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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에 내재한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왔는지, 과연 문명의 진화만큼이나 폭력성은 감소되어왔는지를 과학적으로 밝힌 책이 있다.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다. 스티븐 핑커는 인간의 마음과 언어, 본성과 관련한 심도 깊은 연구와 대중 저술 활동을 한 사람으로 2003년부터 지금까지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나는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여 폭력과 비폭력의 심리를 살펴볼 것이다. 내가 끌어들인 이른바 마음의 이론은 인지 과학, 감정 신경 과학과 인지 신경 과학, 사회 심리학과 진화 심리학, 그리고 내가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빈 서판>, <생각거리>에서 탐구했던 인간 본성의 과학을 종합한 내용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마음이란 뇌에 갖춰진 인지적, 감정적 능력들로 구성된 복잡한 체계이다. 그리고 그 뇌의 기본 설계는 진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이런 능력들 중 일부는 우리를 갖가지 폭력으로 이끌지만, 또 다른 능력들은 –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을 빌리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협동과 평화로 이끈다. 따라서 과거의 문화적, 물질적 환경 변화들 중 무엇이 온화한 동기를 우세하게 만들었는지 알아내는 것이 곧 폭력 감소를 설명하는 길이다.(16~17p)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주)사이언스북스
핑커는 폭력 감소의 원인을 첫째로 수렵에서 농경 사회로의 전이, 둘째로, 유럽 국가를 비롯한 국가의 탄생과 문명화 과정, 셋째로 계몽주의 시대가 빚어낸 인간 지성의 향상, 넷째로 세계 2차 대전 이후 강대국들간의 냉전 종식, 다섯 째 내전이나 집단 살해, 독재 정부의 억압, 테러의 감소 등이 보이는 경향성을, 마지막으로 인권개념의 성장으로 분석했다.

핑커의 두터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앞으로 우리 문명에서 전쟁 등과 같은 폭력은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인가는 물음이다. 핑커는 그 답을 유보한다. 지금까지 폭력의 형태가 과거보다 둔화되는 현상을 뛰긴 했지만 그것으로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폭력의 감소는 어디까지나 과거부터 지금까지 가지고 왔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라는 것이다.

여전히 이 사회는 테러, 핵 전쟁 등과 같은 위험 요소가 있다. 어쩌면 과거 보다 더 처참한 전쟁의 참혹함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껏 인류 지성이 해왔던 것처럼 우리가 각성하고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그 위험은 제거 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음미할 업적'(1180p)이다는 것이 핑커의 주장이다.

천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는 것은 노동이었다. 책을 읽는 즐거움 대신에 이것을 끝까지 읽고 말아야 한다는 각오도 있었다. 핑커의 책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요즘 세상은 정말 말세야"라는 말을 반박하기 위해, 우리는 긴 평화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감사하기 위해, 책은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데이터를 모았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일목요연하게 굳이 전공자가 아니라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가 2015년 2주에 한 권씩 책을 읽겠다고 공개 선언한 후 새해 두 번째로 선정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저커버그가 "최근 사건들로 폭력과 테러리즘이 전보다 더 흔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며 "그런 만큼 모든 폭력, 테러조차 사실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유명 인사들이 칭찬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핑커의 맥락 중에 약간 오해를 살 만한 부분이 있다.

