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이유로 책을 선택하곤 한다. <그는 나의 아버지였다, 이다>(푸른길 펴냄)는 뭣보다 제목에 이끌린 경우. 과거와 현재를 품고 있는 제목이라서. '어떤 아버지, 어떤 이야기일까?' 짧은 순간 무척 궁금해지는 제목이었다. 책제목의 글은 2장 첫 번째 글.
저자의 아버지는 보릿고개가 무섭던 1940년대 중반에 갓 스무 살이었다. 그는 본격적인 추수를 앞두고 바쁜 농사일을 잠깐 쉴 수 있는 초가을이면 인근 동네 여러 집들의 감을 따 떫은 맛을 우려낸 후 내다 팔곤 하던 땡감장수였다.
그렇게 가난했던 시절. 그가 고을 여러 집 담장들의 감을 따 팔아 연명할 수 있었던 것은 뭣보다 생활력이 강하고 성실했기 때문. 덕분에 첫눈에 배필로 점찍은 정진사댁 손녀와 가정도 꾸린다. 그리고 몇 년 후 저자가 태어나지만 그는 전쟁터(6·25)로 나가고 만다. 그리고 6년 후 돌아오는데 나무상자에 '잿빛 뼛가루로'였다.
아버지의 짧은 몇 해를 계절별로 구분해 들려주는 이 글은 단편 소설 같은 수필이다. 봄이면 연분홍빛 꽃들이 피어나고, 가을이면 감이 익어가는 그런,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산골마을의 정경이 떠오르기도 할 만큼 아름다운 글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을 덮고서도 유독 여운이 깊었다.
"한국에서 온 구상나무도 미국에서 인기가 있다. 한국 전나무(Korean Fir)로 알려진 이 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나 정원수로 많이 팔린다. 열매가 아주 예쁘다. 잎새는 솔잎보다 굵고 짧다. 일본이 미국에 바친 워싱턴의 벚나무도 한국에서 왔다고 한다. 1910년 도쿄시장이 당시 태프트 대통령 부인에게 보낸 2000그루는 검역과정에서 벌레 먹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모두 불태워졌다. 1912년 다시 보낸 벚나무는 제주도산이라고 한다. 현재 워싱턴의 명물 벚나무들은 그 후손이다. 당시 일본이 보낸 벚나무는 슬픈 한국의 역사를 안고 있다. 태프트 대통령은 그 전에 필리핀 총독이었고, 전쟁성 장관을 지냈다. 1905년 러일전쟁 후에 당시 일본총리였던 가쓰라와 밀약을 맺은 장본인이다. 그 밀약에 의하여 미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눈감아 주었다.그 가쓰라가 그 태프트에게 보낸 선물이 한국산 일본 벚나무인 것이다."(121~122쪽)그런데 참 아리게 읽은 글이기도 하다. 돌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자식을 두고 전쟁터로 나가야만 했던 이십대 초반의 아버지인 데다가, 전사했기 때문이다. 더욱 아리게 와 닿는 것은 아버지가 굶어죽었다는 것. 그것도 군인 신분으로 말이다. 이 땅을 휩쓴 전쟁의 상흔과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1950년대 당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돌 한 달쯤 지나 저자를 안고 면회 간 어머니.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이었으니 실은 아버지를 모른다. 어머니로부터 들어 알고 있는 아버지에 불과하다. '영원한 아버지의 부재'다. 그래서 가슴 한편 언제나 헛헛하다. 삶의 뿌리와 같은 아버지의 부재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의 부재는 태어난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민자로 고국과 이국, 그 사이를 서성거리며 살게 한다.
이민자로 살다보니 고국에 대한 많은 것들은 '그리움'과 '애틋함'이다. 그래서 이국에서 만나는 고향 또는 고국과 관련된 것들은 그것이 나무 한그루일지라도 혈육인양 유독 반갑고 살갑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니 고국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애정의 글들인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그리워만 하는 그런 글들은 아니다. '이런 역사 자랑 정말 싫다'란 글 부분이다.
