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과거 '긴급조치 9호'로 처벌받은 132개 사건에 대해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다. 정부를 비판한 사람을 영장 없이 체포·구금 할 수 있도록 한 이 악법은 지난 2013년 헌법재판소에서 이미 위헌으로 결론 났다.
대검찰청 공안부는 19일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선고받은 김아무개(당시 30세)씨 등 132건 145명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등 전국 26개 검찰청에서 검사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재심은 이미 확정된 판결에 중대한 오류가 있을 때 재심리를 요청하는 구제 장치다. 판결 당사자나 그의 법정대리인이 청구할 수 있다. 당사자가 사망했을 땐 피해자의 배우자·형제자매·직계가족 그리고 검사에게 청구권이 있다.
하지만 검찰은 피고인의 무죄가 명백한 상황에서도 무죄를 구형하지 않는 '백지구형' 관행을 이어오는 등 과오를 바로 잡는 데 인색했다. 지난 7월 취임한 문무일 총장이 검찰 총장 최초로 과거사를 사죄하고, 이를 바로잡겠다고 약속한 뒤 지난 9월 태영호 납북사건, 문인 간첩단 사건 등 과거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는 등 전향적인 결정이 잇따르고 있다.
노동자·대학생 등 145명 명예 회복할 듯긴급조치 9호는 유신시절인 1975년 5월 13일에 박정희 정부가 제정해 공포했고, 1979년 12월 7일에 해제됐다. 유신헌법을 부정하거나 폐지를 주장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1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한다는 게 골자였다. 또 관련자를 법원의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은 무고한 시민들을 억압했다. 해외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하다 귀국한 김아무개(당시 30세)는 '유신헌법은 삼권분립에 반해 국민의 찬반토론 없이 제정되었으므로 철폐돼야 한다'는 서신을 청와대로 보냈다가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충남대학교 3학년이던 이아무개(당시 21세)씨도 친구에게 '전국 기계과 체육대회가 무기 연기된 것은 문교부 검열 때문이다'라고 말했다가 사실을 왜곡해 전파한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지난 2013년 헌법재판소는 이 법이 "참정권, 표현의 자유, 영장주의 및 신체의 자유,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한다"며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이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도 같은 이유로 위헌이 선언됐다.
이렇게 피해자들이 명예를 회복할 길이 열렸지만 절반 가까이는 재심을 청구하지 않았다. 검찰은 "긴급조치위반으로 처벌된 사건은 현재까지 총 485건 996명으로, 이 중 420여 명에 대해 아직까지 재심 청구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이번에 청구한 사건은 긴급조치 9호위반으로만 처벌된 사례 중 피고인 측에서 아직까지 재심을 청구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앞으로 긴급조치 1호, 4호 위반으로 처벌된 사건 등도 순차적으로 검토하여 직권 재심 청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