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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JTBC뉴스룸은 작심한 듯 태블릿PC 조작설을 반박했다.
9일 JTBC뉴스룸은 작심한 듯 태블릿PC 조작설을 반박했다. ⓒ JTBC

[기사수정 : 11일 오전 10시 13분]

"저희가 보도한 최순실 태블릿 PC가 조작됐거나 가짜라는 주장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아마 뭐라고 해도 정치적 목적 때문에 계속될 것 같기는 합니다. 이런 주장이 나올 때마다 대응하는 것도 적절치는 않은 일이지만 가짜라고 주장하는 쪽이 기자회견까지 했고 많은 언론들이 이것을 옮겼기 때문에 오늘 주장의 그 문제점을 짚어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지난 9일 오후 방송된 JTBC <뉴스룸>의 오프닝 멘트다. 이날 손석희 앵커는 작심한 듯 태블릿PC 조작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여기에 할애된 꼭지수는 7꼭지, 20분 분량이었다. 이날이 휴일임을 감안해 1시간 가량 진행했으니 방송 시간의 2/3를 태블릿PC 조작설을 반박하는 데 사용한 셈이다.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싶지만, 시각을 달리해 보면 시의적절하기도 했다. 마침 JTBC <뉴스룸>이 태블릿PC를 보도한 지 1년이 가까워오기 때문이다. 손 앵커도 반박보도를 내보내면서 "오늘 본의 아니게 1주년 특집 보도를 해드리게 됐다"고 전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스모킹건'(결정적 증거 - 글쓴이)이었던 태블릿PC 보도가 나온 시점은 꼭 1년 전인 지난해 10월 24일이었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집요하게 태블릿PC의 증거능력을 문제 삼았고, 이런 문제제기는 1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까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손 앵커의 지적대로 아무리 사실을 들이 밀어도 '정치적 목적' 때문에 태블릿PC 조작 논란은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아니, '친박(친박근혜)' 세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문제를 끌어들여 쟁점화를 노릴 가능성이 높다. 보수 자유한국당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시로 소환하듯이 말이다.

검증 없이 '양심선언'이라 단정한 언론들 

더 큰 문제는 언론의 보도태도라고 본다. 태블릿PC 조작설을 제기한 장본인인 신혜원씨는 지난 8일 국회 정론관에서 이른바 '양심선언' 기자회견을 했다. 이 회견에서 신씨는 박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대선 기간인 2012년 10월부터 12월까지 태블릿PC를 직접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신씨의 주장은 '신혜원 양심선언'이란 제목으로 여러 언론을 통해 기사화됐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신혜원 양심선언'이란 검색어를 입력해 몇 건의 기사가 올라왔는지 검색해 보았다. 기간은 10월 8일부터 10월 10일까지로 설정했다. 검색 결과 총 87건으로 집계됐다. 네이버의 경우는 검색창에 '신혜원'이란 이름을 입력하면 연관검색어로 '신혜원 양심선언'이 뜬다. 그대로 검색했더니 총 93건의 기사가 올라왔다.

 검색포털 '네이버'는 검색창에 '신혜원'을 입력하면 '양심선언'이 연관검색어로 뜰 수 있도록 했다.
검색포털 '네이버'는 검색창에 '신혜원'을 입력하면 '양심선언'이 연관검색어로 뜰 수 있도록 했다. ⓒ 네이버 화면갈무리

더욱 심각한 건 기사의 내용이다. 기자회견 직후 나온 보도들 대부분은 알맹이(?) 없이 대부분 신씨의 주장을 그대로 옮겼다. 심지어 일부 극우매체들은 신씨 기자회견에 참석한 변희재씨나 박 전 대통령의 제부 신동욱씨의 입장까지 반영해 신씨의 주장을 보완해 주고 있었다. 그 중 일부를 아래 인용한다.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신혜원의 양심선언과 관련해 "손석희 완전범죄가 실패한 꼴"이라고 말했다. 신 총재는 8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신혜원 'JTBC 태블릿PC 양심선언' 기자회견, 충격·경악·조작·거짓·절도"라며 "손석희 완전범죄 실패한 꼴이고 구속수사 정답 꼴이다. 누가 의도적으로 조작한 꼴이고 그림파일 글자수정 말도 안되는 꼴이다. 사실이면 내란죄 꼴이고 관련자 여적죄로 처벌하라"고 말했다. - <서울경제> 10월 9일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SNS 담당으로 일했던 신혜원씨가 "최순실 태블릿PC 는 자신이 쓰던 것"이라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변희재 대한애국당 의장이 "신혜원씨가 "늦게 나온 이유는 JTBC와 검찰의 태블릿PC 은폐 탓"이라고 주장했다. - <뉴스웍스> 10월 10일

