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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열린 '2017 건설노동자 총파업 결의대회'를 마친 전국건설노동조합 노조원들이 청와대를 향한 행진을 위해 마포대교를 점거해 마포대교 남단이 시위자들과 퇴근길 차량으로 꽉 막혀 큰 혼란을 빚고 있다.
 11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열린 '2017 건설노동자 총파업 결의대회'를 마친 전국건설노동조합 노조원들이 청와대를 향한 행진을 위해 마포대교를 점거해 마포대교 남단이 시위자들과 퇴근길 차량으로 꽉 막혀 큰 혼란을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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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성립과 함께 근대 시민법이 확립되었다. 시민법 아래에서 노동자와 사용자의 계약관계는 독립 대등한 당사자 사이의 자유로운 계약관계로 구성됐다. 그러나 개별 당사자 사이에서 본질적으로 대등할 수 없었던 양자를 대등하게 의제한 결과 많은 문제가 생겼다.

임금 그 밖의 노동조건은 당사자의 자유로운 합의의 결과로 법률상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일하다 다쳐도 과실 책임의 원칙이 적용됐으며, 계약 해지의 자유는 사용자에게 해고의 자유를 주었다. 또한 약자의 위치에 있는 노동자는 구직이나 취직을 둘러싸고 영리직업소개업 등에서 중간 착취나 강제 노동 등에 시달렸다. 또 단결 활동은 시민법과 모순된다는 이유로 금지·억압됐다.

노동법은 이와 같은 시민법 아래에서 노동 관계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생성·발전했다. 즉, 노동법은 시민법의 원리를 상당 부분 수정하면서 등장한 것이다. 노동 조건의 최저 기준을 정하고 그 준수를 강제하는 입법이 생성·발전됐고, 산재에 대한 무과실 책임의 원칙을 채택했다. 실업과 취직의 문제에 국가가 관여하고 개인이 구직·취직에 관여하는 사업을 규제했고, 해고의 자유를 규제했으며, 노조 설립과 쟁의 행위를 보장하고 부당노동 행위를 처벌하게 됐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노동법의 생성·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노동3권의 실효적 보장과 실질적인 노사대등 관계는 너무나 먼 얘기처럼 들린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는 비정규직은 노동법의 보호 범주에도 들어오지 못한 채 여전히 근대 시민법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근로기준법이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법·제도란 애초 노동 관계를 규율하는 최저한의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이를 넘어서는 노동 조건은 집단적 노사관계라는 힘의 역관계 속에서 역동적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노동조합은 적어도 노동자 계급의 '최소한의' 무기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최소한의 수단조차 한국 사회에서 쉽사리 허용되지 않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대한민국 헌법은 노조 할 권리를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또 주지하는 바와 같이 기본권으로 규정된 노동3권은 현실에서 기본권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노조조직률 10%가 이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마치 유신헌법에 '민주주의'가 규정된 것과 같다면 과한 평가일까?

노조 설립의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거나, 어렵게 노조를 설립해도 조합 활동을 하는 게 매우 어렵다. 또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은 매우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허용되며, 정당한 쟁의행위로 평가받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 빠져나가기'다. 노사 자치를 지도 이념으로 하는 집단적 노사 관계에 국가가 쉽사리 개입하는 등 자율적 노사관계는 형해화됐다. 사용자는 무력을 동원해서 노조를 파괴할 지경이다.

그야말로 노동3권이라는 명(名)과 실(實)이 따로 노는 형국이다. 이제 헌법에 규정된 노동3권을 명실상부(名實相符)하게 기본권으로 보장하기 위해 지금 당장 노조법부터 손봐야 한다.

학습지 교사 등 '위장자영업자'... '노동자' 인정해야

가장 핵심은 노조법 제2조의 '근로자'(표현이 적절하지 않지만 법상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와 사용자 개념의 확대다. 여전히 근대 시민법의 세계에 살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이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 심지어 산재법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희귀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와 노동3권을 사실상 보장받지 못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노동3권이 온전히 보장되는 세계로 안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형식적으로 개인사업자 신분이지만 이는 '위장자영인'에 불과하다. 결코 대등하지 않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생활한다는 본질에 있어 노동자와 다를 바가 없다. ILO는 형식적 계약관계가 아닌 '사실 우선의 원칙'에 따라 근로관계를 판단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을 권고한 바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마찬가지 권고한 바 있다.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당사자 간의 계약으로 전제하고 민법적인 접근을 하거나, 공정거래의 관념으로 경제법적 접근을 하면 현재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결국 특수고용노동자에게는 노조를 허용하고 노동3권을 보장하여 실질적인 대등관계에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노조법 제2조의 '근로자' 개념을 확대해야 한다.

간접고용은 고용과 사용의 분리를 본질로 하고 이는 권한과 책임의 분리로 이어진다. 권한을 행사해 이익은 취하되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간접고용 노동자에게는 고용불안과 노동조건을 극복할 중요한 수단인 노동3권조차 사실상 부재하다. 현재 노조법의 사용자 정의는 과거 일면적 계약 관계를 중심에 두고 규정되어 있다. 다면적 계약관계를 본질로 하는 간접고용에 대한 규범으로 기능하기 어렵다.

