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아직 없는 책,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는 내가 지은 책 이름이다. 스페인어로 된, 엄청 길고 복잡한 원전의 제목이 따로 있기는 하다.
이 책은 유럽의 칼잡이와 총잡이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하고 난 직후인 16세기에 가톨릭교회의 신부로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가 마야 원주민들에게 선교 사업을 펼쳤던 디에고 데 란다(Fray Diego de Landa)라고 하는 괴짜 신부에 대한 기록이다. 마야문명 정복의 역사와 주변의 지리, 원주민들의 문화, 생활, 환경 등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한마디로 마야문명에 관한 당대의 현장에서 쓰인 종합 백과사전이다. '마야문명' 하면 항상 따라붙는 가장 유명한 사료인 셈이다.
고대 마야 문명 이해의 결정판
스페인어로 된 이 원전을 번역하기 시작한 것은 멕시코 유학 시절인 1995년부터이다. 그리고 각종 주와 설명을 담아 탈고를 한 것이 2014년이니 꼬박 20년이 걸린 작업인 셈이다. 게으르고 능력 없음을 탓한다 해도 나름 지리하고 방대한 작업이었다.
그런데 탈고를 하고 3년이 넘게 흘렀지만 선뜻 나서 출판을 해주겠다는 출판사가 없다. 그래서 하소연이든 넋두리가 되었던 답답한 마음에 몇 자 적어본다. 같이 고민해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이 책은 고대 마야문명 이해의 결정판이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이야기를 하면 빠지지 않는 사료가 삼국유사, 삼국사기 같은 것이다. 이 책은 마야문명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합쳐 놓은 것과 같은 가치와 중요성을 지닌다. 고대 마야문명을 이야기할 때 '란다'라는 이름은 어디든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마야문명에 관한 사료가 적어 거의 유일하다고 할 정도로 희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의 내용도 '디에고 데 란다' 본인이 직접 마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자연 등에 대하여 항목별로 세밀하게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가지는 학술적, 문학적인 의의는 실로 무한하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도 마야문명에 대하여 좀 더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려면 이정도 책은 한 권쯤 번역되어 출간되어야 하지 않겠나.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언어로 이미 수십 년 전에 다 번역되어 나왔을 정도이다. 이렇게 중요한 사료이다 보니 일찍부터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마야 지역을 여행하는 관광객에서부터 학자와 문인에 이르기까지 실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역사 사료로 혹은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폭넓게 읽혀왔다.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등의 유럽어 번역본은 이미 100여 년 전에 출간되었고 일본어 판만 하더라도 1982년에 나왔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이렇게 중요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출간하려고 기웃대기만 하면 모두들 고개를 내젓는다. 근데 사실 그도 그럴만하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면 뭐 하나.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읽지 않는다면 결국 그건 낭비요 허영인 것을. 음~ 공감한다. 사람들이 안 읽을 책 출간하는 것에 절대 찬성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언젠가 한번이라도 들춰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면? 장기적으로 타문화이해에 깊이를 더할 꼭 필요한 책이라면? 그런 책은 당장 장사가 안 되더라도 꼭 만들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많이 팔리지 않을지라도 최소한 한국어 번역과 주역, 해설본을 어디에선가는 찾아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그 어떤 출판사도 선뜻 받아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봐도 너무 극명해 보인다. 책을 만들고 나서 출판사 문을 닫을 판이라면 내가 사장이라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이 점에 있어서 이미 나는 질 나쁜 전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지난 2005년, 내가 십여 년간 공부하고 또한 직접 현장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발굴한 자료를 모아, 마야문명에 관한 종합적인 입문서적인 <마야>라는 책을 출간했다. 여기저기서 좋은 평도 받았지만 결국 1000여 권 찍은 초판 인쇄본이 아직도 창고에 쌓여 있다. 즉 출판사의 영업적인 측면에서도 보면, 나는 '돈 말아먹는 하마'인 셈이다.
이 책은 정말 출판사 말아먹을 책인가?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의 경우 본문은 길지 않지만, 주석과 해설이 빼곡하여 전체 양이 방대하다는 점도 출판을 가로막는 요소가 된다. 본문의 몇 배가 되는 엄청난 각주와 해설이 독자를 질리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쩌랴. 삼국유사를 그냥 그대로 풀어쓴다 하더라도 일반 독자들이 그걸 일일이 다 이해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마야문명이라는 다른 나라, 다른 지역, 다른 문화에 대해서 쓴 500여 년 전의 이야기인데 말이다. 그러다보니 등장하는 이름, 지명, 용어, 사실 등에 대한 자세한 주석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안 할 수 없다. 물론 그걸 독자들이 다 읽으라는 것은 아니다. 본문의 내용은 필자의 능력 안에서 최대한 가독성을 높인 의역도 마다치 않았다. 주석과 해설이야 기술적으로 필요한 부분만 읽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건 내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자신이 쓴 책이 세상에서 제일이라는 오만과 착각을 하는 게 저자들의 환상이란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하여간에 상황이 이렇다보니 원고를 한번 훑어만 봐도 기가 질리게 된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이건 우리 회사 말아먹을 책이란 생각이 들게 뻔하다.
그렇다면 이런 건 비영리 단체에서 공익 사업으로 할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일단 그놈의 비영리 단체도 진짜 '비영리'를 추구하면 능력 없어지는 세상 아닌가. 그러다보니 대학출판사에서의 출판을 바라는 것도 쉽지 않다.
학술재단 등에 프로젝트를 신청하는 건 능력도 안 될 뿐더러 스스로도 별로 달갑지 않다. 세상에 공짜 돈은 없다는 게 진리인 것 같다. 또한 돈 있는 곳에 구린내 안 나기 힘들다. 내 능력이 그런 것들을 극복할 정도가 아니라는 걸, 혹은 그런 세상이 못 된다는 걸 깨달은 지 오래다.
손해 볼 것을 각오하고 출판을 해달라고 사정할 변죽도 없고, 염치도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그냥 파일 형태로 혹은 전자책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무료로 배포하는 것인데 그러면 이 책이 존재하는지조차 알리기 힘들게 되고, 결국 쓰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전달되기도 힘들 것이란 생각에 이마저도 좋은 방법일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이 책 팔아 용돈이라도 좀 만져보겠다는 생각은 아예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소위 세계화 시대에 그냥 적당히 무한 반복되는 얄팍한 상식 수준의 다른 나라, 다른 문화 이야기에서 좀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은가.
물론 그런 얄팍한 정보마저도 마야문명의 경우는 오류와 왜곡이 넘쳐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대표적 고대 문명 중의 하나인 마야문명에 대하여 좀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는 사료가 한 권 한국말로 번역되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내 작은 바람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이정도의 책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비록 그게 그렇게 큰 돈벌이가 안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매년 해외여행을 떠나는 한국 사람들의 숫자가 최고치를 경신하며 인천국제공항은 더욱 북적인다는 소식이다. <란다의 마야문명이야기>도 서점까지는 아니어도 도서관에서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