"비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고려 제8대 현종은 외침의 위기를 잘 극복하고 고려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백제의 무령왕에 비견되는 임금입니다. 거란족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자 나주까지 피난하는 과정에서 1011년 1월 7일 그리고 상경 중 2월 4일부터 6일 간을 공주에서 머물게 됩니다' 충청남도 공주시, 새로 한옥마을이라는 관광단지를 만들었다. 한옥애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한국 사람들과 외국 사람들에게 한옥체험 관광을 시키자는 좋은 취지의 사업이다. 그런데 그 입구에 어른 키보다 더 큰 이런 비석을 세워 놓았다. 왜? 1천 년 전 왕의 비참한 행차가 돌에 새겨 길이 보존하고 후세에 두루 알릴 만한 가치가 있나? 그가 공주에 6일간 머물렀다는 사실이 지금 공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자랑거리인가? 현종이 공주에서 했다는 짓은 가관이다. '이때의 인연으로 공주절도사였던 김은부의 딸 3인이 현종의 왕비가 되어…' 비문은 이렇게 계속된다.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해 도망가는 초라한 왕 주제에 공주 땅에 와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요샛말로 왕의 권위를 앞세운 갑질이다. 비문의 논리와 문장은 황당하고 어설프다..."(146쪽)이처럼 우리는 예사로 보고 살아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쉽게 생각하지 못하거나, 그래서 당연하게 그리고 혹은 두루뭉술하게 생각하고 마는 것들을 지적하기도 한다.
어떤 곳을 여행하며 유적지 등의 설명문을 관심 두고 읽다보면 다 읽고도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가 힘든 설명문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좋은 재질과 디자인의 안내판으로 바꾸면서 정작 오래 전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쓴 그런 지레짐작을 하게 하는 설명문들도 종종 만났다. 그동안 그런 설명문들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는 정도로 지나치곤 했다.
공주를 찾은 사람들에게 공주시의 역사 중 하필 내세울 것이 왕이 피난길에 한 아버지 자매 셋을 부인으로 삼았다는, 그에 대한 어떤 대가 덕분에 공주가 번성했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때 백제의 도읍지로 부여, 익산, 김제 등과 함께 백제 역사에 상징적인 지역인 공주 아니던가 말이다. 그런데 왜 하필 이런 사실이냐는 것이다.
공주시 이야기를 읽자니 지난해 공주시와의 짧고 씁쓸한 두 차례의 만남이 떠올랐다. 2016년 10월 현재 공주 시내에는 가로수 한 그루 없는 제법 긴 거리가 있다. 애초 나무가 없었던 길이 아니라 일부 사람들의 이기와 그걸 부추긴 행정으로 모조리 뽑아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해 공주시의 이런 모습에 적잖이 실망했었다.
그래서 이런 글들은 공감과 동시에 부끄럽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얼굴이 화끈거렸을 정도로 말이다. 생각해 본다. 우리 사회 성 관련 범죄가 끊임없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나 그것이 오늘날의 도덕적 상식에 어긋난다는 것조차 판단하지 못하고 이처럼 무조건 수용하거나, 공식적으로 자랑함으로써 합리화시킨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지나친 비약일까?
저자는 늘 그리운 존재지만 얼굴을 몰라 막연히 그리운 아버지처럼, 오래 전부터 떠나 살면서 늘 그리워했던 고국 곳곳을 여행하며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 잃어버린 것들을 아프게 지적하기도 하고, 애틋하게 그리워하기도 한다.
전쟁 때문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처럼 부지불식간에 잃어버렸거나, 간과해버리고 마는 것들을. 그런데 이런 글이 여러 편이다. 이민자의 시각이라 그만큼 객관적이다. 개인의 소회만 담은 그런 수필집으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것은 수필 느낌보다 인문학적인 요소와 느낌이 강한 5장과 6장이다. 5장의 글들은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며 우리의 음식이나 문화, 역사와 연결시키는 등으로 삶의 사유가 강한 글들이고, 6장은 몇몇 문학작품에 대한 통찰과 저자만의 해석이 독특한 글들이다. 얻은 것들(지식 등)도 많은 글들이었다.
책 전체 어쩌면 삶의 뿌리와 같은 아버지를 잃은 때문에 고국을 떠나 이민자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을 그런 시각과 느낌의 글들이 많다. 그래서 아버지란 존재가 우리의 삶에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곤 하며 읽은 책이다.
지게를 지고 논둑을 걷는 농부의 모습에 한겨울에도 지게를 놓지 못하고 살아온 친정아버지 모습과 고단한 삶이 겹쳐 떠올라 눈시울 붉어지며 읽은 책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그는 나의 아버지였다, 이다>(김지영) | 푸른길 | 2017-11-27 ㅣ정가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