'국제 정세에서 지난 20년은 각국 지도자들이 과거 자기네 정부의 범죄를 줄줄이 사과한 시기였다. 정치학자 그레이엄 도즈는 지난 수백 년을 아울러 '주요한 정치적 사과들에 대한 상당히 종합적인 연대별 목록'을 작성했다. 목록은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오 7세에게 교회와 국가의 충돌을 사죄하기 위해서 눈밭에서 맨발로 사흘간 석고대죄했던' 1077년에 시작된다. 다음 항목은 600년이 더 지나서야 등장한다. 1711년에 매사추세츠 주가 살렘 마녀재판의 희생자 가족들에게 사과한 것이었다. 20세기 들어 첫 사과는 1919년에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서 제1차 세계 대전의 개전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었지만, 이 장르의 바람직한 대표 사례라고 할 수는 없겠다. 좌우간 지난 20년 동안 쏟아진 사과들을 볼 때, 국가적 자기표현은 새 시대에 접어든 듯하다. 역사상 최초로 지도자들은 자국의 무류성과 정당성이라는 자기 위주 주장보다 역사적 진실과 국제적 화해의 이상을 더 중시했다. 1984년에 일본은 과거 한국 점령에 대해 사과 비슷한 발언을 했다. 일본을 방문한 한국 대통령에게 히로히토 일왕이 "20세기에 불행한 시기가 있었던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다른 일본 지도자들은 점점 더 허심탄회한 표현으로 사과의 뜻을 밝혔다. 독일은 홀로코스트를 사과했고, 미국은 일본계 미국인들의 억류를 사과했고, 소련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폴란드 죄수들을 죽인 것을 사과했고, 영국은 아일랜드, 인도, 마오리 족에게 사과했고, 바티칸은 종교 전쟁, 유대인 처형, 노예 무역, 여성 억압을 거든 것을 사과했다.(920~921p)

오해를 살 만한 것이 "일본을 방문한 한국 대통령에게 히로히토 일왕이 '20세기에 불행한 시기가 있었던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는 것과 '이후 다른 일본 지도자들은 점점 더 허심탄회한 표현으로 사과의 뜻을 밝혔다'는 부분이다. 

"식민 지배 사죄" 일 총리 담화 어떻게 나왔나 기사에 나오는 식민 지배 관련 일본 쪽 사과 발언 일지를 읽어보자.

△ "양국이 불행했던 과거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1984년9월7일, 히로히토 일왕이 전두환 대통령 방일환영 궁중만찬에서)
△  "우리나라가 일으킨 불행한 시기에 한국의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되새기며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 (1990년5월24일, 아키히토 일왕이 노태우 대통령 환영만찬에서)
△ "식민지 지배에 의해 한반도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경험한 것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반성하고 깊이 사과하고 싶다." (1993년11월6일, 호소카와 모리히토 총리가 경주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아시아 제국의 사람들에 대해 큰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고,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기분을 표명하고 싶다." (1995년8월15일, 무라야마 도이미치 총리 담화)
△ "일본이 과거의 한 시기에 한국 국민에 대해 식민지 지배에 의해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다." (1998년10월6일,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김대중 대통령의 '한일공동선언'에서)
△ "일본인인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까닭에, 나라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존심을 손상당한 사람들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다." (2010년2월11일, 오카다 가쓰야 외상이 한일 외무장관 공동회견에서)》  -정남구,「식민 지배 사죄" 일 총리 담화 어떻게 나왔나」, 『한겨례.2010.08.10』

사실만 확인한다면, 더욱이 2015년 3월, SBS 뉴스 '일왕 '과거사 유감 표명' 막후교섭…외교문서 공개'만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글을 이해할 때는 앞뒤만 딱 잘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 문장이 주는 대등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독일이 홀로코스트를 사과한 것만큼, 일본 정부 차원에서 한반도 강점에 대한 사과를 했는가. 일부 정계 지도자들이 사과 의사를 표명한 것이 일본 정부 지도자들의 전체의 사과로 볼 수 있는가. '사과 비슷한 발언', '사과의 뜻을 밝혔다' 등과 같은 표현은 일본의 우익 집단이 내는 논리와 매우 유사하다.

여전히 수요일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1940년 조선인 강제 징용이 대규모로 이뤄진 곳으로 알려진 나가사키 항 근처의 군함도는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됨으로써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볼 때,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책이고, 폭력 감소에 관한 핑커의 고찰은 훌륭하지만 (핑커의 글이 국제적 평화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서술 되었음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이런 내용은 조금 신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2014)


#우리본성의 선한천사#스티븐 핑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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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로컬문화콘텐츠 기획자 해남군사회적공동체지원센터 주민자치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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