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 <월-E>에서 가장 비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보았다. 노동에서 해방된 인류는 쓰레기더미 지구를 떠나, 모든 것이 제공되는 우주 유람선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삶을 산다. 하나같이 달걀 같은 몸매를 한 배부른 돼지들은 우주선이 흔들리자 어쩔 줄 몰라 한다. 로봇들이 언제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약속하는 미래의 모습이 과연 이것일까?
스탠퍼드 대학교 법정보학센터 교수이자 인공지능학자인 제리 카플란(Jerry Kaplan)이 쓴 <인공지능의 미래>를 통해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살펴보자.
인공지능은 최근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이라는 신기술로 인해 폭발적 발전을 맞고 있다. 기계는 '충분한 사례가 제시되었을 때', 아무런 기초 지식 없이도 전문가 수준의 설명을 할 수 있다.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는 바둑의 오묘한 도를 깨우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수많은 사례를 통해 구축한 알고리즘으로 이세돌의 수에 대응했을 뿐이다. 인공지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인간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안면 인식이나 자연어 처리에서도 괄목상대할 만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인공지능은 어떤 직업을 없앨까
저자는 제6장에서, 인공지능과 관련하여 현재 가장 논란이 되는 문제, 즉 인간 노동의 대체 가능성에 관해서 살펴본다. 사실 지금까지 이 문제는 인공지능, 특히나 일반화를 하는 능력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들 대부분이 특정 전문분야에 국한된 지식과 기술만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그래서 우선 위험한 직종은 전문화, 특히 경제학자들이 '탈숙련화'라고 부르는 개념이 적용되기 쉬운 분야다. 예컨대, 햄버거를 굽거나 회계장부를 분석하는 일은 쉽게 대체될 것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발전은 문제를 한 단계 더 복잡하게 만든다. 즉 인공지능은 자동화가 아닌 영역에서도 생산성을 극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복잡한 패턴을 분석하는 능력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을 압도한다. 암 진단 같은 일 말이다.
퀴즈 쇼 '제퍼디!' 출전을 위해 IBM이 개발했던 인공지능 왓슨(Watson)은 이미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어 암 진단에 활용되고 있다. 인공지능의 종합적 분석 능력에 위협받는 직종에는 의사와 변호사도 포함된다.
또 하나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모듈화'다. 복잡해 보이는 작업도 사실은 자동화가 가능한 여러 개의 작은 작업들로 나누어 진행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복잡해 보이는 직업이라도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 쉽다는 말이다. 결국 경제성 문제로 귀결되는데, 인공지능의 발전은 기계로의 대체 비용을 급격하게 낮출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가장 안전한 직업은 소위 핑크 칼라(pink collar)라고 불리는 직업군이다. 웨이터, 상담사, 간호사 등이 그 예다. 인간적인 교감이 필요한 이 직업군은 기계와 인공지능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대체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수요가 오히려 늘어날 것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말이다.
직업이 없어져도 먹고 살 수는 있을까산업혁명 이후, 사업가들은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람을 로봇처럼 부리려는 테일러주의는 각종 야유와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 사람의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혁신이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저자는 인공지능이 이제 급격한 속도로 실용화될 단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인공지능에 의한 생산 활동의 변혁은 증기 기관이나 전기의 발명과 같이 지각 변동적인 수준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인공지능으로 할 수 있는 일보다는 인공지능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를 묻는 편이 더 간편할지 모른다.' (232)책에는 헨리 포드 2세가 자동차노조 위원장과 나눈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자동화 설비를 도입한 헨리 포드 2세가 노조 위원장에게, '앞으로 이 녀석들에게 어떻게 조합원비를 받아낼 작정이냐'고 묻자, 노조 위원장은 이렇게 되물었다고 한다.
