구조를 몸으로 익히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글을 쓸 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필사는 가능하면 손글씨로 해보라고 권한다. 몸으로 익힌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다. 가령, 자전거를 배워 타다가 오랜 동안 타지 않았다고 해서 자전거 타기를 잊어버리지는 않는다. 세월이 흘렀어도 몸은 그 기술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해서 나는 필사도 손으로 해보는 것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컴퓨터 자판이라고 해서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불가피하게 컴퓨터를 이용해야 한다면 자판 두드리는 속도를 천천히 하는 것이 좋다. 무의식으로 춤을 추듯 자판을 두드리면 머리로 문장의 묘미를 느낄 새가 없다. 머리가 눈으로 읽는 속도를 따라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굳이 손으로 글씨를 쓰라고 하는 머리로 베껴 쓰는 글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갖게 되므로 기억으로 읽고, 손으로 쓰면서 읽게 된다. 결국 한 번의 행위로 두 번 읽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효과가 좋은 것이다.
그럼 어떤 문장을 필사할까. 요즘 서점에 나가면 시 구절이나 독자들에게 인기 있는 문학작품이나 에세이 등을 추려서 베껴 쓰도록 한 책들이 많아 나와 있다. 최근 몇 년 새 필사열풍이 불기도 했다. 그런 필사용 책도 좋다. 하지만 굳이 필사용 책을 따로 사서 해볼 필요는 없다. 자신이 인상 깊게 읽었던 시집이나 소설도 좋고, 인문학이든 교양과학이든 상관없다. 물론 신문도 최고의 교과서이다.
필사를 해보면 느끼게 되겠지만 매우 지루한 작업이다. 해서 필사하는 글이 가능하면 좋아하는 내용이나 글귀면 지루함을 덜어준다.
결론적으로 내 경험에 의하면 문장력을 향상시키는 데는 필사만한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나의 주관적 경험이라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른다고 지적할 수도 있는데, 문청들도 즐겨 사용하는 문장공부법이라는 점에서 내 경험의 일반화는 정당성을 확보한다.
필사의 힘을 믿어보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조성일의 글쓰기 충전소'에도 포스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