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십수년 사이 한국의 언론매체에는 중국소식을 전할 때 거의 빠짐없이 매번 등장하는 매체가 있다.<인민일보(人民日報, People's Daily)>와<환구시보(環球時報, Global Times)>다. 사드의 한국배치가 2년 가까이 한중 양국의 주요 외교 현안이 되어 있던 기간에 중공의 주요 언론인 <인민일보>와 <환구시보>는 중국공산당(아래 '중공') 지도부의 입장을 전하거나 대변하면서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것은 지금도 현재진형형이다. 중국에서는 모든 매체가 예외 없이 반드시 정부와 당의 입장과 정책적 의도, 동기와 목적 등을 사안에 따라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간접적으로 선전해오고 있다.
중공 지도부의 입과 귀의 역할을 하는 두 매체에는 공히 중공 중앙의 입장과 의중이 감춰져 있다. 따라서 중국지도부나 중국정부의 동향, 정치적 의도, 동기, 목적 등을 알려면 언론보도를 보면 드러난다. 이 매체들의 보도내용과 숨은 행간의 의미를 정확하게 잘 이해하거나 분석하면 중공지도부의 숨은 의도와 목적을 간취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은 대중국 외교에 대응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런 취지에서 먼서 공산당 지도자들은 언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짚어보고 가자.
"신문, 잡지는 당의 선전도구요, 당의 혀" 중공의 대언론관조금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언론은 제4의 권력이다. 이 명제는 거의 모든 나라에 적용 가능한 것이다. 민주주의국가와 달리 공산주의국가에서는 언론이 어떤 기능을 하고 있을까? 과거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한 마디로 공산주의국가에서 언론을 이해하지 못하고선 그 나라를 깊이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언론은 중요하다. 언론은 공산당이 가장 우선적으로 장악해 통제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모두 표면에 있는 정부가 아니라 막후에서 공산당이 움켜쥐고 조정, 관리 감독하고 있다. 현재의 중국도 마찬가지다.
현 중공의 대언론관은 중국혁명의 완결자인 마오쩌둥의 정의에 근원을 두고 있다. 마오는 과거 신문과 잡지가 공산주의혁명 추동의 집체적 선전자, 선동자, 집체적 조직자임을 "신문, 잡지는 당의 선전도구요, 당의 혀"(報刊是黨的宣傳工具, 黨的喉舌)라는 식으로 설명했다. 이른바 마오쩌둥이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사상 선전이론을 모방해 만들어낸 자신의 '당보사상'(黨報思想)이다. 레닌의 언론관은 "신문, 잡지는 집단적 선전자일뿐만 아니라 선동자이며, 집단적 조직자이기도 하다"라는 말에 응축돼 있다.
흐루시초프도 소련공산당 서기장 재임 시 소련공산당이 신문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신문은 우리들 사상의 무기다. (중략) 당이 만약 신문과 같은 예리하고 강한 무기가 없다면 사상전에서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들은 신문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의 손에 맡겨선 안 된다. 그것은 반드시 충실하고, 가장 신임이 가고 우리 공산주의라는 위대한 건설사업에 헌신하겠다고 결심한 동지가 주관해야 한다."마오쩌둥과 소련공산당 지도자들이 언론매체를 어떻게 정의하든 간에 그들이 신문잡지를 공산주의혁명을 추동하기 위한 당의 도구로 정의하고 인식한 이상,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흔히 일컬어지는 제4권력으로서의 언론의 객관성, 중립성, 공정성은 기대하기 어렵고, 언론의 자유는 더더욱 있을 수 없다.
하나의 공산당이 전체 14억에 육박하는 인민을 통치하고 있는 중국에서 언론은 중공의 일당전재, 즉 독재를 지탱하는 유력한 대들보 가운데 하나다. 중공과 중국정부는 언론을 통해 당의 이념을 전파하고, 인민들을 교육하고, 세뇌시킨다. 이 역할을 하는 기구로 중공 당계통에선 중앙선전부가 이를 총괄하고, 정부 계통에서는 국무원 산하의 '중화인민공화국 신문출판총서'(新聞出版總署)다. 이 총서는 중공과 국가의 중요한 문건, 문헌, 신문, 방송, 잡지 등의 출판물, 저작권 및 판권, 교과서 등을 관리 통제하는 전문 기구다. 이 총서의 최고 책임자인 서장은 당 중앙위원급의 고위직인데, 현 서장인 류빈졔(劉斌杰)는 2012년 3월 이래 5년 이상 직책을 수행해오고 있다.
