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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면서] 고려 때 '청기와 장수'는 지독한 이기주의자였다. 그는 청기와 만드는 비법을 자기만 알고, 그 기술을 다른 이에게 전수도 않았을 뿐더러 기록도 남기지 않아 그만 그 맥이 끊어져 버렸다. 그 때문에 우리 속담에 '청기와 장수'란 말이 생겨났다. 이는 자기만 알고 남에게는 알리지 않는, 어떤 일을 자기 혼자만 차지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라는 뜻으로 전해진다.


한 예로, 우리는 고려자기를 세계에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의 후손들은 그 만드는 비법을 정확히 몰라 고려자기를 완벽하게 재현치 못하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그에 관한 기술 전수나 기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만일 고려 시대에 자기를 빚었던 도공이 어느 지방의 흙으로, 어떻게 빚었으며, 며칠 동안 말렸고, 어떤 유약을 발라 가마에다 무슨 나무로 며칠을 구웠다는 기록만 있어도 고려청자는 완벽하게 재현됐을 것이다.



비단 자기 문화만 그러한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는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숱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많은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문맹률 제로에 가까운 오늘날에도 도로 굴착 중 가스나 수도 배관도가 부실하여 대형 가스 폭발사고나 수도관의 파열사고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정치인이나 경제인들 역시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않아 나라의 정치·경제 발전을 더디게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아무튼 사회 전반에 이런 기록문화의 부실 탓으로, 온 나라가 아직도 수백년간 쌓여온 적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현실이다.











나는 1999년부터 18년간 근현대사 역사현장을 답사하면서 그 현장을 카메라 앵글에 담고 취재수첩에 기록해왔다. 그 가운데 일부는 온라인·오프라인(책)으로 공개된 것도 있지만, 아직도 내 글방 곳간에 잠자고 있는 이미지들도 더러 있다. 이제 영육이 이나마 건강할 때 이를 모두 공개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 이 연재를 시작하는 바다. 비록 일부 독자에게는 하찮은 이미지로 비칠지라도 곰곰 새겨보면 지난 역사와 선조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조금은 이바지하리라는 그런 바람으로 이 연재를 시작한다.  



여기에 싣는 이미지들은 대부분 내가 직접 촬영하였거나 아카이브 또는 기념관 등에서 스캔한 자료들과 그 과정에서 얻은 문헌들이다. 내 글방 곳간에는 1999년부터 여러 차례 답사한 중국, 일본, 러시아(연해주)의 근현대사 유적지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그리고 맥아더기념관과 국내의 의병전적지와 항일유적지 그리고 남북작가대회에 참석하여 평양, 묘향산, 백두산 등지에서 담았던 이미지들이다.



나는 이 자료들을 매회 10컷 내외로 소개할 예정이다. 이 연재는 지난날 <사진으로 본 한국전쟁> (2004. 2. 14.~2004. 5. 4.) 총 30회, <한국전쟁, 그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복원> (2017. 6. 13.~2017. 2017. 9. 27.) 총 30회에 이은, 제3차 자료 공개다. 앞서 소개한 자료와 가능한 중복되지 않도록 편집·기술하겠지만 글 전체의 흐름상 부득이한 경우에는 한두 컷 예외일 수도 있겠다.



이번 연재는 2017년 10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2018년 상반기까지 주 1회 정도로 장기간 연재할 계획이다. 때로는 한 이미지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도 늘어놓을 수도,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팩트) 중심의 사진 설명만으로도 송고할 예정이다. 



대장정의 안내 글 프롤로그와 제1회 기사를 보낸다. 독자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을 바란다.



* 주의 : 이 기사 속 사진 중에는 죽은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청소년이나 심약자께서는 이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950년 4월] 서울 근교 좌익사범 처형



* 요약 : 1950년 4월 14일 한국 서울에서 정상적인 처형을 보여주는 사진들

* 사진 제공 : 재미사학자 고 이도영 박사

* 관련 기사 : 먼 이국에서 눈이나 감고 죽었을까


 
 서울 근교 좌익사범처형에 대한 미 육군무관 밥 에드워드의 정보 보고서
서울 근교 좌익사범처형에 대한 미 육군무관 밥 에드워드의 정보 보고서 ⓒ NARA/이도영




위 보고서 요약 : 첨부한 15매(본 기사에서는 14매 수록)의 사진들은 한국 서울에서 아주 빈번하게 수행됐던 것으로, 정상적인 처형을 보여준다. 39명 희생자들은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하려는 활동을 한 것으로 판정된, 모두가 자백한 공산주의자들이다.



