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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는 평생 소작농으로 사셨고 일흔이 넘으신 지금까지도 당신 명의로 된 땅은 집터와 저수지 옆 두 마지기의 논밖에 없다. 복숭아며 감이며 닥치는 대로 문중 땅을 소작료를 내고 이 산, 저 산 개간하며 농사를 지으셨다.

출발부터 가난했던 탓에 그렇게 70 평생을 농사를 지었어도 아직 우리 아버지 이름으로 된 과수원은 없다. 하지만 언제나 산 아래 감나무 밭은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감나무 밭으로 인식되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그 감나무 밭 소작료는 아버지가 내기 때문에…

아버지는 작년 겨울에 양쪽 다리에 인공관절 수술을 했다. 지금이야 중장비로 깊숙한 산에 있는 과수원도 입구까지 경운기나 트럭이 다닐 수 있는 농로를 만들기 쉽지만 예전에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산 중턱에 있는 과수원에서 과일을 수확하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지게로 산 아래까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으니 다리에 있는 관절이 멀쩡한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감나무 밭 헛간 45년 전 아버지,어머니가 밭을 개간하고 난 돌과 흙으로 직접 만드신 헛간이다. 그 헛간이 오늘 철거되었다.
감나무 밭 헛간45년 전 아버지,어머니가 밭을 개간하고 난 돌과 흙으로 직접 만드신 헛간이다. 그 헛간이 오늘 철거되었다. ⓒ 조명호

경운기가 없고 손수레로 거름이며 농기구를 이동하던 시절. 그래서 만든 것이 과수원 입구에 있는 헛간이었다. 그 헛간에는 거름과 비료를 보관하기도 하고 과수원에서 일을 하다가 태양을 피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45년 전에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산 아래 감나무 밭 헛간을 만들었다.

흙을 물로 반죽하고 돌을 쌓았다. 밭에 물이 없어서 저 멀리에 있는 계곡에 가서 물을 길어왔다. 반죽된 흙을 바르고 그 위에 돌을 놓고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 그 위에 또 진흙을 바르고 돌을 놓았다. 그러다 비가 오면 짚으로 덮었다 마르면 또 흙을 반죽하고 돌을 쌓아 올렸다.

지붕은 요즘은 사용이 금지된 슬레이트를 사용했다. 시멘트와 벽돌 살 돈이 없어서 두 달 가까운 날 두 분이서 밭을 개간하고 나온 돌과 흙으로만 만든 헛간.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와서 신혼생활 없이 고생한 어머니는 마침내 그 헛간이 완성되는 날, 서러움에 감격이 더해져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헛간의 흙벽 직접 흙을 반죽하고 돌을 쌓고 두 달동안 만든 헛간, 헛간이 완성되는 날,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온 어머니는 서러움과 감격에 엉엉 울고 말았다고 한다.
헛간의 흙벽직접 흙을 반죽하고 돌을 쌓고 두 달동안 만든 헛간, 헛간이 완성되는 날,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온 어머니는 서러움과 감격에 엉엉 울고 말았다고 한다. ⓒ 조명호

그 헛간이 오늘 사라졌다.

40년 넘게 감나무 밭을 지키고 서 있던 그 헛간은 굴착기의 발길질 몇 방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아버지는 감을 수확하는 데 방해된다는 이유로 헛간 철거를 결정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힘에 부치신 모양이다. 농사일을 하나둘 줄이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벼농사도 포기하시고 산 중턱 복숭아밭은 수확을 포기했다.

어제 마지막으로 그 헛간을 가 보았다. 지난겨울 농협 보조로 나온 퇴비 몇 포와 사다리가 쓸쓸하게 놓여 있었다. 예전에는 몰랐었는데 막상 내일이면 사라진다는 생각을 갖고 보니 기분이 묘했다. 하나둘 사라진다는 것이 이상하리만치 기분 나쁘고 슬픈 일이다. 헛간이 사라지고 그 헛간을 만든 아버지, 어머니도 언젠가는 내 곁에서 사라질 것이다. 슬픈 일이다.

찬 서리
나무 끝을 날으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 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헛간 위 감나무 아버지 건강과 감값 폭락의 이유로 감 수확을 포기해 올해는 까치밥이 유난히 많다.
헛간 위 감나무아버지 건강과 감값 폭락의 이유로 감 수확을 포기해 올해는 까치밥이 유난히 많다. ⓒ 조명호

헛간 위를 보니 수확을 포기한 감이 차가운 서리를 맞고도 꿋꿋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 김남주 시인의 <옛 마을을 지나며>에 나오는 조선의 마음은 겨울날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를 남겨두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올해 헛간 위에 있는 감나무의 수확을 포기하여 수많은 감을 그대로 나무에 매달아 두었다. 그건 까치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100개 들이 감 한 박스에 5천원도 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무언의 항의이며 더 이상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서 감을 수확할 수 없는 당신 건강에 대한 항복 선언이었다.

45년을 버텨오던 헛간이 사라진 오늘. 2017년도 한 달 남짓 남았다. 세월은 참 빠르다.


#헛간#아버지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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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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