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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벽돌집과 잘 어울리는 감나무.
붉은 벽돌집과 잘 어울리는 감나무. ⓒ 김종성

아파트와 빌딩숲의 도시 서울 속에 살다보면 오고가는 계절을 잊고 살기 십상이다. 도시인들에게 삶의 속도가 유난히 빠르게 느껴지는 건 사계절의 정취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더구나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 좋은 봄과 가을은 점점 짧아져만 간다.

몇 년 전 지금 사는 동네(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이사 올 때만 해도 그동안 살았던 여느 동네와 뭐 다를 게 있을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서울이나 수도권, 지방도 마찬가지로 한국의 도시들은 어디에 있어도 비슷비슷하게 느껴져서다.  그러던 것이 이맘 때 늦가을이 되면 평범했던 동네는 내 선입견을 비웃기나 하듯이 만추의 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삭막한 전봇대를 품은 감나무.
삭막한 전봇대를 품은 감나무. ⓒ 김종성

나무는 늘 곁에 있지만 눈여겨보지 않으면 의식하지 못하는 존재지만 11월의 감나무는 예외다. 주홍빛 예쁜 색깔에 아이들 주먹처럼 동글동글하게 생긴 귀여운 감들이 온 동네 담 자락에 주렁주렁 매달려 거리를 환하게 비춘다.

이렇게 알이 작고 많이 달리는 감나무를 돌감나무라고 한단다. 어떤 감들은 전봇대를 둘러싸서 건조하고 삭막한 분위기를 바꾸었다. 감나무는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의 문턱 11월을 덜 쓸쓸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열매가 작은 전등처럼 동글동글한 돌감나무.
열매가 작은 전등처럼 동글동글한 돌감나무. ⓒ 김종성

아파트에 점령당한 서울에선 보기 힘든 감들이 집 담장위로 열린 것을 보기만 해도 푸근한 기분이 든다. 감나무를 심어 놓은 소규모 공동주택과 일반주택들 앞 작은 공간의 여유가 무척 크게 느껴졌다. 팍팍한 도시 살이 속에서 동네 사람들 표정이 조금은 밝아 보이는 것은 아마도 바알갛게 빛나는 감들 덕분이지 싶다.

아파트에 사는 나로서는 이맘때 마당이 있는 주택이 부럽기만 하다. 보기도 좋고 맛난 과일까지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정원수 감나무를 심을 수 있어서다. 감나무는 호기심이 많은 나무다. 담장너머 이웃집이나 담장 밖까지 감이 달린 가지를 길게 늘어트린다. 그런 집 앞을 지나가다보면 탐스럽게 열린 감 한 개 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는다.  

 새들을 위해 남겨놓은 감.
새들을 위해 남겨놓은 감. ⓒ 김종성

 맛있게 감을 쪼아먹고 있는 새들.
맛있게 감을 쪼아먹고 있는 새들. ⓒ 김종성

감나무 사진을 찍다가 집주인 아저씨나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사람이 떠난 빈집 감나무엔 감이 열리지 않거나 열려도 맛이 없다는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주셨다. 따서 말려 놓고 있었던 감 몇 개를 먹어보라고 자랑스레 건네 주시기도 했다.

작은 등처럼 나뭇가지 가득 감이 매달린 감나무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성해진다. 감이 한두 개 달랑 매달린 감나무 모습도 특별하다. 까치밥이라 하여 새들을 위해 감을 남겨놓은 배려심이 느껴져서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잎을 다 떨군 가지에 주렁주렁 안겨 있는 주홍빛 감들은 아름다운 노을을 연상하게 한다. 주홍색을 1,2위로 좋아하게 된 건 아마 이런 풍경 때문 아니었나 싶다.

사진도 찍으며 감나무를 한참 올려다보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귀여운 참새들이 날아왔다.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는 까마귀도 감을 쪼아 먹으려 찾아온단다. 동네 뒷산인 백련산에 사는 새들이 찾아오나보다. 새들이 감을 먹는 진귀한 장면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다니, "대~박" 이란 표현이 절로 터져 나왔다. '감이 참 달다'는 듯 참새들이 소리 높여 지저귀었다. 풍요로운 열매를 맺어 짐승이나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감나무, 옛 선조들의 말마따나 '어머니 나무'라 할만 했다.

 동네를 밝혀주는 전등같은 감.
동네를 밝혀주는 전등같은 감. ⓒ 김종성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sunnyk21.blog.me)에도 송고했습니다.



#감나무#돌감나무#늦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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