처형은 한국군 헌병대장의 감독 하에 헌병들에 의해서 집행됐다. 처형은 서울 동북쪽 약 10마일 떨어진 언덕에서 1950년 4월 14일 15:00시에 있었다. 처형을 관람한 사람은 약 200명의 한국군 인사들과 미 육군 무관을 포함한 6명의 미군 장교들이 있었다.



사진들은 OSI Dist #8 소속 도널드 니콜스(Mr. Donald Nichols)가 라이카 카메라로 찍었다. 희생자들은 공산주의자들의 노래를 불렀으며, 총격이 가해지자 그들은 북한 지도자 만세를 불렀다. 그들은 총살 집행관들을 담담한 태도로 바라보았으며 용감하게 죽어갔다. - 육군 무관 중령 밥 에드워드(POP E. EDWARDS)




 
 헌병들이 사형수들을 형틀에 새끼로 묶고 있다.
헌병들이 사형수들을 형틀에 새끼로 묶고 있다. ⓒ NARA/이도영





 
 헌병들이 사형수들을 형틀에 새끼로 묶고 있다.
헌병들이 사형수들을 형틀에 새끼로 묶고 있다. ⓒ NARA/이도영
 
 
 헌병들이 사형수들을 형틀에 묶고 있다.
헌병들이 사형수들을 형틀에 묶고 있다. ⓒ NARA/이도영
 
 사형수들을 형틀에 묶는 동안 총살 집행관이 사수들을 정렬시키고 있다.
사형수들을 형틀에 묶는 동안 총살 집행관이 사수들을 정렬시키고 있다. ⓒ NARA/이도영



 
 현병들이 가리개로 사형수의 눈을 가리고 가슴(심장)에 사격 표적지를 붙이고 있다.
현병들이 가리개로 사형수의 눈을 가리고 가슴(심장)에 사격 표적지를 붙이고 있다. ⓒ NARA/이도영



 
 사형수 처형 준비가 끝났다.
사형수 처형 준비가 끝났다. ⓒ NARA/이도영



 
 집행관이 처형 사수들을 좌우로 정렬시키고 있다.
집행관이 처형 사수들을 좌우로 정렬시키고 있다. ⓒ NARA/이도영



 
 집행관이 "사격개시!" 총살 명령을 내리자 사수들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집행관이 "사격개시!" 총살 명령을 내리자 사수들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 NARA/이도영





 
 집행관(헌병 간부)들이 총살 집행 후에도 숨이 붙어 있는 일부 사형수를 찾아 권총으로 근접 확인 사살하고 있다.
집행관(헌병 간부)들이 총살 집행 후에도 숨이 붙어 있는 일부 사형수를 찾아 권총으로 근접 확인 사살하고 있다. ⓒ NARA/이도영





 
 총살 집행이 끝나자 헌병들이 사형수를 형틀에 묶었던 새끼를 낫으로 자르고 있다. 이 사형수는 머리 한쪽이 확인사살로 파열되었다.
총살 집행이 끝나자 헌병들이 사형수를 형틀에 묶었던 새끼를 낫으로 자르고 있다. 이 사형수는 머리 한쪽이 확인사살로 파열되었다. ⓒ NARA/이도영



 
 헌병이 처형된 사형수의 시신을 관에 넣고자 형틀의 새끼를 풀고 있다.
헌병이 처형된 사형수의 시신을 관에 넣고자 형틀의 새끼를 풀고 있다. ⓒ NARA/이도영





 
 헌병이 처형된 사형수의 시신을 형틀에서 분리시키고자 새끼를 풀고 있다.
헌병이 처형된 사형수의 시신을 형틀에서 분리시키고자 새끼를 풀고 있다. ⓒ NARA/이도영



 
 총살 집행의 마지막 단계로 처형된 사형수의 시신을 송판 관에 담고 있다.
총살 집행의 마지막 단계로 처형된 사형수의 시신을 송판 관에 담고 있다. ⓒ NARA/이도영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이 처형 장면을 사진으로 보기 이전, 2004년 2월 25일 버지니아 남단 항구도시 노퍽(Norfolk) 맥아더기념관에서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그때 나의 길 안내자였던 이도영 박사로부터 이 사형수들이 일반 죄수처럼 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하지 않고 야외에서 총살당한 것은 군인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도 그들은 숙군 과정에서 좌익계로 분류 수감 중,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처형됐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기록에 따르면(<한국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제2권 186~187쪽, 강준만), 1948년 10월부터 1949년 7월까지 진행된 숙군작업에는 전 군(軍)의 약 5%에 해당하는 4749명이 그 대상으로 2000여 명이 총살됐다고 한다. 이 총살 집행은 그 이듬해까지도 집행된 모양이다.