먼저 중국의 대표격 신문인 <인민일보>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인민일보>는 중공 중앙위원회의 기관지로서 1948년 6월 15일 허베이(河北)성 핑산(平山)현 리좡(里庄)에서<진찰기일보(晉察冀日報)>와 진자루위(晉冀魯豫) <인민일보>가 합병돼 중공 화베이(華北) 중앙국 기관지로 창간됐다.
이 시기는 중공 중앙이 화베이 지역에서 중국국민당군에 대한 전투를 지휘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역 사정을 파악하고 전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중공 중앙 기관지 역할도 했다. 이때 마오쩌둥이 <인민일보> 제호를 손수 친필로 써줬다. 그 뒤 중국인민해방군이 베이핑(北平, 중공이 건국하면서부터 베이징으로 불렀음)을 공략함에 따라 1949년 3월 15일 <인민일보>가 베이핑으로 옮겨 갔으며, 동년 8월 1일에 중공 중앙에서 <인민일보>를 중공 중앙위원회의 기관지로 결정했고, 1948년 6월 15일의 호수를 연용했다.
<인민일보>가 중공 중앙위원회의 기관지로 결정됐을 당시 중공은 <인민일보> 계열의 신문을 9종(창간시간 순으로<항적보(抗敵報)> <진찰기일보(晉察冀日報)>와 진자루위(晉冀魯豫) <인민일보>, 화북<인민일보>, <인민일보> 북경판, <북평해방보(北平解放報)>, <인민만보(人民晩報)>, <인민일보>, <인민일보 북평신문>이나 간행했다.
<인민일보> 사장, 당 중앙위원회 위원이 맡고 있어<인민일보>는 1973년 12월 26일자로 처음으로 칼라인쇄를 개시한데 이어 이듬해 1974년 1월 1일부터 부분적으로 칼라 인쇄를 개시했다. 또한 1985년 7월 1일에는 해외판도 창간했다. 인민일보 해외판은 베이징 본사에서 편집해 국내외에 보내는 방식이었는데, 베이징, 청두(成都), 시안(西安), 상하이(上海), 선전(深圳) 등지에 인쇄창을 두고 발행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의 홍콩, 뉴욕, 샌프란시스코, 도쿄, 파리, 터론토, 시드니, 요하네스버그, 자카르타에도 인쇄창을 두고 발행했다. 발행지역은 세계 80여 국가 및 지역이었다.
발행부수는 2015년 6월 시점에 300만 부를 돌파했다. 신문의 면수는 요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총 24면이다. 이 중 9~15면은 중국 국내뉴스이며, 국제뉴스는 21~23면을 보면 된다. <인민일보>는 이미 1992년 유엔 교과문교 그룹의 평가에서 세계 10대 신문으로 선정된 바 있다. 현재는 20여 종의 신문과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인민일보>의 역할은 중공 중앙의 이론과 노선방침 정책을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중공 지도부의 중대한 결책과 조치를 적극적으로 선전할 뿐만 아니라 중국 국내외 각 분야의 소식을 전파하는 데에 있다. 중공이 단결해 중국 전체 인민들을 혁명, 건설, 개혁의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목적에 부합하기 위함이었다. <인민일보>는 중공 중앙선전부의 직속 기관으로서 이 기구의 지시와 관리 감독을 받고, <인민일보>의 최고 책임자인 사장은 중공의 각 성 서기나 성장급인 정부급(正部級)이다. 현재 사장은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서 양전우(楊振武)가 4년째 맡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신문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의 손에 맡겨선 안 된다"고 한 공산주의 언론관에 의하면, 류빈졔와 양전우는 모두 공산당원임은 물론이고, 분명 중공 최고 지도부에게 "충실하고, 가장 신임이 가고 우리 공산주의라는 위대한 건설사업에 헌신하겠다고 결심한 동지"일 것이다.
