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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미국 대통령.
ⓒ 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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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 귀하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민국 강원도 산골에 사는 전직 훈장 출신 박도입니다. 뒤늦게나마 당신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합니다. 이제 곧 당신이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하신다니 솔직히 기대 반, 염려 반입니다.

그 기대는 당신의 방문으로 한미관계뿐 아니라, 북미관계가 개선돼 한반도에 평화가 오리라는 희망에 근거합니다. 또 다른 염려는 당신의 방문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에 전운이 더욱 짙게 몰려올까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현재 한국을 떠나 당신이 거주하고 있는 워싱턴D.C. 백악관과 그리 멀지 않는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의 한 숙소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왜 이곳에 머무느냐고요?

저는 다음 세대에 결코 동족끼리 전쟁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현대사, 특히 불행했던 한국전쟁의 진실을 후세에 알려주고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그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오늘도 이곳 NARA 2층, 5층 자료실에서 남북한 동족끼리 서로 '괴뢰'라고 부르면서 한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처럼 총부리를 겨누었던 장면과 그 처참했던 시신들의 사진을 무수히 보고 있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으로서 짐승 보기 부끄러운 장면들입니다. 어느 짐승들이 이처럼 처절하게 싸움질을 하고, 수십년간 적대관계로 지냅니까?

1945년 연합국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으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마침내 독립했습니다. 1910년 일본은 한반도를 강점한 이래 참으로 잔인했습니다. 일본은 식민지 종주국으로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도록 악랄했습니다. 그들은 한국인들의 성(姓)씨를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말과 글도 쓰지 못하게 하는 등의 시책으로, 한국인들을 무척 괴롭혔습니다.

다행히 연합국(주로 미국과 러시아)의 도움으로 한국은 해방을 맞았습니다. 한국인은 해방의 기쁨에 덩실덩실 춤을 췄지만, 그 기쁨도 미처 가시기 전에 나라는 둘로 쪼개져 있었습니다. 곧,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 북위 38도 선을 기준으로 전체 한국인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South Korea'와 'North Korea'로 당신들의 판도를 만들었습니다.

나는 해방둥이로 그런 사실조차도 모르고 자라다가 1950년 한국전쟁을 맞았습니다. 그때 동족들끼리 서로 다른 외제 무기로 불구대천 원수로 싸우다가 죽어가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한 마을에서, 심지어 한 집안, 한 형제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편이 돼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 원인은 우리 내부에 있는 게 아니라 강대국들의 서로 자기네 판도를 넓히기 위한 팽창주의 결과로 빚어진 것을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런 장면들이 우연히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있다는 것을 알고, 올해 네 번째로 방문하여 검색·수집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음 세대에게 결코 동족상쟁만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사실 남과 북의 백성들은 그렇게 처절하게 싸워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남의 나라 무기인 미제 소련제로 말입니다.

 워싱턴 기념탑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리기 위한 기념탑으로, 169미터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조 건축물이다. 워싱턴 DC에서는 어디서나 이 기념탑을 바라볼 수 있도록 높은 건물을 세우지 못하게 조례를 정해 놓을 만큼 이 기념탑에 대한 미국인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워싱턴 기념탑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리기 위한 기념탑으로, 169미터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조 건축물이다. 워싱턴 DC에서는 어디서나 이 기념탑을 바라볼 수 있도록 높은 건물을 세우지 못하게 조례를 정해 놓을 만큼 이 기념탑에 대한 미국인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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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산만은 결코 물려줄 수 없습니다

역사의 정의로 볼 때 한국은 분단돼야 할 그 어떤 이유가 없습니다. 한국은 결코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역사상 다른 나라를 한 번도 침략해 보지 못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으로 공격한(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을 제쳐두고, 왜 한국이 전후 제물로 분단돼야 합니까.

그런 역사적 사실은 트럼프 당신이 태어나기 이전에 발생한 것이기에 그 책임을 묻고 말한 제가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현재 미국 대통령으로, 지금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킬 수도 있고, 이제까지 적대관계의 북미관계도 능히 개선시킬 수도 있기에, 한국의 한 시민으로 간절히 호소 드립니다.

