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10월 MBC 시사 고발 프로그램 <PD수첩>엔 현역 해군 장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김영수 당시 소령(현 국방권익연구소 소장)이 주인공이었다.
김 소장은 진행을 맡았던 최승호 PD(현 <뉴스타파>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놀라운 내용을 폭로했다. "2003~2005년 계룡대 근무지원단에서 일어난 만성적인 비공개 수의계약 입찰로 9억4000만 원의 국민 혈세가 낭비됐다. 이 과정에서 국가계약법상의 공개경쟁 입찰규정을 피하고자 소액으로 여러 차례 나눠서 계약하는 분할 수의 계약이 횡행하고 위조견적서를 사용하는 등 불법, 탈법들이 자행됐다"는 게 폭로의 뼈대였다. 한편 김 소장의 폭로를 전한 <PD수첩>은 "군 당국이 군납 비리 의혹을 은폐하려 한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김 소장의 양심 고백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국방부는 군 납품비리의혹 특별조사단을 꾸려 재수사에 나섰다. 그리고 한 달만인 11월 해군 간부 4명을 구속기소 했다.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은 그의 폭로가 도화선이 돼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PD수첩> 제보 이후 상부는 김 소장을 그야말로 '눈엣가시'로 여겼다. 군 당국은 곧장 국군체육부대로 전출시켰고, 결국 2011년 6월 전역했다. 전역 이후에도 그에 대한 고소·고발은 이어져 일부 해군 예비역 장교들이 그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이에 대해 서울남부지검은 지난 10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는 전역 후 국민권익위원회에 국방 분야 조사관으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1월 국방권익연구소를 개설하고, 방산비리 고발 및 공익제보 활성화를 위한 정책 제안 등을 내놓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심경을 들어 보았다.
-.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어떤 심경인가?"당연한 결과다. 어차피 사건의 실체가 명백하니까.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 문제가 '다른 데 있다'는 말의 의미는?"이 점, 혹시 궁금하지 않은가? 당시 사건의 실체가 어떠했고, 누가 개입했고, 그 사람들이 현재 어느 위치에 있는지? 당시 수사에서도 사건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나지 않았다. 내가 문제를 제기하고 당국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사건이 은폐되고 축소됐다.
해당 사건을 들여다보면 아주 많은 사람이 관련돼 있다. 비슷한 다른 사건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최근 국가정보원(국정원)의 적폐청산 작업이 한창이다. 국방부에서도 적폐청산위원회가 존재한다. 정말로 의지가 있다면 이 위원회가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사건의 실체가 어떠했고, 어떻게 축소, 은폐됐는지, 왜 끝까지 들추지 못했는지 말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닌가? 그런데 아직 국방부가 이런 일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 무혐의 처분을 받은 직후인 지난 1일 페이스북에 "비겁하게 살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직선으로만 덤비지는 않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적었다. 무슨 뜻인가?"일단 여러 시민단체에서 공익제보자 구제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순수하고 참 가슴이 따스하다. 그러나 공익제보, 그리고 제보자들을 보호하는 일엔 냉정함이 필요하다. 가슴으로만 싸우면 권력, 조직, 그리고 돈을 가진 사람들에게 진다. 당연하지 않은가? 상대는 강하다. 그렇다면 나는 더 강하게 싸워야 한다.
최근 이런저런 강연을 많이 하게 되는데, 재산이 많거나, 생존에 문제가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섣불리 공익제보를 하지 말라고 권한다. 또 "비리를 목격했다고 해서 보는 대로 드러내지 마라, 고민하고 상담하라, 혼자 싸우지도, 직관적으로 싸우지 마라"고도 조언한다.
내가 이렇게 싸웠다. 그래서 많은 걸 잃었고, 상처도 깊다. 만약 내가 처음 제보에 나선 당시에 지금 정도의 노하우를 축적했다면 이런 식으로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제보는 하되 무모하게는 안 한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공익제보자가 뭘 잘못했을까?
