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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백산 비로봉(1439.5m) 정상을 향해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소백산 비로봉(1439.5m) 정상을 향해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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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눈은 겨울에 맛볼 수 있는 달콤한 낭만 같은 것. 비교적 포근한 남도에 살아서 그런지 겨울이 되면 흰 눈이 소복소복 쌓여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이 늘 그립다. 그저 눈 내린 하얀 겨울을 느끼고 싶어 지난 21일 소백산 비로봉(1439.5m) 산행을 떠나는 새송죽 산악회를 따라나섰다.

오전 8시 창원시 마산역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어의곡주차장(충북 단양군 가곡면)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20분께. 오랜만의 눈 산행이라 나는 몹시 설레는 마음으로 눈길을 걷기 시작했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오고, 나뭇가지로 비쳐드는 햇빛에 녹아내린 눈가루들이 눈앞에서 푸시시 흩날리기도 했다.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들려오고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들려오고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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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이 소복소복 쌓여 있는 산길에는 평화로운 고요가 깃들어 있었다.
 흰 눈이 소복소복 쌓여 있는 산길에는 평화로운 고요가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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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이 솜이불처럼 두껍게 내려앉은 계곡은 우렁찬 소리의 울림을 잃은 채 적막에 잠겼다. 을씨년스럽고 황량한 한겨울을 온통 하얀색으로 덧칠한 산길에는 깊은 고요가 깃들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이 눈길을 밟는 소리, 서로 간간이 주고받는 말소리, 잠시 어디선가 아스라이 들려온 비행기 소리 등이 그 평화로운 고요를 깨뜨리는 것만 같았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끝없는 눈길을 걷다 보니 우리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상념에 젖게 되었다. 문득 복사꽃이 화사하게 피던 올 4월에 일흔을 채 못 넘기고 갑작스레 돌아가신 지인이 생각났다. 역사의 흔적을 찾아 길을 나설 때 훌륭한 길라잡이가 되어 주셨던 분이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 하지만 내 인생길에서 참 감사했던 여행 친구를 잃은 슬픔이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매서운 소백산 칼바람에 혼쭐나다

그 유명한 소백산 칼바람을 맞으며
 그 유명한 소백산 칼바람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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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봉은 충북 단양군 가곡면과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 걸쳐 있는 소백산의 주봉이다. 비로봉 정상이 가까워지자 매섭게 불어 대는 칼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강한 바람에 떠밀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고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 또한 거셌다. 세차게 부는 바람으로 인해 몸이 흔들거려 사진 찍는 것조차 힘들기도 했지만 엄청 손도 시렸다.

오후 2시 10분께 매서운 칼바람으로 비틀비틀하며 겨우 비로봉 정상에 이르렀다. 정상에도 바람이 강하게 불어 정상 표지석을 사진에 담기가 꽤 어려웠다. 천동리 쪽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겁나게 불어 대는 바람 때문에 순간 방향 감각을 잃었는지 엉뚱한 곳으로 내려갈 뻔했던 일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아찔하다.

하얀 눈은 겨울에 맛볼 수 있는 달콤한 낭만 같은 것.
 하얀 눈은 겨울에 맛볼 수 있는 달콤한 낭만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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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인 소백산 비로봉.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인 소백산 비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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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주봉인 비로봉 정상에서
 소백산 주봉인 비로봉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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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정신없이 걸어 내려가자 주목초소가 나왔다. 거기로 들어가자 마침 먼저 도착한 일행 두 분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초소 안으로 들어서던 내 몰골이 아주 측은해 보였을까, 털썩 바닥에 앉자마자 고맙게도 따뜻한 음식을 챙겨 주셨다. 그분이 건네준 음식 덕분에 추운 몸도 녹이고 허기도 채울 수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 세상 살맛이 나고 또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이 아닐까.

주목초소에서 나와 단양읍 천동리로 내려가는 길의 설경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일행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너무 아름다우면 눈물이 나는 걸까. 자연이 우리들에게 주는 아름다움에 코끝이 찡해졌다.

비로봉 정상에서 주목초소로 내려가는 길에
 비로봉 정상에서 주목초소로 내려가는 길에
ⓒ 김영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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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동리로 내려가는 길의 설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천동리로 내려가는 길의 설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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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왜 위대한가.
왜냐하면
그건 우리를 죽여주니까.
마음을 일으키고
몸을 되살리며
하여간 우리를
죽여주니까.

- 정현종의 <자연에 대하여>

여기서 천동주차장까지 거리가 6.2km. 어의곡에서 비로봉 정상으로 오르는 거리보다 하산 거리가 훨씬 길어서 산악회 하산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 내려가야 했다. 더욱이 겨울 산은 어둠이 빨리 내리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하얀 눈길을 걷고 또 걸었다.

천동리로 내려가는 길의 하얀 겨울
 천동리로 내려가는 길의 하얀 겨울
ⓒ 김영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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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끝내고서 우리 일행은 단양읍 고수동굴길에 위치한 식당에 들어가 올갱이 해장국으로 저녁을 함께했다. 올갱이는 다슬기의 충청도 사투리이다. 아욱, 부추, 시금치를 같이 넣어 끓였는데 맛이 깔끔했다. 오가피장아찌, 더덕튀김, 더덕무침, 고사리, 취나물 등 반찬도 맛있어서 산행의 피로가 말끔히 씻기는 듯했다.

떠남과 머무름으로 점철된 우리들 인생이다. 떠남이 있어야 자연이든 사람이든 아름다운 만남을 가질 수 있고, 삶에 대한 깨달음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머무름이 있어야 일상을 든든히 지킬 수 있으리라. 매섭기로 유명한 소백산 칼바람도 이제는 즐거운 추억이 되어 벌써 그리워진다.


태그:#소백산칼바람, #소백산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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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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