<환구시보>는 흔히 한국에서는 중공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것으로 얘기되고 있지만, 사실 <환구시보>는 <인민일보>의 자매지가 아니라 <인민일보> 예하에 부속돼 있는, 중공 중앙위원회의 또 다른 기관지다.
급수는 <인민일보>보다 한 급 아래에 있어 최고 책임자인 총편집인도 <인민일보>의 부총편집인이 겸임을 하고, 직위는 각 성의 부서기 혹은 부성장급인 부부급(副部級) 간부다. 현재 총편집인은 후시진(胡錫進)이다. 기자 수는 편집기자들만 1000명 이상 포진시켜 놓은 <뉴욕타임스>에 비하면 숫자는 적다. 하지만 <환구시보>도 그보다는 못하지만 전세계 75개 국가와 지역에 350여 명의 특파원과 특약기자들을 보내 이름 그대로 전지구촌의 주요 지역을 거미줄처럼 엮어놓고 세계 곳곳의 소식을 이모저모 빨아들이거나 중국의 소식이나 정부입장을 전파하고 있다.
<환구시보>는 <인민일보>에서 해외뉴스 발굴을 목적으로 1993년 1월 3일에<환구문췌(環球文萃)>로 창간됐다. 그러다가 4년 뒤인 1997년에 <환구시보>로 개칭됐다. 특히 타이완, 한국, 일본, 미국 등의 동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이 지역의 소식과 동향을 중국인들에게 전하거나 중국정부의 정책을 이 지역에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케 하기 위해 만든 신문이다. 창간 종지와 목적은 중국과 세계의 상호 투시와 교섭에 두고, 중국인들의 시야를 국제적 수준으로 제고시키며, 동시에 중공과 중국정부 등의 동향과 입장 등을 위주로 한 중국내 각종 소식들을 해외에 전파하는 것에 두고 있다.
<환구시보>는 크게 종이 신문의 중국어판과 영문판 그리고 모바일전화환구망(手機環球網)과 환구시보전자판(環球網)이 있다. 종이 신문의 중국어판은 2011년부터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발행되고 있다. 그 전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 발행되었었다. 2014년부터는 월요일~금요일은 16면, 토요일은 24면을 발행하고 있다. <환구시보> 영문판은 1981년에 창간된 중국 최초의 영자신문인 <차이나 데일리(China Daily)>에 이어 2009년 4월 20일에 창간된 것이다. 중국의 국내사정을 영문으로 해외에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영문판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廣州), 시안, 우한(武漢) 등 5개 발행거점에서 인쇄 배포하고 있는데 전국에서 발행되고 있는 셈이다.
두 신문의 보도내용이 곧 중공지도부의 속내언론사의 사세나 규모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환구시보>의 발행부수는 얼마나 될까? 종이신문의 경우 200만 부에다 중국 국내외 292개 항공노선에 배포하는 10만 부가 있다. 발행부수는 200만 부 이상 찍는다는 소리다. 총 발행부수로는 세계 10위에 랭크돼 있다. 주요 독자층은 청년에서 중장년이 주가 되고, 공무원, 회사 간부, 화이트칼라 직장인, 전문직종 종사자들이 총 독자의 98%에 달한다. 즉 고학력, 고수입, 고소비자들이 주요 소비층인 것이다. 모바일과 전자판이 아닌 종이신문 1부당 평균 5명이 보고 있다는 통계조사를 믿을 수 있다면 중국 내에선 제법 권위가 형성돼 있는 셈이다. '전국에서 인용률이 가장 높은 10대 신문', '베이징지역 독자가 가장 애호하는 10대 신문', '랴오닝(遼寧), 선양(沈陽) 지역 독자들이 가장 애호하는 10대 신문' 등의 평가를 받은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주제 면에서 보면 중국내 시사뉴스, 세계뉴스, 외국인이 보는 중국, 심층보도, 군사, 이국풍정, 타이완(臺灣) 소식, 국제논단, 오락과 체육, 인물소개, 만화와 문적(文摘), 경제, 과학기술, 외국인물 소개, 문화(문학 포함), 교육, 국내외 독자란, 경제관찰 등이 배치돼 있다. 이 가운데 주요한 것으로는 군사는 제8면에 배치돼 있고, 주로 한국, 미국, 일본, 타이완 관련 뉴스를 전하는 국제면은 '국제논단' 섹션 제하의 제14~15면을 보면 된다.