'그들이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저렇게 참혹하게 죽였을까? 사람이 신념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저렇게 죽일 수 있을까?'



나는 그 동영상을 보는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스치면서 온몸이 굳어졌다.




 
 2004. 2. 25. 맥아더기념관 자료실 앞에서 고 이도영(오른쪽) 박사와 필자.
2004. 2. 25. 맥아더기념관 자료실 앞에서 고 이도영(오른쪽) 박사와 필자. ⓒ 이도영
 



그날 핸들을 잡은 이 박사는 맥아더기념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오랜 침묵을 깨고자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그 숙군 소용돌이 속에서도 동지의 조직도를 밀고한 뒤 '혼자 살아난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 순간 나는 젊은 날 깊은 밤, 아버지에게 들은 한 고향 선배의 천기누설과 같은 행적이 떠올랐는데 바로 그 얘기였다.



그 파란만장 기구한 삶의 이야기는 짧은 이 글에 어찌 다 담을 수 있겠는가. 그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른 형식의 글로 쓰기로 하고, 대신 조갑제 기자가 쓴 한 대목을 인용하는 것으로 독자의 궁금증을 일부나마 풀어드린다.



"숙군(肅軍) 수사 팀에 구속된 박정희 소령이 그 절박한 상황에서 (동거녀) 이현란(李賢蘭)에게 쪽지를 써 고백한 내용 - '현란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도망갈 수 있었는데도 가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진실일 것이다. 여덟 살 아래인 그녀에 대한 박정희의 집착은 대단했다.



만약 이때 이현란이라는 여인이 없었고, 박정희가 달아났다면 그의 생애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렸을 것이다. 잡혀와 처형되었든지,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었든지, 월북(越北)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형선고를 면하고 감옥살이를 했다면 6.25 동란이 터지고 정부가 후퇴할 때 다른 좌익수와 함께 '처리'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느쪽이든 '대통령 박정희'는 없었을 것이다." -조갑제 지음 조선일보사 발행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2001년 초판 10쇄 제2권 220쪽



천망(天網, 하늘의 그물)



여기까지 이 글을 쓰는데 갑자기 '천망(天網)', '업보(業報)',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뒤에 두 말은 대부분 독자들이 알 것 같아 첫째 말만 몇 자 군더더기를 덧붙인다. 노자의 <도덕경>에 다음의 글이 있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성글어 보여도 빠져나가지 못한다(天網恢恢 疎而不失)."



또 "하늘의 그물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이 만들어낸 법의 그물은 눈에 보인다. 그래서 사람이 만든 법의 그물망을 잘 피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의 죄는 언젠가는 하늘의 그물에 걸리게 된다"고 한다.



최근 보도되는 여러 흉흉한 일들의 기사는 위 세 말과 연관되는 듯하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남의 눈에 티끌은 잘 보면서도 제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우리(일부를 제외하고)는 어떤 면에서 공범자일 수도 있다. 그의 시책에 부화뇌동하거나 그 장단에 맞춰 적극 춤추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지지 투표를 했거나 또는 수수방관하거나 침묵했으니까.



우리 모두 역사와 민족 앞에서 크게 참회하고 자기의 잘못을 고치지 않는 한, 분단 극복도, 조국 평화통일도, 우리 사회와 가정의 평화도 이루기 힘들 것이다. 



"주여! 어리석은 우리 인간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들이 자신의 잘못을 뼈아프게 깨달아 스스로 깊이 참회하게 하소서... 나무상주시방불 나무상주시방법 나무상주시방승."
 

덧붙이는 글 | 이 ‘서울 근교 좌익사범 처형’ 사진 이미지는 박도 엮음 눈빛출판사 발행 <한국전쟁. Ⅱ>에 수록돼 있습니다.


#좌익사범 처형#박정희#이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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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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