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다큐감독 박문칠의 '사드반대 성주 주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파란나비>의 스틸컷.
 다큐감독 박문칠의 '사드반대 성주 주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파란나비>의 스틸컷.
ⓒ 박문칠

관련사진보기


대구시가 주최하는 미술전시회를 앞두고 일부 작품의 사회문제에 대한 표현을 문제 삼아 수정하거나 교체 또는 제외할 것 등을 요구해 사전 검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작가들은 전시회를 앞두고 사전검열에 반대한다며 전시회 보이콧을 선언했다.

대구광역시가 주최하고 (사)한국미술협회 대구광역시지회(대구미협)가 주관하는 청년미술프로젝트(YAP, Young Artist Project)가 오는 11월 8일부터 12일까지 대구 엑스코에서 대구아트페어와 연계행사로 진행될 예정이다.

'청년미술프로젝트 YAP'은 '내 침대로부터의 혁명(a revolution from my bed)'이라는 제목으로 사회적 예술을 통해 세계가 당면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에서 나타나는 물적, 심리적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시회 참여 작가들과 행사주최인 '대구아트스퀘어조직위' 등에 따르면, 지난 13일 열린 회의에서 박문칠 다큐멘터리 작가의 작품 <파란나비>와 <100번째 촛불을 맞은 성주주민께> 두 편이 행사 취지에 어긋난다며 작품 수정이나 교체를 권고 받았다.

이어 열린 실무자회의에서는 또 박 감독의 작품 외에도 윤동희 작가의 작품 <망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세월호'를 언급한 작가의 작품노트도 전시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수정 요구가 있었다.

당시 조직위 회의에는 대구시 관계자와 박병구 대구미협 회장, 안혜령 대구화랑협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대구시가 먼저 박문칠 감독의 작품에 대해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할 경우 대구시가 사드를 반대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조동호 대구미협 사무국장은 "조직위 회의에서 정치적인 작품과 종교적인 작품을 제외한다는 원칙이 있었다"면서 "박문칠 감독의 작품 <파란나비>도 정치적인 내용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작품으로 교체할 수 있도록 권고했을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직위원들이 작품을 다 보고 작가와 큐레이터가 조율하라는 단순 권고였다"면서 "작가가 기분이 나쁘겠지만 다시 논의해 보자는 것이었는데 작가가 바로 보이콧했다. 우리도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청년미술프로젝트 YAP2017'에서 전시제외 작품으로 결정된 윤동희 작가의 작품 <망령>.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을 그리고 있다는 이유로 전시작품에서 제외됐다.
 '청년미술프로젝트 YAP2017'에서 전시제외 작품으로 결정된 윤동희 작가의 작품 <망령>.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을 그리고 있다는 이유로 전시작품에서 제외됐다.
ⓒ 윤동희 작가

관련사진보기


대구시 관계자도 외압이나 사전 검열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양재준 대구시 예술진흥팀장은 31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청년미술프로젝트는 아트페어와 함께 전시하는데 처음부터 종교나 정치적인 내용은 전시에서 빼기로 합의했었다"고 해명했다.

양 팀장은 이어 "대구시는 예산만 지원할 뿐 작품을 빼라마라 한 적이 없다"면서 "민간예술단체에 맡겨 놓았기 때문에 시는 처음부터 관여하지 않았다. 문제가 된다면 추후 여러 생각을 가진 위원들과 함께 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작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대구시와 조직위 사이에 어느 정도 조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큐레이터를 맡았던 이아무개씨는 31일 "조직위 회의가 진행되기 전 <파란나비>가 문제가 될 것 같다는 대구미협의 전화가 왔었다"면서 "영상과 작품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회의 자리에서 작품 설명에 대해 해명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조직위 회의에서 대구미협과 화랑협회 분 10명 중 8명이 상영하면 문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며 "회의가 끝나고 실무회의에서는 윤동희 작가의 작품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은영 작가의 작품노트에 '세월호'가 들어 있어 수정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또 대구시가 조직위의 회의 전에 이미 <파란나비>의 상영에 반대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파란나비> 상영과 관련해 지금까지 영화를 상영하고 상영료를 지급한 예가 없어 협찬으로 하기로 했었다"면서 "이미 감독과 협회에 전달이 된 상황이었는데 3주 전에 시에서 문제를 삼았다. 시가 사드를 반대하는 의미가 있어 곤란하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결국 이씨는 자진 사퇴했다.

<파란나비>를 제작한 박문칠 감독은 "공모 형식으로 신청한 것도 아니고 주최 측에서 연락이 먼저 왔었다"면서 "이미 계약서까지 썼는데 취지에 부합하다며 수정을 요구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 표현의 자유를 억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영화제에까지 출품된 작품을 사전 검열하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느냐"며 "지난 정권의 블랙리스트 사태가 다시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져 씁쓸하다"고 말했다.

윤동희 작가와 이은영 작가도 박문칠 감독과 함께 전시회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들은 "작가의 창작 권한을 무시한 결정"이라며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은영 작가의 작품<바다 우로 밤이 걸어온다>. 이 작품을 설명하는 노트에 '세월호'가 언급됐다며 대구아트페어 조직위가 수정을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작가는 전시를 보이콧했다.
 이은영 작가의 작품<바다 우로 밤이 걸어온다>. 이 작품을 설명하는 노트에 '세월호'가 언급됐다며 대구아트페어 조직위가 수정을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작가는 전시를 보이콧했다.
ⓒ 이은영

관련사진보기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대구경북의 많은 예술인들과 예술단체들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청년미술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대구아트스퀘어와 대구미협은 사전 검열과 부적절한 대응에 대해 공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박문칠 감독의 영상 작품 <파란나비>와 <100번째 촛불을 맞은 성주주민께>는 '사드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이유로 재편집 혹은 작품교체를 통보받았고 윤동희 작가와 이은영 작가의 경우에도 수정을 요구받았다"면서 "해당 작품들은 이미 전시 진행 약정서까지 날인하고 실무적인 준비에 돌입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을 지원받아 대구시가 주최하는 행사에서 정치적 잣대로 예술작품의 교체나 수정을 지시하는 검열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바라는 국민의 염원에 반할 뿐 아니라 예술가의 자유로운 표현을 또 한 번 죽이는 한심한 작태"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구시는 사전검열과 부적절한 대응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며 "청년예술가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청년예술지원사업에 대해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강구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태그:#청년미술프로젝트, #사전검열 의혹, #대구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구주재. 오늘도 의미있고 즐거운 하루를 희망합니다. <오마이뉴스>의 10만인클럽 회원이 되어 주세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