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통과됐습니다. 촛불이 매주 광장을 가득 메운 결과입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습니다. 촛불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요. 촛불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는 무엇이 남았을까요. 박근혜정권퇴진행동 기념기록사업회와 <오마이뉴스>는 '촛불1년, 우리가 쏘아 올린 희망은?' 공동기획을 통해 촛불 주역인 시민들의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촛불이 남긴 변화와 희망, 한계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익명의 박근혜정권퇴진행동 기념기록사업회 자원활동가가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을 인터뷰한 내용을 보내왔습니다. - 기자 말
"사람이 바뀌고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으니 사회도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바뀐 건 별로 없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생명안전공원 조성. 지켜보는 게 아니라, 우리 가족들이 해낼 겁니다."새 정부가 들어선 지 7개월이 지났다. 세월호 참사 이후 3년 반 동안 몸과 마음에 켜켜이 쌓인 분노와 슬픔을 잊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다. 지난달 28일 오후 경기 안산시 세월호 참사 정부합동분향소에서 만난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지쳐 보였다.
최근 허리 통증이 심해져 3일간 입원을 했다. 참사 이후 생긴 병이다.
"잘 안 먹었어요. 안 먹혀서…. 운동할 시간이 없으니 근육도 빠졌고요."달라진 건 몸 만이 아니다. 전 위원장은 "개인적인 것은 내려놨다"라고 했다. 참사 당일 저녁 가족대책위 공동대표를 맡으며 SNS 계정을 정리했다. 마음이 약해질까 봐 눈물도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찬호 올라오는 날만 울었어요. 발인 날도 못 울었네요." 그해 여름 일부 유가족들이 폭행 사건에 휘말렸고, 이후 선거에서 가족협의회 위원장으로 다시 뽑히면서는 즐기던 술도 끊었다.
"위원장 하면서는 술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게 엄마들 요구였어요. 아무래도 실수할 수 있으니까... 당연한 요구였고 지금까지 한 잔도 입에 안 댔어요." 마음 놓고 울고 편하게 술 한잔하는 일상은 모두 미뤄뒀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 사회 건설 뒤로. 지난해 6월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이 강제 종료되며 전 위원장의 마음은 한층 더 힘들어졌다.
천만 리본이 천만 촛불이 됐다"끝까지 싸우겠다"는 다짐에 "그래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이 더해진 건 지난해 10월 시작된 촛불 집회 이후다.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 이후 국정 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에 나왔다. 가족들이 밝히고자 했던 참사 당일 7시간의 행적에 대해 모두가 질문을 던졌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달라졌다고 피부로 처음 느낀 건 12월 3일 6차 촛불 집회 때입니다. 법원이 청와대 앞 100m까지 행진을 허용했죠. '여기까지 오는데 그렇게 오래 걸렸구나' 가족들이 참 많이 울었어요. 저도 마구 벅차오르더라고요." 가장 기뻤던 순간은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을 때다.
"'박근혜 탄핵 될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헌법재판소가 안 받아들이지는 않을 거라는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성취감도 느꼈다.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 천만 서명 운동이 천만 리본 나눔이 되고 결과적으로 천만 촛불이 됐어요. 탄핵은 가장 앞에서 가장 처절하게 끝까지 버텨 준 우리 부모님들 노력이라고 항상 이야기하고 있어요."
천만 촛불은 정권 교체로까지 이어졌지만 달라진 게 많지 않다. "열 걸음이라고 하면 한 걸음 정도 왔다고 볼 수 있겠죠." 전 위원장은 참사 이후 가족들이 주장해 온 것 중 실현된 것을 단 네 가지 꼽았다.
학교 행사 중 사망한 경우 제적되는 대신 명예 졸업이 가능해진 것, 기간제 교사의 경우도 정규직 교사처럼 순직을 인정하도록 한 것, 미수습자 수습과 2기 특조위 출범 길이 열린 것 등이다. 지난 5월 9일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한 서한에 담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4.16 생명안전공원 조성 등은 아직 마무리되지 못했다.
