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저울에달아 본다"- 디카시 <낡은 구두>오늘 갑자기 구두가 해어졌다. 1년 정도 신은 구두가 실밥이 터져 수명을 다한 것 같았다. 버리나 어쩌나 하다 학교에서 구두 수선하는 노인이 생각났다. 폐기 처분해야 될 것 같았지만 구두에게 한번 기회를 줘 보기로 했다.
구두 수선하는 노인의 얼굴은 장인의 그것이다. '구두 수선의 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구두를 고칠 수 있겠느냐고 하니, 가능하다고 한다. 다시 구두는 재생의 기회를 맞았다. 학교에서 말없이 매일 나와 묵묵히 구두 수선을 하는 모습을 보며 장인이란 저런 분을 두고 하는 말일 거라 생각했다.
아마 평생을 구두 수선공으로 살아 오신 듯했다. 구두 수선공은 가장 밑바닥에서 일하는 분이다. 실상은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다.
이상하게 노인의 얼굴을 보면 무한한 믿음과 신뢰가 간다. 평생을 어떻게 살아 왔는지 환히 보인다. 고향 고성에도 몇 번 구두를 고쳐 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그런 신뢰를 느낄 수가 없었다. 몇 번 구두를 수선했지만 그것뿐이었다. 더 이상 그 구두를 제대로 사용하지는 못했다. 한두 번 신다가 괜히 수선을 했다는 후회를 불러왔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성의 수선공은 우선 말이 많았다. 이 구두는 굉장히 좋은 거라고 하며, 과도하게 굽뿐만 아니라 밑창도 갈게 유도했다. 물론 성실하게 일하는 분이라고 생각해 보지만 장인이라는 느낌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럴까. 중국 정주에서 만난 구두 수선공 노인 분은 얼굴을 보자마자 '아, 장인이시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무한 신뢰를 느끼게 해주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중국 정주의 구두 수선공 노인수선이 가능하냐고 물을 때 그냥 커이(可以), 가능하다고 한 마디만 했는데도 그 말을 들으니 아, 고치면 되는가 보다는 믿음이 생겼다. 구두 밑창도 보완하자고 해서 역시 그래 주시라고 했다. 구두 굽도 통째로 갈지 않고 조금 덧대어 주었다.
수선비를 물으니, 20위안이라 해서 두 말 않고 드렸다. 중국에는 값을 깎아달라 하기도 하지만 그런 마음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그 분의 말이니 그 가격이겠거니 하는 마음이 들었다. 수선한 구두가 너무 마음에 들어 즐겁게 신고 다닐 듯하다. 아마, 장인의 손길이 닿았기 때문이리라.
덧붙이는 글 | 지난해 3월 1일부터 중국 정주에 거주하며 디카시로 중국 대륙의 풍물들을 포착하고, 그 느낌을 사진 이미지와 함께 산문으로 풀어낸다.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감흥)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공감을 나누는 것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