저의 고교 시절 한 고약한 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따금 수업시간에 눈 밖에 난 학생을 복수로 불러낸 다음 서로 뺨을 때리게 하는 악랄한 벌을 줬습니다. 처음 두 학생은 교사의 지시에 거부하며 상대 친구의 뺨을 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교사는 한 학생 뺨을 세게 때린 다음, 상대 학생에게 그렇게 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명령에 마지못해 한 친구가 슬쩍 상대의 뺨을 슬쩍 차니까 그 교사는 "너희들 장난하니!"라고 고함치며 더 세게 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두 친구의 상대 뺨 때리기는 서로가 기진맥진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두 친구가 코피가 터지고 지쳐 쓰러지자 그제야 벌이 끝났습니다.

저는 이곳 NARA에서 한국전쟁 전후의 끔찍한 학살장면이나 참상을 볼 때마다 그 악랄했던,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전수받은 그 교사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교사의 체벌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남북의 한국인들은 7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그런 악몽과 같은 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 백성들이 동족끼리 서로 '괴뢰'라고 부르며, 그렇게 무자비하게 싸웠으며, 아직도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습니까. 동병상련(同病相憐)이 아니라 동병상쟁(同病相爭)으로 세상에서 가장 바보짓을 하고 있습니다. 이 유산만은 다음 세대에게 결코 물려줄 수 없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대통령 관저 백악관(White House). 제2대 대통령인 애덤스부터 현 대통령인 트럼프까지 2백여 년간 대통령의 관저이자 집무실이다.
 대통령 관저 백악관(White House). 제2대 대통령인 애덤스부터 현 대통령인 트럼프까지 2백여 년간 대통령의 관저이자 집무실이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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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국인 숙어에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곧 매듭을 맺은 자가 풀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문명 세상에 아직도 한국인들은 휴전선에다가 철조망을 이중삼중으로 치고는 동족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습니다. 이 무슨 꼴불견입니까?

저는 이번 방미 길에 경비를 절감하고자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날아온 뒤 3시간을 머문 다음, 다른 비행기로 5시간 남짓 날아간 뒤에야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정말 미국은 땅덩어리가 엄청 큰 나라더군요.

이런 거대한 미국이 당신 나라 한 주의 절반도 안 되는 조그마한 북한과 유치한 말장난으로 맞상대를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제부터 미국은 대국답게 쪼잔하게 노시지 마시고 체신머리를 지키면서, 앞으로는 남과 북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고 덕담을 한 다음, 휴전선 철책을 걷는 일에 앞장서 주십시오.

또 하나, 미국은 예전처럼 한국에 '병 주고 약 주는 척' 무기장사를 그만 하십시오. 대국이면 대국답게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트럼프 대통령 당신이 큰 선물을 주고 떠나기를 고대합니다. 귀하가 만일 그런 일을 한다면 8000만 한국인은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한반도의 허리를 자르는 단장의 휴전선 철책
 한반도의 허리를 자르는 단장의 휴전선 철책
ⓒ 엄상빈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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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10. 진주, 학살 현장. 가해자에 대한 기록은 없고, 피해자의 시신만 암매장돼 있다. 동족을 총으로, 죽창으로 학살한 것은 분명하다.
 1950. 10. 진주, 학살 현장. 가해자에 대한 기록은 없고, 피해자의 시신만 암매장돼 있다. 동족을 총으로, 죽창으로 학살한 것은 분명하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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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9. 29. 대전, 동족끼리 피의 보복으로 암매장된 시신들. 가해 해머가 암매장 현장에 남아있다.
 1950. 9. 29. 대전, 동족끼리 피의 보복으로 암매장된 시신들. 가해 해머가 암매장 현장에 남아있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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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습니다

전직 훈장답게 이솝우화 한 토막을 들려드립니다.

