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 한 명의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017년 여름, 네팔 출신 미디어 활동가의 페이스북에는 며칠 간격으로 같은 글이 올라왔다. 대구의 한 이불공장에서, 경산의 한 재활용 처리 업체에서, 충주에서, 화성에서, 그리고 저 멀리 제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주노동자 소식이었다.
같은 국가 출신 이주자들의 연이은 자살 소식에 네팔 공동체는 술렁거렸고, 대사관은 노동자들을 위한 요가와 명상 수업, 현장 순회교육을 기획하며 급하게 자살 방지 대책을 모색했다. 이주민 지원단체는 자살한 노동자들의 사연과 유서 공개를 통해 고용허가제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음을 성토했다. 하지만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것도 잠시,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으로 보이는 '자살'은, 대통령도 유명 연예인도 아닌 '이주노동자'의 자살은 쉽게 잊혔다.
"죽음은 삶을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자살은 비단 최근 몇 년 간의 현상이 아니다. 돌이켜 보면 2003년 8월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통과시킨 후, 그 해 11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강제추방이 시작됨과 동시에 죽음의 행렬이 이어졌다.
단속 추방의 공포와 스트레스 속에서 한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가 지하철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고, 연이어 방글라데시,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었다(참고 : 오마이뉴스, "더 이상 죽이지마! 강제 추방은 인간사냥"). 한국에서 견뎌야 하는 고통스러운 현실도, 본국으로 돌아가면 마주하게 될 또 다른 현실도, 그 어느 곳도 희망을 기대할 수 없었던 이주노동자들. 이들의 자살은, 새로운 제도 고용허가제가 시작됐지만 끊이지 않았다.
2004년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중국 출신 노동자가 "집에 가고 싶은데, 사장이 임금을 주지 않는다. 오직 죽을 수밖에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고(참고 : 한겨레, "지하철 자살 중국노동자 "체불조사" 보름 넘게 미적), 이후에도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 네팔 출신 연수생 등 이주노동자들의 자살은 계속 이어졌다(참고 : 오마이뉴스, "고용허가제 1년…이주노동자는 여전히 죽어간다"). 네팔 노동자들의 경우,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이 시작된 2008년 이후 자살률이 더욱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마치 중국의 폭스콘 노동자들이 "죽음은 우리가 살아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우리에겐 절망뿐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이다"(참고 : 엔드루 로스 <엑소시스트와 기계>)라고 이야기 했듯이,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한국의 이주노동자들 또한 자신들이 처한 절망적 현실을 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올해 8월, 한 네팔 노동자가 "우리는 더 이상 한국의 고용허가제도가 외국인노동자들을 구속하는 제도가 아니기를 바란다"는 말을 유서에 남겼듯이 말이다(참고: 오마이뉴스, "이주노동자 자살 급증, 무엇이 문제인가?").
고용허가제, '신속하게' 쓰고 버려지는 노동자들프랑코 베라르디는 <죽음의 스펙터클>이라는 저서에서 자살은 더 이상 정신병리학의 주변적 현상이 아니라, 현재의 역사를 바라보는 결정적 관점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주노동자들의 계속되는 자살은 한국의 이주노동제도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더욱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2004년에 시행된 고용허가제는 신자유주의가 지향하는 값싸고 유연한 노동력의 국제적 이동을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목적을 둔 임시노동 이주정책의 한국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저임금 이주노동자들의 가족 동반, 장기체류,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러한 임시노동 이주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해 오고 있다. 그 중 고용허가제는 2011년 UN이 수여하는 공공행정상 대상을 받을 만큼 임시이주 노동정책의 세계적인 모델로 인정을 받아왔다.
즉, 사설 에이전시와 브로커들의 개입을 배제하고 국가간 협정을 통해 이주의 출발부터 귀환까지 정부가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측면이 높이 평가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투명하고 효율적인' 과정을 거쳐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것일까?
임시이주 노동정책이 근원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체류의 '임시성'은 이주자들을 '노동력'으로만 볼 뿐, 이들이 도착한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삶을 사는 것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 하에서 정부 기관이 관장하는 투명하고 효율적인 이주 과정은, 바로 이러한 노동력으로서의 관리인 것이다.