"사장님은 이 녀석들에게 어떻게 차를 팔아먹을 작정이신가요?"헨리 포드가 노동자에게 일당 5달러를 지급하여 수요를 크게 진작시키고, 그로 인해 회사도 살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케인즈 경제학의 모든 것이 유효수요라는 단 한 단어를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노동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된다 하더라도, 수요 유지를 위해 노동계급에게 일정한 소비능력을 제공해줘야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이 생각의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정확히 짚어낸다.
'애석하게도 물건을 소비할 중산층이 꼭 필요하리라는 생각은 근거 없는 믿음에 불과하다. 인구 대다수가 오로지 부유한 사람들만을 위한 프로젝트에 매달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고대 이집트에서 일꾼 수천 명이 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 노동에 수십 년 동안 투입됐듯이 말이다.' (233)최악의 경우, 우리는 기계에 의해 인간 노동이 대체된 미래사회에서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 건설 노동직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좋은 일자리였다고 한다.
기계화된 자본을 소유한 거부들이 재미 삼아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매달려 아이들 분윳값을 벌어야 하는 아니꼬운 처지를, 훨씬 더 많은 숫자의 실업자들이 부러워하는 상황이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인 폴 앨런은 외계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에 3천만 달러를 지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일에 돈을 쓴 것뿐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는 취미 생활을 한 것뿐이다.
그가 그런 '쓸데 없는' 프로젝트에 많은 돈을 썼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된 이유는 그가 그 사실을 알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마음만 먹는다면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 하는 일에 돈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부자들이 대중의 눈에 띄지 않고 각자 내키는 대로 돈을 쓸 수 있는 한, (중략) 일반 대중들이 유복한 극소수 계층이 원하는 사치품을 만들기 위해 일하는 세상은 소름 끼칠 정도로 실제적이고 실현 가능하다.'(235)잠깐 정리해보자. 인공지능의 도래로 인해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다. 더구나 수요 진작을 위해 탄탄한 중산층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와 같이, 극소수의 소비에 전 인구가 의존하는 경제는 얼마든지 실현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암울한 미래뿐인가?
결국, 문제 해결의 열쇠는 제도화에 있다. 사유 재산은 자유권의 문제라는 것이 현 발전 단계에서 인류의 합의다. 사회가 제도를 통해 개입하지 않는 한, 자본가가 잉여 가치를 자동화 설비에 재투자하는 것을 막을 방법도 근거도 없다. 방치되면, 빈부 격차는 상상 밖의 영역으로 내달릴 것이다.
저자는 이미 분배가 끝난 자산을 빼앗아 사회적으로 재분배하는 일보다 훨씬 쉬운 해법이 있다고 설명한다. 미래에 창출할 자산을 나누는 것이다. 미국의 전체 자산은 지난 40년간 두 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부의 증가속도는 충분히 빠른데, 인공지능 덕분에 미래에는 더 빨라질 것이다. 따라서 굳이 재분배라는 어려운 과제에 매달리지 말고, 미래의 자산을 활용해서 불평등을 완화시켜보자는 것이 저자의 제안이다.
저자가 예시하는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아이가 태어나면 국가에서 일정한 금액을 계좌에 넣어준다. 이 계좌는 정부가 지정한 투자 전문가에 의해 관리되며, 중도 인출은 학자금 등의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아이가 20세가 되면 정부는 처음에 지급했던 투자금을 회수한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20년간의 투자로 발생한 이익금이 남게 된다. 이는 사회초년생들의 출발선 불평등을 크게 완화시킬 것이다. 더구나 이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대할 만큼 핵심 이익이 침해당하는 계층도 없을 것이다.
제리 카플란의 <인공지능의 미래>는 소개한 내용 외에도 무엇이 인공지능인가, 인공지능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법 주체가 될 수 있을까와 같은 흥미진진한 문제를 다각도에서 살펴보고 있다. 더구나 풍부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다양한 가상의 사례를 통해 생각해 볼 문제를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 보게 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인사말처럼 쓰이는 요즘,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