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사지와 겨울은 참 많이 닮았다. 빈 절터에 남은 당간지주나 탑은 이파리를 버리고 추위를 견뎌낼 준비를 마친 겨울나무가 떠오르게 한다. 눈이라도 살풋 내려 나무와 탑이 눈송이라도 품어 안으면 의지 가지 없는 나무도, 탑도 더욱 도드라진 겨울 풍경을 장식한다.
서산마애삼존불 앞을 지나서 골짜기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보원사지가 나온다. 동쪽을 향해 자리 잡은 빈 절터에는 당간지주와 우물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징검다리 놓인 개천을 건너면 '보원사지 5층 석탑'이 자리 잡고 있다.
눈이 내려야 소나무가 푸르다는 것이 도드라지듯이 건물이 사라진 절터라 탑은 더욱 당당한 자태를 뽐낸다. 우람한 2층 기단은 신라 탑에서 위풍당당을, 부드럽게 올려 쌓은 5층은 백제목탑에서 따뜻함을 이어받았다.
가까이 다가서서 살펴보니 기단 1층에는 버팀기둥이 두 개지만 기단 2층에는 하나로 줄어들었다. 통일신라 중기까지 1, 2층 모두 두 개를 새기던 양식이 하나로 생략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층마다 지붕방침은 네 개로 줄어들었다. 다섯 개를 새겼던 통일신라 중기를 지나, 네 개로 줄어든 통일신라 말기를 거쳐서 고려로 넘어가면 세 개로도 줄어드는 석탑 양식변화를 읽을 수 있다. 가로를 길게, 세로를 짧게 새겨서 지붕받침이 옆으로 퍼져 보이게 하고, 모서리를 둥글게 깎은 것은 백제탑에서 영향 받았음을 보여준다.
이 절이 백제시대에 처음 세워졌고, 폐사와 중건을 거듭한 것을 탑 양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1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 '백제의 미소'라고 부르는 서산마애삼존불이 있다는 것으로도 이 곳이 백제 때 성하던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때도, 고려 때도 꽤 잘나가던 곳이었음을 탑 하나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빈 절터에서도 눈을 뜨면 적지 않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박인환은 '사람은 가도 옛날은 남는다'고 했다. 시대는 사라져도 역사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내가 폐사지를 즐겨 찾아다니는 이유다. 조금 추워도 달달한 겨울절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