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책을 보면 으레 나오는 충고가 있다.
"모방이 창조다." 지당한 말씀이다. 사실 지금 우리들이 말하거나 쓰고 있는 것 중에서 오롯이 새롭게 창조한 말이나 문장이 얼마나 있을까. 거의 없을 듯싶다.
새로운 것이라고 꺼내 놓는 것 대부분이 나도 모르게 읽거나 보거나 들었던 것으로, 머릿속에 저장(기억)됐다가 (자신도 모르게) 적당한 쓰임새 타이밍에 겉으로 나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우리는 그것이 모방인지 아닌지조차 모른다. 새롭게 창조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의 말글살이들은 대부분이 모방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이 점과 관련해 나는 앞에서 문장공부법으로 '필사'를 권유한 바 있는데, 그런 작업도 생활 속의 모방 범주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듯싶다.
아, 오해하지 마시라. 이런 류의 모방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여전히 필사는 효율적인 문장공부법이라는 나의 주장은 되레 더 강고하게 되어가고 있다. 다만 여기서 '나만의 스타일'을 강조하려다 불가피하게 나온 것임을 이해 바란다.
사람들은 이제 막 글쓰기에 입문하는데, '나만의 스타일'이라니, 가당치도 않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을 쓰다보면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의 문장을 흉내 내더라도 궁극에는 자신의 스타일로 가기 마련이다.
아무리 모방하여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일정부분은 자신의 생각과 방법이 오롯이 들어가게 되어있다. 말이나 글은 하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의 성격을 고스란히 닮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간단한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와 나누는 이야기를 녹음하고, 그 녹음을 풀어보라. 한 자도 빼지 말고 오가는 대화를 그대로 풀어라. 그리고 그 녹취에서 상대방의 말을 지우고 나의 말만 정리해보라. 정리가 끝났으면 그걸 찬찬히 읽어보라. 나름대로의 특징이 보일 것이다. 문장을 어떻게 구사하는지, 또 자신만이 사용하는 특정 단어가 무엇인지 눈에 띌 것이다.
그렇다. 바로 이게 당신만의 스타일이다. 아마도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실제 쓴 글을 보면 역시 문장이 이 녹취록을 닮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걸 기본으로 삼아서 글을 쓰면 그게 곧 나만의 스타일이 되는 것이다.
글쓴이는 대부분 독자가 읽고 단박에 누가 쓴 글인지를 알 수 있기를 꿈꾼다. 글은 글쓴이의 성격과 습관 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업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글쓴이만의 스타일'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힘들게 새로운 글쓰기 스타일을 공부하지 말고, 지금 만들어져 있는 내식대로 쓰라는 것이다.
소설과 같은 문학을 공부하는 문학청년들이라면 상황이 좀 다르다. 다양한 글쓰기 스타일에 대해 섭렵한 후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야 나름대로 탄탄한 문장력을 무기로 장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문청이 아니다. 글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사람들인데다 앞으로 글로 밥 먹고 살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다. 물론 열심히 쓰다보면 전업작가의 길을 가지 말란 법은 없겠지만, 그건 지극히 예외로 해두자. 그러니 문청들처럼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며 절차탁마할 필요가 없다.
또한 우리의 글에는 그런 문장력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가 구사할 수 있는 능력껏 쓰면 되는 것이다. 소 잡는 칼을 닭 잡는데 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지 않은가.
아, 이 말에 오해가 없길 바란다. 글을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는 그런 말이 아니다.우리네가 쓰는 에세이는 그 나름의 문법이 있고, 문학은 문학을 하는 문법이 있다는 얘기다.
자, 이제부터 '나만의 스타일'로 맘껏 자판을 춤추게 해보자.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조성일의 글쓰기 충전소'에도 포스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