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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완공된 평양 려명거리의 모습.
지난 4월 완공된 평양 려명거리의 모습. ⓒ 신은미

"건축 분야의 통일 준비작업은 건축계의 몫이다. 이데올리기의 그림자가 강하게 남아 있지만 언젠가 '민족'이 '이데올로기'를 넘을 것이다.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피를 갈라놓을 수는 없다고 믿는다."

허정도 박사(건축학)가 5일 오전 마산YMCA 강당에서 '통일인문학'의 하나로 열린 "북한 건축 이야기"에서 한 말이다. 허 박사는 남-북한의 건축을 비교하고, 평양을 중심으로 북한의 건축을 시기별로 나눠 설명했다.

허 박사는 2015년 7월에 개장한 평양비행장, 2016년 9월의 대동강변 '미래과학자거리 야경' 등 여러 장면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남한과 비교할 때 북한 현대건축의 특징은 무엇일까. 허 박사는 "북한 현대건축은 건축적 성과를 통치업적에 결부시키는 의도가 강한 '통치수단'이고, 건축에 대한 객관적 비평이 존재하지 않으며, 설계자나 대지·면적·공사비·공사기간 등 자료가 부정확하다"고 했다.

남한은 '자본주의적 건축'이라면 북한은 '사회주의적 건축'이다. 허 박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 건축은 '체제 우위를 위한 전시건축'이 전부다"라며 "그러나 문화로서 지역건축의 존재를 인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 건축 접근은 이데올로기가 없는 전통건축에서 시작했고, 현대건축은 북한 방문 재미건축가와 월남한 북한건축기술자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며 "다양한 방법으로 통일을 위한 터를 닦아야 한다면 건축도 이해해야 한다. '북한 건축 바로알기'가 '북한 건축 이해하기'로 동질성 회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풀어야 할 숙제는 무엇인가. 허 박사는 "북한의 도시와 건축을 이데올로기의 결과로 보기 보다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문이 있겠지만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라며 "문화현상으로 본다면 보다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지닐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북한 현대건축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건축'과 '민족전통주의의 건축', '사회주의 우월성 표현 건축', '조형성 형태주의 건축'의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고, 여기에 '기념비 건축'을 추가해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여기에 속하는 건축은 만경대혁명학원본관(1948), 김일성대학본부(1948), 평양역사(1950), 모란봉극장(1954), 조선역사박물관(1954), 조선미술박물관(1954), 대동문영화관(1955), 종합청사1호(1956), 평양소년학생궁전(1963), 만수대 의사당(1984) 등이다.

'민족 전통주의 건축'에 대해, 그는 "북한에서 건축에 전통문제가 대두된 것은 1950년대 말, 소위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 기초건설 시기였다"며 "전통주의를 사회주의에 접목시켜 고착화하려고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여기에 해당하는 건축은 평양대극장(1960), 옥류관(1960), 개성소년학생궁전(1961), 인민문화궁전(1974), 국제친선전람관(1978), 인민대학습당(1982), 평양개선문(1982), 조국해방전쟁기념탑 대문(1993), 조선동의과학원(1993) 등이다.

'사회주의 우원성 표현 건축'은 고려호텔(1985), 5.1경기장(1989), 유경호텔(미완성), 3대혁명전시관 등이고, '조형성 형태주의 건축'은 평양산원(1980), 창광원(1980), 빙상관(1982), 만경대소년학생궁전(1988), 평양고예극장(1989), 청년중앙회관(1989) 등이다.

'기념탑 건축'도 북한 건축의 한 특징이다. 허정도 박사는 "북한에서 기념탑은 인민사상교육의 중요한 도구이자 개인의 업적을 계도하는 시설물이고, 건축적 요소를 표현하고 있는 조형물에 조각이 포함되면서 거대하고 웅장함을 나타낸다"고 했다.

기념탑 건축의 대표적 사례로 천리마기념탑(1961), 보천보전투기념탑(1967), 왕재산대기념비(1975), 주체사상탑(1982), 당창건기념탑(1995) 등이 있다.

민족동질성 회복도 강조됐다. 허 박사는 "남북은 오랜 기간의 '동질성 공간'이 '분단된 시간' 때문에 '이질화 된 건축'으로 양분되었다"며 "이제는 동질성 회복을 위해 노력할 때다. 반추해보면 건축계에서 통일에 대한 어떤 노력도 없었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그는 "통일에 대한 준비로, '북한건축 바로 알기'에서 '북한 건축 이해하기'로 바꾸어야 하고, '체제 우위적 논리'나 '동정론' 보다 실질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안을 모색해야 하며, '북한 건축 이해하기'가 '문화현상으로서의 북한 건축'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허정도 박사는 "90년대 주한 독일대사였던 디터 지메스가 독일 통일 후 문제를 이야기 하면서 '준비가 너무 없었다', '동독에 대해 너무 몰랐다', '통일이 너무 정치화되었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남에서는 북의 건축을 '일인 독재를 위한 도구의 건축'이라 하고, 북에서는 남의 건축을 '퇴폐적이고 변태적인 건축'이라 한다"며 "남북 양쪽이 가지고 있는 건축정보의 함축된 표현으로, 왜곡과 혼돈 속에서 상대를 바라본다. 극복의 대상이다"라고 말했다.


#허정도 박사#북한 건축#이데올로기#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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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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