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가 넘은 밤. 침대에 누웠다. 꿈의 나라로 스르륵 빠져들려는 찰나. 느닷없이 침대 아래로 몸이 푹 꺼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가 저 아래에서 내 심장을 꽉 움켜쥐더니 허락도 없이 훔쳐가 버린 것 같다. 심장이 사라진 공간에서 뿜어져 나온 싸늘한 기운이 온몸에 퍼진다. 설명할 길 없는 까마득한 감정에 빠져든 순간 나는 확신한다. 내 인생은 이제 끝이라고.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나는 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신체적, 감정적 변화가 바로 '불안 증상'이라는 것을. 나는 얼른 몸과 마음을 추스르려 노력한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조명을 켠다.
다행히 나는 '꿀잠' 자는 데는 일가견이 있으므로 괜히 누워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고 다시 잠이 오길 기다린다. 어쩌면 겨우 몇 분간 벌어졌던 일. 그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는 감정 변화로 인해 나는 내 인생이 끝이 났다고 확신까지 하게 된 거였다. 불안의 강력한 힘이다.
한 번씩 몸이 꺼지는 느낌이 온다. 그렇더라도 나는 나를 불안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서 불안 증상이 심하거나 쉴 새 없이 불안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내가 밤에 맞닥뜨린 그 몇 분의 새까만 어둠이 누군가에겐 일상이라면 그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불안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를 읽어나갔다.
책의 저자 스콧 스토셀은 두 살부터 불안 장애를 겪는다. 열 살에 처음으로 정신과 치료를 시작했으며 아내,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지금까지 각종 치료를 곁에 달고 산다. 그가 지금껏 받은 치료는 개인 상담, 집단 치료, 인지 행동 치료 등 15가지가 넘고, 그가 지금껏 복용한 약은 소라진, 이미프라민, 데시프라민, 프로작 외 24개나 된다. 잠깐 효과를 본 경우는 있지만 장기 효과가 있던 치료법은 아직까지 없다. 그의 불안 증상은 내가 가끔 침대 위에서 겪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데이트 약속을 해놓고 못 나가고, 시험장에서 나가버리고, 취업 면접을 보다가, 비행기를 타고 가는 중에, 기차 여행 중에, 자동차 여행 중에, 그냥 거리를 걷는 도중에도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리곤 했다. 평범한 날 일상적인 일을 하다가도 (책을 읽거나 침대에 눕거나 전화 통화를 하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테니스를 치는 도중에) 갑자기 존재에 대한 공포가 덮쳐오며 구토, 현기증, 떨림 등 여러 신체 증상이 세트로 나타난 일이 수천 번은 있었다. 이런 순간에는 죽음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한 것이 눈앞에 있다는 확신이 든다."저자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안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그렇다면 불안이란 무엇인가. "불안은 앞날의 고통에 대한 걱정, 곧 막을 수 없고 참을 수 없는 참사를 두려운 마음으로 예상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미래를 예상하기 때문에 불안해한다. 과거에 비해 불안을 잠재우는 치료법이 발전하고 있는데도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더 느는 건, 우리가 예상한 미래에서 희망을 보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자 스콧 스토셀은 책이 끝날 때까지 불안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가 불안에 관한 이 두꺼운 책에서 하고자 한 말은 분명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불안은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 그러니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는 이 조건과 함께 살아갈 뿐이다.
우리에겐 불안해하면서도 살아갈 능력이 있으니까. 단지 살아가는 것뿐 아니라 불안한 사람 특유의 꼼꼼하고 예민한 기질을 잘 발휘하면 꽤 많은 성취를 이룰 수도 있다. 불안 장애 최고봉에 위치한 저자 본인이 불안을 극복하며 이 책을 써냈듯.
불안했던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오면, 나는 어제처럼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농담을 한다. 그러고는 언제나처럼 불안하면 불안한대로 살아가면 그만이라는 내 태도를 다시 정면에 세운다. 불안에서 도망치는 삶이라 하여 불안하지 않을 리는 없을 테니까.
덧붙이는 글 |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스콧 스토셀/ 반비 / 2015년 09월 07일 /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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