고용허가제는 한국어 시험을 통해 노동시장이 요구하는 '적절한 노동자'들을 선발하고, 출국 전 사전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예비 이주자들은 사전 교육과 시험을 통해서 사업장 내에서 위계질서에 복종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고, 고용허가제의 규칙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렇게 사업주와 한국 정부가 원하는 모습의 '외국인 노동자'로 만들어지지만, 인권이나 노동권을 배울 기회는 적다. 이들이 한국에 도착하여 2박 3일의 취업 교육을 마치고 나면, 양국 노동부를 통해 계약을 맺은 사업주의 인솔 아래 공장이나 농장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다.
여기서부터는 사업주의 관리가 시작된다. 이 때, 대부분은 사업주가 정해준 숙소에서 생활을 하고, 이동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다. 고용허가제의 조항들은 사업주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해,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옮기는 데 제약을 받고 있다. 그렇게 고용허가제가 정한 4년 10개월이 지나면, 정부로부터 '귀환'을 통보 받고 출국해야 하는 '일회용 노동자'의 임시 이주가 일단락된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임시노동 이주정책인 고용허가제 아래서 정작 이주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는 상당 부분 박탈된다. 외진 공장 숙소에서의 고립된 생활, 가족 동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외로움, 강압적인 노동 조건, 그리고 사업장 이동의 제약이 우울증을 야기한다. 이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 8월 유서를 남긴 네팔 노동자도 "건강 문제와 잠이 오지 않아서 지난 시간 동안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너무 힘들어서 오늘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허락을 받습니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도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되었습니다"라고 자살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유서에서 보여지듯이, 이 네팔 노동자는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자신이 처했던 힘든 현실을 죽음을 통해 알리고자 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은 '너무나 쉽게' 알려지지 않는다. 경찰은 간단한 조사와 행정 절차를 진행하고, 대사관과 협의 하여 빠르게 시신을 본국으로 송환한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본국에 있는 가족들도 갑작스러운 죽음에 문제를 제기할 여력이나 기회가 없다. 그렇게 자살 사건이 마무리된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들이 죽음을 통해 노동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을 때, 이들의 육체는 빠르고도 신속하게 폐기 처분되는 것이다. 그 사이, 인천공항에는 새로운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로 들어오고, 바로 얼마 전 이들이 숨을 거둔 그 공장엔 새로운 노동력이 투입된다.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지난 6월 한 이주노동자가 기숙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장도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 공장에서 이주노동자 자살은 2011년과 2017년 두 번이나 있었다고 했다. 공장 근처의 한 식당에서 만난 자살한 이주노동자의 친구들은 그 사건 이후 한동안 공포와 두려움으로 잠을 못 잤는데, 그 이유는 자신에게도 언제 그런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미 자살한 친구처럼 몇몇 동료들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수면제를 복용해야 잠을 잘 수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에서 심각성이 느껴졌다. 이들은 우울증을 앓고 있던 친구를 끝까지 지키지 못한 자신들을 자책했지만, 한편으로 그 친구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 있는 가족들을(때로는 친척들까지 함께) 책임져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장에서의 불안정성은 이중 고통을 야기한다고 했다.
즉, 한국의 노동 현장 상황을 잘 모르는 가족들의 경제적 기대와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부담, 가족들을 부양하느라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울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한국에서의 고통스러운 현실이 맞물려 이중·삼중의 고통이 된다. 이를 잘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자아의 결함으로 인식되기도 하여, 결국은 현실의 탈출구로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동료의 자살을 두 번이나 경험한 이 공장 이주노동자들은 돈을 모아 운동기구를 사서 함께 운동하고, 불면증이나 우울증이 생긴 동료들이 있으면 같이 병원에 가고 보살핀단다. 공장에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외로움도 함께 극복하고, 서로 도와주면 괜찮을 수 있다는, 이들의 바람은 참 소박하지만 또 너무나 절실하다. 죽지 않고 노동하고 싶다는 것.
하지만 이미 자살의 물결은 이주노동자들을 일회용 노동자로 만들어, 집단적으로 규제하고 통제하는 고용허가제의 도입과 함께 시작되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 국제노동이주가 한국에서 시작된 시점, 즉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편입되고 저임금의 노동력을 유연하게 이용하고 착취하기 시작한 그 시절부터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오늘도 또 한 명의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글이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것을 멈추기 위해 우리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 걸까? 살아남아서 노동하고 싶은, 바로 그 소박하지만 절실한 바람을 위해서.
덧붙이는 글 | 서선영은 경기도 안양, 마석 및 서울에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현장활동을 했었으며, 지금은 이주학을 가르치고 공부하는 연구자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펴내는 월간 <일터>에도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