젊은 층이 빈번히 접선하는 모바일전화환구망은 국제, 타이완해협, 사회, 군사, 논설(社評), 국내, 평론, 해외에서 보는 중국, 재정경제, 과학기술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에서부터 여행, 건강, 여인, 체육, 유학, 도시 등에 일상생활 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34개 항목의 주제로 나눠져 있다. 한국, 미국, 일본, 타이완, 러시아 등 동아시아 관련 뉴스와 함께 중국관방의 입장을 보려면 일면과 국제면, 타이완해협, 군사, 논설 부분에 들어가면 감을 잡을 수 있다.
중국 전역의 모든 언론을 중공의 강력한 통제 아래 두고 관리해오고 있는 중국에서는 전국 어느 곳에서든 견고하게 잘 조직돼 있는 중공의 기구와 당원, 군, 언론에 대한 통제는 중공의 지속적인 일당독재를 지속시키는 대단히 중요한 버팀목이다. 이 기관들은 철저하게 당 중앙의 지시, 통제와 관리에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인민일보>든, <환구시보>든 중공 지도부의 허락 없이 신문사 임의로 보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즉 두 신문의 보도내용이 곧 중공지도부의 속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최근 <환구시보>의 보도를 예로 들어보자.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오고 있는 <환구시보>는 특히 감정적인 보도와 사설을 쏟아내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지난 9월에 게재된 사설에서처럼 한국정부의 사드배치를 비난하면서 "한국이 김치를 먹고 멍청해졌다"는 등의 막말을 내뱉는 식이다.
이미 중국언론의 한국에 대한 오만이 도가 지나치다는 불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2월 11일 방영한 문 대통령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3불(사드 추가배치 불가·미국 MD체제 불참·한미일 군사동맹 불가) 관련 입장을 밝히라며 다소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 행위는 한 예에 불과하다.
한국언론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이 국빈방문임에도 공동성명 채택이나 공동 언론발표가 없는 점, 중국 측이 공항영접에 쿵쉬앤유(孔鉉佑)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를 내보낸 점을 지적하며 우려를 표한 것에 대해서도 12월 13일 <환구시보>는 '문재인 방중, 한국언론은 자살골 넣지 말아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한국언론의 보도내용을 힐난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또 사설에서도 "문 대통령의 방중은 양국의 갈등 해결 노력을 보여주지만, 공동성명을 발표하지 않는 점은 앙금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이 보도는 문재인 대통령으로 하여금 사드문제 해결을 간청하는 인상을 주려고 한 중공 지도부의 의중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신문에서 "중국은 삼불일한(三不一限, 3불과 사드 시스템 사용의 제한) 약속을 중시한다"면서 "만약 한국이 사드배치를 늘리거나, 또는 사드의 중국 위협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양국 관계는 다시 풍파를 맞이할 수 있다"고 한 경고는 바로 중국지도부의 경고이기도 하다. 또 "한국 언론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을 기회로 사드문제를 덮고 넘어가려 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중공 지도부의 상황인식이 드러난 경우로 봐도 된다. 이는 중국 관영 CCTV에서도 완전히 동일한 논조를 보도한 사실에서 실증된다.
한국정부의 대중국 관련 부처는 중국의 언론보도내용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공 지도부의 의중이나 동기, 목적을 파악하기 위해선 단순한 보도내용의 파악을 넘어 관련 전문가들을 다양하게 참여시켜 엄밀한 심층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서상문씨는 고려대학교 연구교수입니다.