또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론, 도급과 근로자파견의 구별기준, 실질적 지배력설, 공동사업주 법리 등 법원의 판례도 모두 간접고용을 규율함에 있어 한계가 명확하다. 결국 간접고용 문제를 실효적으로 규율하기 위해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의 확대가 절실히 요구된다.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의 확대는 기존 법 해석의 한계를 극복하고, 간접고용에서 보이는 다양한 탈법적 행태를 실효적으로 규율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판례에서 제시된 실질적 지배력설을 간접적이고 포괄적으로, 상당한 지휘·감독까지도 사용자 책임으로 규율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노조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월 24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노동계 초청 대화'에서 김영숙 국회환경미화원노조위원장 등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민주노총) 지도부는 불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월 24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노동계 초청 대화'에서 김영숙 국회환경미화원노조위원장 등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민주노총) 지도부는 불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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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전 속 노동3권이 명실상부해지려면

이외에도 노동3권을 실질적이고 온전하게 보장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법개정이 시급하다. 첫째, 단결권 보장과 관련하여 ▲ 해고자 등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고 ▲ 행정관청이 노조 설립 절차에 개입하여 행정권한을 남용할 수 없도록 노조설립신고서 접수와 함께 접수증을 교부하고 설립신고서 반려제도를 폐지하여 온전한 신고주의로 전환해야 하며 ▲ 노조 명칭 사용금지와 위반 시 처벌 조항도 삭제하고 ▲ ILO에서 지속적으로 권고한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조항과 타임오프제를 노사 간의 자율적인 결정에 맡기는 방향으로 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

둘째, 단체교섭권 보장과 관련해서는 ▲ 산별노조의 제도적 안착 ▲ 복수노조의 자율교섭 보장 ▲ 행정관청의 단체협약 시정명령권 폐지 등이 중요하다. 현재 조직 노동자의 대부분은 산별노조 또는 초기업별노조로 조직되어 있다. 그러나 교섭은 여전히 기업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단체협약의 적용 또한 마찬가지이다.

프랑스 등 유럽대륙 국가는 노조 조직률과 관계없이 산업적 수준의 단체교섭과 산별협약의 효력확장 제도를 통해 동종 산업 미조직 노동자에게까지 단체협약이 적용되어 협약 적용률이 상당한 수준이다. 이처럼 산별노조를 강화하고 안착화하기 위해서는 사용자단체 구성 등 산별교섭을 의무화하는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 또 단체협약의 효력확장제도의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한편, 현행 노조법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를 채택하여 소수노조의 노동3권이 형해화되고, 위헌 논란에 놓여 있으므로 복수노조의 경우 자율교섭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행 노조법은 단체협약 중 위법한 사항에 대하여 행정관청으로 하여금 시정명령권을 행사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확인된 것처럼 행정관청으로 하여금 자율적인 노사관계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심지어 노조탄압의 수단으로 기능하므로 노사 자치를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시급히 폐지되어야 한다.  

셋째, 단체행동권 보장과 관련하여 ▲ 정리해고 반대 등 노동조건과 결부된 사항을 쟁의행위의 목적 사항으로 포괄해야 하고 ▲ 쟁위행위를 이유로 한 현재의 과도한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를 제한 또는 금지해야 하며 ▲ 폭력·파괴행위를 수반하지 않는 단순파업의 경우 형사처벌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등 불필요한 쟁의절차 규정을 폐지하며 ▲ 공익사업과 필수공익사업, 필수유지업무의 범위 축소와 필수공익사업에 있어서의 대체근로 금지 등 공익사업에 있어서의 노동3권의 실질적 보장 조치가 필요하다.

넷째, 사용자의 노동3권 침해행위와 노조파괴 등 부당노동행위에 대하여 현재의 법·제도는 전혀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증명책임을 사용자에게 부담시키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수사, 기소, 재판 등의 과정에서 엄중한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다섯째, 교사·공무원·방위산업체 종사 노동자 등 노동3권의 제약 하에 놓여 있는 노동자들에게도 노동3권이 온전히 보장될 수 있는 방향으로 법개정이 필요하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와 법조계, 시민·사회계에서도 지속적으로 노동3권의 실효적 보장을 위한 노조법 개정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노조설립과 노조활동 보장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고 관련 공약도 제시한 바 있다.

노동조합이 모든 문제의 만능키는 아니지만 노동조합을 빼고 다양한 노동현안의 해결을 논할 수는 없다. 그만큼 노동조합은 절실한 문제이다. 특히 산적한 노동현안 중에서도 스스로의 문제해결력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인 노조법 제2조 개정에 민주노총을 비롯한 제 사회세력의 역량을 집중하고 끈질기게 천착해야 한다. 이를 통해 '노동존중'을 표방하고, 관련 공약까지 제시한 문재인 정부에서 반드시 관련 법 개정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용우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소속입니다.



태그:#노조, #민변, #노동자,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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