아득한 옛날 사자가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한 생쥐가 겁도 없이 촐랑이며 뛰어 다나다가 그만 사자의 콧수염을 건드렸습니다. 그 바람에 단잠에서 깬 사자는 앞발로 생쥐를 밟았습니다. 그러자 생쥐는 앞 두 발로 빌면서 말했습니다.

"사자님! 정말 잘못했습니다. 저를 살려만 주신다면 이후에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뭐! 네가 은혜를 갚는다고? 웃기는군."
"사자님! 만일 그런 기회가 온다면 꼭 갚겠습니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사자는 생쥐의 말에 코웃음을 치다가 서생(鼠生)이 불쌍해 발을 들어 살려줬습니다.

그 뒤 어느 날 사자는 포수가 쳐놓은 그물에 걸려 들었습니다. 사자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물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사자가 발버둥을 칠수록 그물은 그를 더욱 조였습니다. 사자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그만 굶어죽을 처지에 놓였습니다.

사자는 살려달라고 고함을 쳤지만 그 어느 짐승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다른 짐승들은 오히려 사자가 자기 가족들을 잡아먹더니 아주 고소하다고 놀리기까지도 했지요. 사자는 그제야 그동안 많은 짐승들을 괴롭힌 것을 후회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때 사자의 귀에 그물을 갉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자가 소리 나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니까 생쥐 한 마리가 자기를 옭아맨 그물을 갉고 있었습니다. 곧 그물은 끊어졌고, 드디어 사자는 그 생쥐 덕분으로 그물에서 벗어났습니다.

"생쥐야! 정말 고맙다. 네가 나를 살려주었구나!"
"언젠가 사자님은 저를 살려주셨잖아요."

생쥐는 그 말만 남긴 채 사라졌습니다. 

 미국 국회의사당
 미국 국회의사당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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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습니다. 사자와 같은 맹수도 몸에 붙은 진드기에게 목숨을 잃고,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우리나라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나게 된 발단은 고등학생의 시위였습니다.

또 이 세상에 '내 것'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이 세상의 재화를 잠시 빌려 쓸 뿐입니다. 한 예로 지금의 미국 땅도 남(인디언)의 것이었으며, 내 육신조차도 언젠가는 모두 사라지고 맙니다. 흥망성쇠와 부귀빈천은 물레바퀴처럼 돈다고 합니다.

저는 사형수가 대통령이 되고, 사형수를 만든 대통령이 사형수가 된 걸 본 적도 있습니다. 돌고 도는 게 세상사이기도 합니다. 지난날 거대한 로마제국도, 중국의 진나라도 멸망했습니다. 힘을 가졌을 때, 능력이 있을 때 은혜를 베푸는 게 현명합니다.

사자가 생쥐에게 은혜를 베풀 듯 미국이 한국인에게 그와 비슷한 일은 한다면, 훗날 미국이 곤경에 처할 때 한국인 후손들은 잊지 않고 미국을 적극 도울 것입니다.

  링컨기념관.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기념관으로 건물 내부 벽면에는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문인 "The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란 말이 새겨져 있다.
 링컨기념관.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기념관으로 건물 내부 벽면에는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문인 "The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란 말이 새겨져 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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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많지만, 방문에 앞서 사연이 너무 길면 결례이기에 이만 줄입니다. 귀하의 현명한 처신을 고대합니다. 귀하가 에이브러햄 링컨처럼 역사에 남는 미국 대통령이 되길 바랍니다. 제발 한국인의 허리를 졸라맨 단장의, 원한의, 분단 철책을 풀어주는 데 앞장서십시오.

이번 방문에 그렇게 선언한다면 평화주의자로 세계인의 존경을 듬뿍 받을 것입니다. 2018년 노벨평화상은 그대에게 돌아가지 않을까요? 제발 저의 호소를 외면치 마십시오.

2017년 10월 27일
메릴랜드 칼리지파크에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박도 드림.

 가을빛이 짙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2017.10. 25.
 가을빛이 짙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2017.10. 25.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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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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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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