전 위원장은 최근 4.16생명안전공원 조성과 현재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옮겨진 기억교실의 보존 문제에 바짝 신경을 쓰고 있다. "올해 안에 4.16생명안전공원 부지와 4.16교육시설 확보 문제를 마무리 짓는 게 목표입니다." 가족들은 이 두 가지를 희생자 합동 영결식과 명예 졸업식의 선결 조건으로 보고 있다.
지난 8월 16일 유가족과의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안에 4.16생명안전공원 관련 사항을 결정하겠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들이 자주 만나 논의하고 있지만 "재산권 관련 내용 등 주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제안이 나와야 하니 낙관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전 위원장은 가족들의 주장과 현재 상황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3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아이들이 묻힐 곳이 정해지지 않아 8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족들도 요구사항이 많았어요. 누구는 수목장, 누구는 봉안당…. 하지만 시민들과 안전사회 건설 부분을 이야기하며 가족들이 바뀌었어요. 우리가 요구할 것과 내려놔야 할 게 구분된 거죠. 시민들이 아이들 손 잡고 와서 거닐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겁니다."더 오래 걸릴 것이라 예상하는 부분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지난 7월 해양경찰 부활을 맞아 가족협의회는 박경민 해경청장에게 서한을 전달했다. 1기 특조위가 해경 등으로부터 자료 제출 협조를 받지 못하며 진상규명에 난항을 겪은 만큼 2기 특조위 업무에 협조해 달라는 당부를 담았다.
또 참사 당시 구조 의무 방기·실패와 관련된 10명의 이름을 적시해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했다. 해경청장으로부터 '자료 요구에 최대한 협조하고 10명에 대해서는 들여다보겠다'는 답을 받았다. 의견을 전달하고 그에 대한 답을 받는 것, 이전 정권에서는 기대조차 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느끼죠. 하지만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냥 다 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정권은 바뀌었지만, 갈 길은 멀다손 놓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되는, 끈을 조이게 되는 일이 최근 발생하기도 했다. 해양수산부가 미수습자 가족들의 수색 중단 기자회견을 앞두고 추가 유골 발견 사실을 숨긴 일이다. 이에 대해 전 위원장은 "가증스럽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 위원장은 수색 발굴 요청을 하겠다는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그래도 수색을 못 한 부분에서 유골이 나올 수 있으니 추후에도 가족과 소통하고 예우를 갖춰 모셔야 한다는 부분을 강조하라'고 조언했다. 이에 따라 미수습자 가족들도 이 의견을 해수부에 전달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있었던 거죠. 일부 공무원들은 세월호를 빨리 정리하고 스트레스 안 받고 편안하게 생활하고 싶어 하는 거죠." 전 위원장은 참사 직후 상황을 언급했다.
"세안조차 시키지 않은 참혹한 모습의 유해를 유가족에게 그대로 공개하던 기본적 예우도 모르던 그 행태가 바뀌지 않은 겁니다."
"자꾸 톤이 올라가죠? 화가 나서 그래요." 목소리를 높인 게 쑥스러운 듯 전 위원장은 해수부 공무원들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운영 중인 선체조사위원회가 세월호 선체를 조사하고 보존 계획을 수립하지만, 이를 실행하는 것은 결국 주무부처인 해수부라는 것이다.
아홉 걸음이나 남은 갈 길에 대해 전 위원장은 "반드시 해낼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지금껏 함께 해온 가족들과 본인 일이 아닌데도 옆에 있어 준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식 살아 돌아올 수 없잖아요. 그걸 승화시켜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뭉쳐 있거든요." 박근혜 정권 탄핵과 정권 교체로 이어진 촛불, 전 위원장이 본 희망은 흩어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 국회시민정치포럼은 오는 9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우리가 만난 희망'이라는 이름의 '촛불1년 시민토론회'를 연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1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 행사는 촛불의 주역인 시민들이 지난 1년간 발견한 희망과 앞으로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자리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해 희망을 이야기할 시민 300명의 신청을 선착순으로 받고 있다.
참가신청:
http://bit.ly/2AKbDWJ 문의 :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 (02-733-1029,
candle20161029@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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