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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잠시나마 자신의 걱정거리와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 책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변화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고민들을 잊게 되는 것이다. (26쪽)

 겉그림
겉그림 ⓒ 펄북스
마실을 다니면서 언제나 책을 몇 권쯤 가방에 챙깁니다. 제가 사는 시골집에서 읍내로 저잣마실을 다녀올 적에는 한 권을 챙기고, 고흥서 순천쯤 다녀올라치면 두어 권을 챙깁니다. 고흥서 서울로 다녀올 적에는 너덧 권을 넉넉히 챙겨요.

시골에서 군내버스를 타며 책을 폅니다. 아마 이렇게 시골살이를 하며 시골버스에서 책을 읽는 시골사람은 거의 보기 드물리라 봅니다. 좀 젊은 분들은 으레 자동차를 몰기에 책을 손에 쥘 수 없고, 군내버스를 타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책을 챙기지 않아요. 시골에서 마주치는 어린이나 푸름이도 딱히 책을 챙기면서 읽지는 않습니다.

마실길에 책을 손에 쥐면 다른 소리나 모습은 제 마음에서 사라지곤 합니다. 버스 일꾼이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켜든 말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옆에서 누가 손전화로 싸우거나 수다를 떨어도 대단하지 않아요.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르는 책을 쥐면서 새로운 곳으로 날아가는구나 하고 느껴요.

나이와 상관없이 인간의 삶은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다. (41쪽)

그 치료법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아마도 입으로 소리 내어 낭송하는 행위가 가진 마법 때문인 것 같다. (59쪽)

적극적인 독자가 되고 싶고, 정신적 노동을 발전시키고 싶고, 계속해서 그런 정신과 관계를 맺고 싶은 독자라면 별 내용이 없는 책은 피하는 게 좋을 것이다. 공허한 내용으로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88쪽)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펄북스 펴냄)을 시외버스에서 읽습니다. 고흥서 진주로 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진주에서 장만했고, 진주서 순천을 거쳐 고흥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에서 다 읽습니다. 이 책은 독서치료사란 어떤 사람인가를 밝히면서, 독서치료사라는 사람이 의사하고는 다르게 우리 마음을 고이 달래 주는 몫을 책을 사이에 놓고 풀어낼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가만히 생각을 기울여 봅니다. 우리 괴로움을 알아주는 책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슬플 적에 슬픔을 달래 주는 책일 테지요. 우리 고단함이나 힘겨움을 알아주는 책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외롭거나 고단할 적에 지친 마음을 살며시 달래 주는 책일 테고요.

 마루에서 책을 누리는 아이들.
마루에서 책을 누리는 아이들. ⓒ 최종규

좋은 책은 읽는 사람의 의식 속에서 깊은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책이다. 좋은 책을 읽는 사람의 감수성을 자극해서 가장 익숙한 사물들을 향해 마치 처음 본 것과 같이 새로운 시선을 던지게 해 준다. (164쪽)

만일 방금 한쪽 유방을 떼어낸 상태라면 나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늙는 것이 두렵다면 어떤 책을 읽을까? 이것들은 생각해 볼 만한 훌륭한 질문이다. (179쪽)

저는 아이들을 낳기 앞서부터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림책이나 동화책은 어린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되도록 쉬운 말씨로 온갖 사람과 살림과 사회를 비추어 보여주어요. 길게 토를 달지 않지요. 부드러우면서 단출하고, 깔끔하면서 아름답게 삶을 비추어 보여주는 책이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라고 느껴요.

아름다운 그림책 하나를 펴다가 때때로 눈물을 떨굽니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줄거리하고 이야기가 감돌기에 눈물이 나요. 사랑스러운 그림책 하나를 펴다가 곧잘 깔깔 웃습니다. 그지없이 사랑스러운 이야기하고 줄거리가 어우러지면서 웃음이 나요.

이원수라든지, 바바라 쿠니라든지, 윌리엄 스타이그라든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라든지, 권정생이라든지, 참으로 이쁜 어른들이 있습니다. 가브리엘 벵상은 또 얼마나 사랑스럽고, 이치카와 사토미나 이와사키 치히로는 얼마나 따사롭던지요.

이런 여러 그림책 작가나 동화책 작가는 우리를 섣불리 가르치려 들지 않아요. 아니, 함께 노래하고 함께 웃으며 함께 울려는 마음을 이야기꽃으로 피우지 싶습니다. 서로 손을 맞잡고 같이 어깨동무를 하려는 뜻을 글이나 그림으로 싱그러이 엮어서 펼치는구나 싶습니다.

 책으로 마음을 달래는 아이. 마을 빨래터에 앉아서 새로운 누리로 날아갑니다.
책으로 마음을 달래는 아이. 마을 빨래터에 앉아서 새로운 누리로 날아갑니다. ⓒ 최종규

많은 사람들이 딱딱하고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책이 뜻밖에 놀라울 만큼 새로운 발견을 보여주거나 급격한 반전을 일으키기도 한다. 할리우드식의 상투적인 모든 겉치레를 체계적으로 폭파할 수 있는 다이너마이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188쪽)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을 쓴 분은 우리가 힘들 적에 책을 살며시 손에 쥐어 보자고 이끕니다. 더 많은 책이 아니어도 좋다고, 다문 한 권을 읽어도 좋다고, 어려운 인문책이 아니어도 좋다고, 시집을 읽거나 소설책을 읽어도 얼마든지 삶을 곱게 다스리는 새 기운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해요.

그리고 책을 읽을 적에 눈으로만 읽지 말고 입으로 소리를 내어 더욱 느긋하게 읽어 보자고 이야기합니다. 글쓴이가 이녁 삶을 길어올리면서 지은 이야기에 우리 마음결을 살포시 얹어서 읊어 보자고 하지요.

어버이라면 아이들한테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어 주면서 돌본 나날이 있겠지요.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 어버이 곁에 앉거나 엎드려서 아이 스스로 무척 좋아하는 책을 신나는 말씨로 읽어 주고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노래도 불러 주고 책도 읽어 줍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 고운 목소리로 노래도 불러 주고 책도 읽어 주어요. 자, 한번 느긋하게 소리내어 책을 읽어 봐요. 누구보다 우리 스스로 마음을 넉넉히 가꿀 만하리라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곁에 있는 고운 살붙이나 이웃이나 동무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 봐요. 괴로움을 살살 달래거나 씻는 책 하나는 시나브로 즐거움을 슬슬 피워내는 책 하나로 거듭납니다.

덧붙이는 글 |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레진 드탕벨 글 / 문혜영 옮김 / 펄북스 / 2017.11.15. / 14000원)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 - 프랑스의 창조적 독서 치료

레진 드탕벨 지음, 문혜영 옮김, 펄북스(2017)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레진 드탕벨#펄북스#독서치료#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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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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