-. 공익제보자들은 조직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기 일쑤다. 그런데 군 조직의 특성상 불이익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수준을 뛰어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공익제보자들끼리 만나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자리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여기서 제보자들은 자신이 어떻게 고통을 당했고, 지금도 당하고 있다고 살짝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해보자. 이들이 무얼 그렇게 잘못했는가?
공직자의 경우를 보라.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56조는 "공직자는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다른 공직자가 부패행위를 한 사실을 알게 되었거나 부패행위를 강요 또는 제의받은 경우에는 지체 없이 이를 수사기관·감사원 또는 위원회에 신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공직자가 직접 비리에 연루되지 않았어도 조직 내 비리를 인지했을 경우 반드시 이를 신고하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법은 이렇게 만들어 놓고, 법대로 (공익제보를) 했는데, 왜 제보자가 고통을 당해야 하나? 고통당해야 하는 쪽은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이어야 하지 않나?
내가 그간 어떤 불이익을 받았는지는 더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공익제보자들이 고통을 당하는 걸 굉장히 당연시하는데, 이런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 공익제보 활성화를 위한 정책 조언을 활발하게 내놓은 것으로 안다. 조언의 핵심 뼈대에 관해 설명해 달라
"조직 내에 뿌리 깊게 박힌 적폐를 밖에서 알 수 있을까? 내부자의 도움 없이는 알 수 없다. 그런데도 공익제보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푸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공익제보자를 정당하게 대우해줘서, 이들이 잘 사는 걸 보여주면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따라나선다.
경찰, 검찰, 국세청, 국정원 등 권력기관에서 공익제보자가 나온 경우가 있었던가? 검사가 조직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나선 걸 본 적 있는가? 이 사람들이라고 조직의 문제점을 못 느꼈을까? 아니다. 이 사람들은 머리 회전이 빨라 공익제보 하면 다친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못하는 거다. 정말 힘 있고 고급 정보 접근이 용이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제보하면 조직이 확 바뀔 텐데 말이다. 그러니 역으로 공익제보 하면 잘 된다는 걸 보여주면 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따져보자. 최근 시민단체별로 공익제보자 구제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이를 한데 모아 공익신고 통합지원센터를 만들고, 공익제보가 들어오면 사실 분석, 제보자 보호·보상 등의 프로세스를 주도적으로 진행해 볼 것을 제안한다.
특히 공익제보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제보자는 아마추어다. 그러나 이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아마추어여서는 안 된다. 만약에 군 관련 사건이 접수되면 나 같이 그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교육 등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사실 공익제보자 보호는 국가가 할 일이다. 현행법상 국민권익위원회가 주무부처인데 이곳마저 전문성이 결여돼 있다는 판단이다. 한 예로 방산비리를 제보했는데, 담당자들이 관련 용어를 이해 못한다. 그래서 제보자가 담당 조사관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야 한다."
* 이와 관련, 김 소장은 지난 8월 '반부패, 청렴 정책 및 제도개선 제안서'를 내놓았다. 이 중 주요 내용 몇 가지를 추려본다. □ 현 정부 국정과제인 반부패·청렴정책을 주요 정책으로 반영 □ 반부패, 청렴 정책을 주관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실의 조직 및 업무역량을 강화하고, 관련 □ 정부조직 및 시민단체와 협업체계 구축 □ 공익제보사건을 전담하는 독립적인 기관(청렴위원회)을 신설, 현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국을 대통령 직속 독립기관으로 분리 □ 공공기관, 지자체 감사실의 인사, 업무의 독립성 강화 -. 끝으로 본인의 제보가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왔다고 보는가?"그렇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상시적이고 제도적으로 공익제보를 뒷받침해야 한다.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다. 시기가 무르익었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다. 시민단체의 선의로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보호·보상 체계 만들어 공익신고를 장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현 정부에 기대가 높고, 그래서 다양한 제안도 내놓는다.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100대 국정과제 중 '반부패 개혁으로 청렴한국 실현'을 두 번째로 올려놓았다. 이제 그 의지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