JTBC 태블릿 PC 조작보도 의혹과 관련해 "내가 실사용자"라며 최순실 씨의 태블릿 PC라는 기존 인식을 깬 신혜원 씨의 주장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신 씨 주장에 따르면, 그는 서강대 출신으로 서강포럼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중 박근혜 후보의 측근인 고(故) 이춘상 보좌관 요청으로 캠프에 합류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무를 담당했다. (중략) 이후 논란이 일자 JTBC는 9일 방송을 통해 수차례 관련 방송을 내놨다. 이에 대해 태블릿 PC 의혹제기를 주도하고 있는 대한애국당 변희재 정책위의장은 9일 보도자료를 내어 "손석희 JTBC의 변명방송은 동문서답·진실은폐· '조작공범 김한수 팔이'가 전부"라며 재반박했다.  - <미래한국> 10월 10일

모든 주장이 동등하게 대접받아선 안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 <나는 부정한다>의 한 대목을 인용하고자 한다. 이 영화는 영국의 나치 추종자 데이빗 어빙의 역사 왜곡에 맞서 법정 투쟁을 벌인 유대인 홀로코스트 연구자 데보라 린스타트의 이야기를 그렸다. 데보라 린스타트는 데이빗 어빙과의 공방에서 승리를 거둔 후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든 주장이 동등하게 대우받아선 안 된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은 존재한다."

누구든 주장은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씨가 소위 양심선언 운운하며 태블릿PC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다. 문제는 언론의 태도다. 일부 언론은 신씨의 주장을 아무런 검증 없이 '양심선언'이라는 검색어를 끼워 넣은 뒤 앞다퉈 기사화했다. 기자회견 시점에서 신씨의 주장을 면밀히 검토했더라면 어땠을까?

MBC와 TV조선, MBN은 신씨 기자회견 내용을 그대로 보도했다. 여러 인터넷 매체들에서도 신씨의 기사를 다뤘다. 비록 많은 '주류' 매체에서 다뤄지지는 않았어도 일단 인터넷에 기사가 올라오면 카카오톡 등 SNS로 확산시킬 수 있으니 예사로이 볼 수는 없다.

이미 검찰은 문제의 테블릿PC가 최씨 것이 맞다고 결론을 내렸고, 김한수 전 청와대 행정관과 정호성 전 비서관 역시 법정에서 최씨의 소유임을 증언했다. 언론이라면 관련 내용을 토대로 신씨의 주장을 검증해 보도해야만 했다.

'따옴표 저널리즘'이란 말이 유행이다. 누군가의 주장을 아무 검증 없이 받아 적는 관행을 말하는데, 신씨의 기자회견을 전한 언론들이 따옴표 저널리즘의 표본일 것이다. 이런 저널리즘은 가짜 뉴스의 창궐로 이어진다. 민동기 전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은 MBC 박성제 해직기자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의 경우 마크롱과 관련된 문서가 해킹당한 일이 있어요. 해킹되어 유포된 것 가운데 진짜 문서도 있고, 가짜 문서도 있어서 판별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대선은 목전에 있고요. 그래서 르몽드 등 유럽 언론은 이것을 다루지 않았어요. 그런데 한국 언론은 위험한 게, SNS 등에서 유통되는 말에 대해 '따옴표 저널리즘'으로 '이러이러한 내용이 돌고 있다. 당사자는 부인했다'라고 써버리고 자기 역할을 끝내는 거에요. 이게 가짜뉴스가 횡행하게 된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확인을 해야죠. 이상하면 보도를 내지 않거나 비판을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아요." - 박성제 <권력과 언론>

이제 언론이 태블릿PC 조작 주장을 무분별하게 받아쓰지 않기를 바란다. 시청자들은 뉴스에 목마르다. 공영방송 KBS·MBC 노조는 파업 중이고, 일부 보수 매체는 보수 야당의 주장을 검증없이 그대로 보도하는 모습이다.

JTBC는 9일 태블릿PC 조작 주장을 반박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 이날 톱뉴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장남 이시형씨가 지분이 1%도 없으면서 다스의 해외 법인 여러곳의 대표로 선임됐다는 소식이었다. 이 보도는 그간 논란이 일었던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중요한 보도였다. 그러나 관련 보도는 세 꼭지, 분량은 14분으로 태블릿PC 반박 보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시청자로서, JTBC <뉴스룸>이 가짜 뉴스 반박에만 역량을 집중한 것 같아 아쉽다.


#JTBC#신혜원#손석희#따옴표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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